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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민 Jun 04. 2020

평생 여기서 살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별 것도 아닌 일에 영 예민해질 때가 있다.

눈과 귀를 막고 아무리 부정을 하려 해도 결코 피할 수 없는 경험, 인생 최초로 맞이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하나는 지금 이 순간도 나는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사실이고 또 다른 하나는 체중계에서 맞이하는 나의 체중이 그러하다. 체중이야 가변적인 것이니 절망에서도 희망을 찾으려 지금 이 순간에도 스스로를 속이고 있지만(너무 잘 속이고, 잘 속아 넘어가서 문제..) 나이가 들어감은 어쩔 수가 없다. 최근 나는 이 두 가지 변화를 떠올리며 다시금 깨닫게 된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나라는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더 예민한 개체였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예민함'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마냥 싫었다. 쉽게 삐치고, 토라지며 까다로움으로 특정 지어지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작은 그릇의 사람이라는 것을 지칭하는 것 같다고 할까. 사실 글자 그대로 쉽게 삐치고, 까다롭기도 한 사람인데 말이다. 하지만 커가며 이런 나의 생각은 조금씩 변하게 되었다. 예민함은 환경에 대한 감지가 빠르고 이성과 감성이 잘 발휘될 수 있는 특징이라는 장점을 알게 된 것이다. 그에 비해 때때로 받는 마음의 삐침은 노력하면 숨길 수 있는 것이었고, 이것들은 어쩌면 사회화에 따른 내 생존 방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최근에 느끼는 기존의 정서적 예민함과는 다른, 신체적 예민함은 또 한 번 나에게 새로운 가르침을 주고 있다. 예를 들어, 날을 잡고 플레이스테이션에 집중하면 그 후유증이 꽤나 커서 다음날까지 활동을 하는데 지장을 준다던지(이것은 마치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의 감각과도 같다), 가득 찬 커피포트의 원두가루를 교체할 때면 그곳에 생긴 곰팡이를 마주하고 반드시 기침을 하게 된다던지 하는 종류의 것들이 그러하다. 그러니까 나는 살아왔던 것에 비해 신체적으로 그렇게 둔감하게 살 수 있던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유럽으로 오기 전 신논현의 반지하방에 살았을 때는, 계속 기침을 입에 달고 있었다. 창을 열어도 공기가 잘 통하지 않고, 화장실에는 창도 없으며 불을 켜지 않으면 한낮에도 어두컴컴했던 그곳에서 심지어는 벽색깔마저 짙은 회색으로 칠하고 살았으니 어련했겠다 싶기도 하다. 놀랍게도 그 이후 햇살이 잘 들고 서울에 비해 공기가 좋은 곳에 사니 몇 년간이나 달고 있었던 기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커피가루를 교체할 때만 제외하고 말이다.) 그러니까 이거 꽤나 지금껏 내 신체에게 못된 짓만 골라했던 것 같아 어느 정도 미안할 만도 하다.


프라하에 왔을 때부터 우리에게 정해져 있던 것은 '이 곳에서 평생 살 수는 없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반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부터는 줄 곧 '언젠가 이 곳을 떠나는 순간이 온다면 눈물이 날 정도로 쓸쓸해질 것 같아'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이는 그만큼이나 프라하를 사랑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아마도 이것은 처음 맞이하는 우리 둘만의 보금자리에 대한 애착과 정이라는 것이겠지. 이 곳에 있을 동안 서로에게도, 스스로의 멘탈뿐만이 아닌 신체에게도 아쉬울만한 기억들은 최대한 만들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어느 아침나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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