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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나는 무엇으로 일을 하는가.

자부심?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by 동노야

2화. 나는 무엇으로 일을 하는가.

- 각 작품은 각기 다른 이야기입니다. 뭐랄까. 멀티 유니버스 같은 거죠. -



“넌 공무원 왜 하냐. 돈도 좆도 못 벌면서.”

“글쎄...“

“솔직히 너네 일도 안 하잖아.”

“아니 그건...”

“부럽다. 부러워. 그렇게 편하게 돈도 벌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친구와의 대화는 대개 고통경쟁 양상을 보인다. 다들 자신의 직장과 일상이 세상 그 누구보다 고통스러움을 자랑하며, 다른 친구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후려친다. 그리고 이런 고통경쟁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덜 고통 받는 자에 대한 집단 린치는 참 기묘한 모습이다. 게다가 오늘의 피폭자는 나다. 더 정확하게는 나태하고 게으르며 경제성장에 도움이 안 되는 공무원으로서의 ‘나‘가 오늘의 집단린치 대상인 것 같다. 별 수 없다. 집단 폭력에는 대응책도 없고 얼굴 붉혀봐야 친구들과 관계만 소원해진다. 그냥 참고 두들겨 맞아야 한다. 다음 모임 때는 누구를 피폭하며 이 날의 비애를 되갚을지 상상하며 버텨야 한다.

“너희들이 아는 내용이랑 조금 달라. 우리도 나름 애환이...”

“됐어 인마! 그래도 공무원은 뭐라고 해야 하나... 자부심! 자부심 같은 건 있지 않냐? 우리처럼 남한테 빌빌 대면서 뭐 하나 팔아먹으면서 사는 것도 아니고. 공무원은 그래도 누구 도우면서 돈 버는 거잖아. 그건 부럽더라. 우리는 무슨 일만 하면 욕만 먹어.”


친구들 모두 고개를 끄덕거린다. 돌이켜 보면 친구들이 말한 고충들은 대개 비슷하다. 누군가한테 고개를 조아려야 하고, 또 그 누군가한테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팔아야 한다. 결국 다 돈 때문에 비굴하게 살아간다. 다만 친구들은 공무원인 내가 돈도 좆도 못 벌지만 자긍심을 느낄만한 일을 통해 돈을 번다는 점을 부러워했다. 집단 린치를 해서 그렇지 착한 놈들이다.


나에게 충분히 린치를 가했다고 느꼈는지 나에 대한 주목을 거두고 이제 친구들끼리 대화를 시작한다. 의약용품 영업을 하는 B, 통신사에서 고객상담을 하는 C, 고향에서 작은 공장에서 반장으로 일하는 D, 번화가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E 모두 다 직장이 주는 애환과 고통을 버티며 살아가고 있었다.


“부럽다. 부러워. 진짜 부러워. 나는 제품 하나 팔아먹어보겠다고 미친 듯이 돌아다닌다. 나도 돈만 아니면 그냥 시골에서 노인네들 도와주면서 살고 싶다. 돈이 뭔지 참...”

“B 너는 눈에 보이는 물건이라도 팔지. 난 무슨 고객 진심상담이니, 고객감동이니 뭐니 전화만 받으면 욕이다. 뭐가 불만인지 사람마다 다 다르니까 이건 뭐 고칠 수도 없어. 그래도 참아야지 어쩌겠냐. 그래도 내가 A 보다 돈은 많이 벌잖냐. 흐흐흐.”

“그래도 C 너는 이번에 승진해서 연봉 앞자리가 바뀌었다며. 난 이번에 현장 반장으로 승진했는데 월급이 6만 7천원 오르더라. 10만원은 맞춰서 올려줘야지. 6만 7천원이 뭐냐. 6만 7천원이. 일이라도 편하면 말을 안 해. 허구한 날 공장 기계는 고장 나지. 납품 기일 때문에 밤새지, 공장 설비 관리는 쉬는 날도 없다. 그렇게 반장 달았는데 승진하니 6만 7천원 올랐다.”

“B, C 둘 다 시끄러. 너네는 시키는 일만 해도 돈 벌잖아. 난 승진도 없고 월급도 없어. 매일 매일 편의점 구석에 박혀서 유통기한 지난 도시락이나 까먹고 앉아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들은 왜 그렇게 사고들을 치냐? 그리고 너네는 편의점에서 라면 사먹으면 국물 다 먹고 버려라. 그거 치우다가 매일같이 헛구역질 한다.”

“야 그래도 D 너는 사장이니까 윗사람 눈치는 안 봐도 되잖아. 우리는 월급쟁이라서 하루 종일 눈치만 보며 산다.”

“어찌 보면 우리 다들 출세했네. 서로 부러워하잖아. 하하하. 술이나 마시자. 마시자! 나라 잃은 백성마냥 마시자!”

“뭘 서로 부러워 하냐. 자기가 힘들다고 난리인 거지. 시끄러 마시자!”


다들 힘들구나. 어렸을 때 아버지가 퇴근 직후 텅 빈 눈을 하고 있으면 그저 술에 취해있구나 했는데 그게 술에 취한 게 아니라 일과 고통에 취해서 텅 비어버렸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텅 빈 눈을 나도 가지게 되었다는 건 시간이 더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래도 다들 나름의 만족을 찾아 일을 하고 있다는 게 다행이다 싶었다. B는 물건만 좋으면 자신 있게 영업을 할 수 있고 일과 때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C는 새로운 일을 창조하지 않아도 된다는 속 편함에 만족을 느끼고 있었다. D는 직장 안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암투와 이로 인한 눈칫밥이 없음에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대충 자리를 파했다. 술값은 누가 냈는지 모르겠지만 나 보고는 내지 말란다. 돈을... 여하튼 그만치도 못 번다고 나를 배려해준 거다. 자존심은 상하지만 그래도 땡큐. 집이 가까웠던 나는 터덜터덜 걸어서 집으로 간다. 약간의 술기운과 날씨가 변했다는 느낌이 올라오니 기분이 좋다. 무엇보다 내 친구들이 그냥저냥 일에 만족하는 듯 산다는 게 친구로서 기분이 괜히 좋았다. 가끔 그럴 때 있지 않은가. 물론 술기운도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래도 타인의 행복이 나에게 행복을 주는? 따스함 정도의 행복을 느끼며 나의 일을 돌이켜 본다. 나는 무엇으로 일을 하는가. 공무원은 무엇으로 일을 하는가.


‘내 일은... 아... 그... 아... 뭐지?’


나의 일은, 공무원이라는 일은 나에게 무엇을 주고 있을까. 돈을 많이 버는가? 아니다. 우수한 상품을 판매하기에 자신감이 넘칠 수 있는가? 태생이 그렇지 못하다. 창조적인 일을 통해 기쁨을 느낄 수 있는가? 아니다. 누군가의 눈치를 안 봐도 되는가? 어이쿠 그럴 리가.


공무원은 고소득도 아니며, 품질 좋은 상품을 내걸고 객관적인 우수성을 보일 수도 없으며, 창조적이기 어려우며, 직장 안팎으로 눈치는 끊임없이 보는 게 본령인 일이 되었다. 이쯤 되니. 어이구야. 이거 좀 비참하다. 신승이라도 하려고 나의 일이 나에게 주는 위대한 무언가를 찾아본다. 친구들의 대화를 톺아보니 ‘자부심’이 그나마 차별화 된 지점인 것 같다.


‘자부심이라. 누군가를 돕는다는 점에서 나오는 자부심이라.’

없다.


나의 일은, 공무원은 어느새 공공의 적이 되었고, 나에게 찬란한 물질을 안겨주지도 못하며, 눈칫밥만 늘어가는 직업이 되었다. 이 와중에 자부심이라. 민원인으로부터 돌아오는 고성과 욕설을 듣다보면 나의 노동은 자판기처럼 변해버렸다. 죄송하지 않아도 죄송해야 하고, 송구스럽지 않아도 송구스러워야 하며, 일을 ‘그딴식’으로 안 했는데 그딴식으로 했음을 인정해야 하기에 감정을 비워야 했다. 그나마 이 방법만이 나에게 정서적 보호를 제공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으로 일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을까. 나의 노동은 나에게 무슨 의미일까.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으며, 왜 이 일을 계속해야 할까. 여전히, 모르겠다. 다행히 집에 도착하였기에 더 이상의 고민을 끝내고자 재빨리 침대에 누웠다.


‘그래. 내일은 나의 일에서 의미를 찾아보자. 친구들이 말한 대로 자부심을 되찾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잠에 들었고, 일어났고, 출근을 했고, 민원대 자리에 앉았고, 9시가 됐고, 민원인이 나에게 왔고. 난 민원인한테 쥐어 털렸다. 임대소득으로 월에 480만원의 소득을 보유한 민원인은 왜 자신이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는지를 나에게 따져 물었다. 이게 다 내가 게을러서 안 된다는 게 민원인의 요지였다. 세상에나. 게다가 민원인은 나에게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지 말라며 구청장을 나오라고 했다. 맙소사. 여자저차 해서 여러모로 어려우며 두런두런 유감을 표했고 민원인은 이번 한번만 봐준다고 했다. 주여.


텅 빈 눈을 장착하고 오전을 보냈고 점심시간이 왔다. 밥 보다는 담배가 고파서 건물 앞에서 깊게 한 모금을 빨아들였다.


‘자부심?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괜히 스스로 민망해져 눈을 채운 눈물을 닦아내고 다시 텅 빈 눈을 만든다. 그렇게 텅 비우는 게 내 정신건강에 좋다. 근데 또 그러자니 애석해진다. 아마 꽤 오래 이 일을 해야 할 텐데 나는 무엇으로 이 일을, 공무원을 해야 하는 걸까. 모르겠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아마 나는 세상에 빛을 조금이라도 더하려고 이 일을 시작했는데 말이다.

모르겠다. 그냥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텅 빈 눈을 가지고 밥을 먹으러 간다. 먹고 나면 담배 한 번 더 피고 일을 해야겠다. 그냥 그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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