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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대체 누가 이런 곳에서 사는 걸까

강남, 강남, 강남.

by 동노야 Mar 24. 2025

1화. 대체 누가 이런 곳에서 사는 걸까

- 각 작품은 각기 다른 이야기입니다. 뭐랄까. 멀티 유니버스 같은 거죠. -



 강남.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벅차오르는 단어다. 대한민국 부의 상징이며 첨단과 세련됨의 상징이 된 강남은 한 마디로 ‘성공’ 그 자체였다. 그리고 나는 이 위대한 부귀영화의 성지인 강남에서, 사회복지 업무를 하고 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사막에서 핫팩을 판다거나, 북극에서 에어컨을 파는 사람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처음 이곳에 발령이 났을 때에는 덩실덩실 춤이라도 한번 추고 싶었다. 일이 참 편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이곳에서도 빈곤은 존재했다. 정확하게는 빈곤이라는 존재가 부귀영화 속에서 숨바꼭질 하듯 잘 숨어있었다.


 첫 출근을 한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모두가 알고 있는 XX대로가 보인다. 거대하고 화려한 회사 빌딩들을 지나, 외제차가 빼곡히 주차 되어 있는 그럴싸한 쉐르빌 같은 것들을 지나, 골목길에서 이름 모를 이것저것들을 지나면 그곳에 빈곤이 있었다. 벽지가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곰팡이가 뒤덮인 집, 사람 하나 눕기 힘든 고시원에 가까운 단칸방에 알콜 중독 아버지와 함께 사는 딸, 중증시각장애인 두 명을 양육하는 시각장애인 한부모 가구. 강남이라는 찬란함 속에서 빈곤은 보이지 않게 잘 숨어있었고, 잘 숨어있는 만큼 빈곤의 상처는 더 깊었다.


 강남의 빈곤을 마주하고 나와, 외제차가 빼곡히 주차 되어 있는 그럴싸한 쉐르빌 같은 것들을 지나, 거대하고 화려한 회사 빌딩들을 지나, 모두가 알고 있는 XX대로로 다시 나온다. 문득 멍청히 서서 대로변 주상복합 아파트를 바라본다. 궁에 살던 왕들 보다 여기 사는 사람들이 더 위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만큼 이 건물은... 위대하다.      


‘대체 누가 이런 곳에서 사는 걸까’      


 대체 어떤 사람이, 무슨 일을 해서, 언제부터 여기서 살았을까.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근처 부동산에 붙어 있는 매물 정보를 바라본다. 수십억. 수학의 정석 책에서도 찾아보지 못한 숫자다. 수십억이라는 숫자를 나는 일상 속에서 본 적이 있을까. 없다. 내 월급으로는 밥도 안 먹고 백여 년을 일만 해야 모을 수 있는 돈이다. 아득하다. 성서 속 신은 존재하는 것 같지 않은데, 내 눈앞에 보이는 아득하고 경이로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신이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이 건물을 올림포스로 부르기로 결심한다. 아멘.


 신기하게도 나는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는 원래 물욕도 없고, 지금 내가 사는 집도 만족스럽다. 외제차 보다도 지하철이 더 편안하고 수십억이 있다한들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기도 하다. 그러나 강남이라는 공간을 바라보면 괜히 죄책감이 든다.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나의 만족이나 생각들이 갖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지는 않을까. 신포도를 욕한 여우처럼 난 잘못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먼 훗날 강남에 살고 싶지 않다고 주장하고 다녔던 못난 강성준의 이야기가 24세기 이솝우화로 재탄생하지는 않을까.


 나는 죄책감과 혼란에 빠져 집에 도착했고, 잠 들었고, 일어났고, 다시 출근을 한다. XX대로, 빌딩, 외제차, 쉐르빌을 지나 다시 빈곤이 있는 그곳으로 간다. 다시 숨겨져 있는 빈곤의 깊은 고통을 마주한다. 전화가 울린다. 지하에 사는 노인이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문 앞에 가보아도 인기척이 나지 않는다는 한 집주인의 전화였다. 나는 119에 신고를 하고, 노인의 집으로 향한다. 여름 햇살은 피부를 한 땀, 한 땀, 꼬집는 것만 같다. 상담기록에 남아있던 노인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본다. 신호음이 방 안에서 울린다. 그러나 인기척이 나지 않는다. 출근 이틀 만에 나한테 벌어진 이 상황이 언짢다. 박봉의 노동자에게 또 어떤 과중한 복지업무가 떨어질까. 벌써부터 아득하다.


 119 구급대원이 도착했고 문을 개방한다. 문을 열자 거실 구석에서 계모임을 하고 있던 벌레들이 흩어진다. 집안에서는 호흡을 하기 어려울 정도의 악취가 난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액체가 바닥에 흘려져 있다. 얼굴이 찌푸려진다. 정신을 차리고 집 구조를 확인한다. 현관과 구분되지 않은 거실, 난생 처음 보는 화장실 바닥 보다 높이 위치한 변기, 뭐라 표현하기 힘든 색깔의 개수대.     


‘대체 누가 이런 곳에서 사는 걸까’      


 문을 열고 들어간 방 안에 뼈밖에 남지 않은 노인은 눈만 끔뻑이고 있었다. 급한 대로 구급대원과 근처 병원으로 향한다. 차안의 노인은 말이 없다. 상담기록에 남아있던 노인의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으로 오라는 안내를 전한다. 2시간 뒤 노인의 동생이 도착한다. 땀에 절은 모습이었다. 일용직으로 건설현장에서 일을 한다는 동생은 무덤덤하다. 보호자인 동생에게 노인을 인계하고 사무실로 복귀한다. 다시 삼바꼭질 중인 빈곤을 마주하고, 몇 가지 잡무를 하고 퇴근을 한다. 퇴근길에는 여전히 내가 잘 살고 있는 건가 자책을 한다. 통장을 확인해보니 만족은 하지만, 만족해서는 안 될 것 같은 금액이 찍혀있다. 더 이상 고민을 하기 싫어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빨리 잠든다.


 다시 출근을 하고 사무실 자리에 앉는다. 사무실 내선 전화가 울린다. 어제 그 노인의 동생이었다. 노인이 죽었다고 한다. 집을 정리하려고 하는데 문을 열어야 하니 같이 동행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노인의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문을 열어달라고 한다. 문을 열었다. 어제의 현장 그대로였다. 동생은 무덤덤한, 정확하게는 고통 속에 무덤덤해져버린 표정으로 조용히 한숨을 쉬며 허망하게 읊조린다.  

   

“형이. 이런 곳에서 살았구나.”     


 몇 가지 짐을 정리하는 동생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뜬다. 보호자가 있고, 상황 인계가 잘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추가 업무가 생기지는 않을 것 같다. 다시 사무실로 복귀한다. 또 가난을 바삐 마주한다. 퇴근을 한다. 외제차들을 지나 대로로 나온다. 볼 때마다 놀라운 강남의 화려함에 시골쥐처럼 매번 놀란다. 이제 꽤나 그럴싸한 국가가 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강남에서 많이 배운 높은 사람이 억지로 숨겨 놓은 듯한 가난을 나는 마주한다.


 강남이라는 곳은 참 동화 같은 곳임을 느낀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을까. 알게 된다면 서로 ‘대체 누가 이런 곳에서 사는 걸까’ 따위의 고민을 하게 될까. 아마 서로 모르고 살겠지. 강남이, 참,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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