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 망원동

by 라라라

지금까지 그를 몇 번이나 만났을까 가만히 헤아려 봤어요. 채 열 번이 되지 않더라고요. 동호회 모임에서 우연히 처음 한 번. 후배들과 함께 한 저녁 식사자리에 같이 가자고 초대해서 한 번. 그가 첫 소설을 발표했을 때 두 번. 그리고 제가 근무하는 곳에서 개최한 작가와의 만남에서 한 번. 그리고 어제. 이런, 두 손도 필요 없었네요. 한 손에 꼽을 정도. 물론 그 사이사이 비어있는 시간적 물리적 거리는 메시지와 SNS로 이어나갔어요. 우리 두 사람 사이에 우정이라거나 애틋한 감정이라는 것이 돋아날 기회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아 주세요. 제가 누군가요. 두 번째 만난 자리에서 후배가 제가 던졌던 그 한 마디만 없었다면 우리 두 사람은 조금은 다른 관계를 맺고 있을지도 몰라요.


아마 두 번째 만난 자리였을 거예요. 후배들은 그 자리에 자신들이 사귀고 있던 사람들을 데리고 나와서 인사시키겠다고 했어요. 아직 연애 중이었지만 결혼을 약속한 사이들이었지요. 저 혼자 나가기가 뭔가 어색하다고 여겨졌어요. 무슨 상견례 같은 인사 자리 같았거든요. 차라리 커플 모임이라면 괜찮아보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에게 함께 가자고 했어요. 걱정했던 것보다 그는 더 흔쾌히 같이 가겠다고 했어요. 같은 서울이라고 해도 거의 정반대에 위치한 곳에서, 메뉴도 우아함과는 아주 많이 거리가 있어 보이는 양꼬치였기에 다소 의외였어요. 맥주를 한두 잔씩 마시고 꿔바로우를 몇 점 집어먹고 난 다음이었던가. 아무래도 처음 보는 얼굴들이 많은 자리라 분위기를 풀어보기 위해서 “인생영화가 뭐예요?” 같은 시시껄렁한 질문들을 했어요. 그렇게 속내를 조금씩 풀어가던 그때 뜬금없이 한 후배가 제게 이런 질문을 던졌어요. “선배는 왜 그렇게 일찍 결혼했어요?” 순간 그 후배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얼어붙었어요. 잘 못 마시는 맥주를 마셔서인지 붉어진 볼을 어색해하던 그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미소와 핏기가 동시에 사라졌어요. 그때까지 그는 몰랐거든요. 제가 결혼했었다는 걸 말이에요. 별거니 이혼이니 구차한 변명으로 감추고 깔아뭉개곤 했던 이야기지만 사실은 사실이었죠. 그저 어느 순간까지 감추고 싶었을 뿐이었어요. 서로들 사늘하게 서리 내린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농담을 던져댔지만, 그는 채 오 분이 지나기 전에 집에 가겠다며 일어섰어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집까지 바래다주겠다고 했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택시를 잡아 탔어요.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이 밟아가던 썸이라는 아슬아슬했던 줄타기는 초장에 실패했어요. 그게 벌써 11년 전이네요.


그 어색한 에피소드 이후에 우리 관계에 대해 그가 택한 태도는 개인적인 것에서 공식적인 것으로 전환되고 굳어졌어요. 그럴만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가 아쉬울 것이 별로 없었거든요. 30대 중반. 연애를 하기에 늦다면 늦은 나이였지만, 꽤 유명한 음악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송작가. 메이저급 신문사에 주최하는 신춘문예를 통해 정식으로 등단한 소설가. 첫 소설과 몇몇 단편으로 단번에 교보문고가 추천하는 올해 젊은 작가에 이름을 올린 유망주. 큰 키에 수려한 외모. 주변에 언제든 부르면 달려가서 챙겨주겠다고 기다리는 (실제로 피를 나눈 적 없지만 앞으로 섞고 싶어 하는) 팬들을 거느린 미모. 단점이라면 오랜 기간 사귀었던 연인이 불치병으로 사망했고, 죽을 때까지 그 사람 곁을 지켰다는 걸 이야깃거리로 팔아 명성을 얻었다고 유족들로부터 욕을 먹고 있다는 것 정도?


아마 보통 사람이었다면 거기에서 포기하고 말았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길던 짧던 그가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여러 권을 구매해 읽고 주변에 나눠줬지요. 그리고 그걸 인증샷으로 남기고 그걸 핑계로 만나서 그로부터 직접 서명을 받았어요. 그리고 제 지위를 팔아서 작가와의 대화 행사 같은 것도 열었어요. 물론 참석자 전원에게 소설을 선물한다는 내용을 포함해서 말이지요. 신진 작가로서는 뿌리치기에 살짝궁 애매한 유혹 아닌 유혹이지요. 제 방법이 영악하다고요? 알아요, 알아. 안다고요.


그는 끊어냈다고 생각했을 썸이라는 이름을 가진 줄 끝에 ‘공식적’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카라비너를 달아서 슬쩍 걸어놓았어요. 그렇게 10여 년을 기다렸어요. 망자가 되어 거둬지지 않는 짙은 어둠을 그림자로 남긴 연인. 없을 것이 뻔한 시간과 용기를 쥐어 짜내어 찾아간 머나먼 여행지에서 자살 직관이라는 끔찍한 경험을 안긴 해맑은 얼굴을 하던 청바지 청년. 삶과 죽음이 갈라지는 경계를 너무 아프게 오고 간 끝에 아프고 깊은 상처 하나를 또 토해낸 오랜 반려견. 그리고 짧게 삶을 놓아버려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던 몇몇 지인들. 그는 기댈 곳이라고는 보호소에서 입양한 노견 한 마리만 남은 40대 중반이 되었어요. 개인적으로 너무 아프고 아픈 10년이었을 것이 뻔해요. 하지만 제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어요. 그저 너무 멀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곳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뿐.


제 착각이었을까요? 어제 그 사람이 보여준 모습은 조금 달랐어요. 자기가 쓴 소설을 이과적 감성으로 짓궂게 해체하는 농담에 깔깔. 아픈 기억이 남은 여행지 풍경을 다시 눈에 담아 보자는 제안에 눈물. 어느새 다섯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을 깨닫곤 이렇게 이야기가 잘 통하는 상대를 만난 적이 있었나 돌아보게 만들었다며 미소. ‘당신이 들어와 편히 걸음을 놓을 산책로, 열어둘게요’라는 수줍은 고백에 꼭 함께 하고 싶다는 긴 답장. 그리고 그 사람은 제가 준비해 간 신간에 메시지를 적어줬어요. 표지를 넘기면 검은색 내지가 나오기 때문에 제가 챙겨 온 펜들을 쓸모가 없었어요. 자기 가방 안에서 하얀색 팬을 꺼내, ‘OOO님, 손에 닿을 거리에서.’ “창피하니까 이쪽 보지 말아 줄래요?”라고 말하면서 말이죠.




오래된 영국 영화 ‘어바웃 타임’에 이런 장면이 있습니다. 한 남자가 친구와 암흑 상태에서 식사를 하는 ‘단 르 누아 Dans le Noir’에 갔다가 한 여자를 만납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서 그녀를 기다리는데 여자 주인공이 수줍은 미소를 한쪽 입꼬리에 물고 어두운 커튼 사이에서 나옵니다.


최근에 그를 만나고 헤어질 때 모습에서 그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몇 번 기회를 놓쳤지만,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연애가 서툴고,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을 날아야 만날 수 있는 거리에 삽니다. 후배가 던진 질문에 미소가 날아갔던 표정도 너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기도 합니다. 역시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사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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