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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라 Nov 10. 2022

왜요? 왜 거짓말을 해요? (Part 2)

질문하는 꼰대 #3

거짓말은 인류 역사상 종교지도자, 학자, 정치가들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였습니다. 바빌론을 통치했던 함무라비 왕이 반포한 함무라비 법전 Code of Hammurabi은 우르남무 법전 Code of Ur-Nammu과 함께 가장 오래된 성문법 중 하나입니다. 이 법전에도 거짓말에 대한 처벌 조항이 (무려 3개 조항이나) 나와 있을 정도입니다. 기원전 1700년 대에도 거짓말은 법으로 처벌할 만큼 심각한 사회적 문제였나 봅니다. 우르남무 법전도 훼손이 되어서 그렇지, 만일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서 전문을 알아볼 수 있었다면 분명히 거짓말에 대한 처벌 조항을 찾을 수 있었을 겁니다.


수메르 우르남무 법전 점토판은 기원전 2112~2095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 이스탄불 박물관 소장


심리학자들도 인간이 왜 거짓말을 하는지, 무슨 거짓말을 하며, 어떻게 거짓말을 하는지 알아내기 위해서 오래전부터 연구를 거듭해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거짓말을 하면 나타나는 여러 가지 특징들을 밝혀 냈고, 그러한 연구결과들은 실제 범죄 수사와 같은 분야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거짓말할 때 나타나는 안면 비대칭’, ‘필요 이상으로 길어지거나 짧아지는 말’, ‘반복해서 말하는 특정 단어’, ‘평소와는 다른 눈 깜박임’, ‘입술에 침 바르기’와 같은 신호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심지어 어떤 연구자들은 특정한 지역, 인종, 민족, 국가에 따라서 상대적으로 거짓말을 더 많이 그리고 상습적으로 한다는 자극적인 연구결과를 내어 놓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그러한 통계나 연구결과는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표본오차를 허용한다고 해도 극히 일부를 대상으로 한 연구가 일반화나 객관화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전문가도 상대방이 하는 거짓말을 완벽하게 가려내거나 심지어 뇌가 거짓말을 만들어 내는 작동원리조차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뇌가 어떤 구조로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몸을 움직이고 생각하고 말하는지 조차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영혼이 심장에 있다고 생각했고, 19세기까지 사람들은 우리 뇌가 당시 기준으로 가장 정교한 기술 집약적 산물인 시계를 닮았다고 여겼습니다. 20세기에 들어서야 겨우 앨런 튜링 Alan Turing 선생님과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벨 연구소 과학자들 덕분에 뇌가 컴퓨터와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을까라고 인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뇌가 어떻게 엄청나게 적은 에너지로 고성능 계산기를 뛰어넘는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아마 미래에 더 놀랍고 복잡한 무언가가 발명되면 인류는 우리 뇌가 그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생각할 겁니다. 아이고.... 다시 본론으로!)


원래 어렵습니다. 사람 속을 들여다보는 일이란 말이죠. 만일 사람이 하는 거짓말에 대한 완벽한 이론을 정립하려면 그 가짓수가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 숫자보다 훨씬 많아야 할 겁니다.


왜냐구요? 모든 사람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처했던 환경, 겪어온 일들, 그 속에서 상처받고 살아남은 마음, 그리고 그 마음속에 꼭꼭 숨겨두고 있는 욕망들이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다양한 변수들이 불규칙하게 혼합되어 매 순간 서로 다른 거짓말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처럼 변화무쌍한 거짓말 제조기는 매 순간 죽고, 또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뭐야? 그럼 거짓말을 걸러낼 방법이 없다는 거야? 그럼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는 왜 꺼낸 거야?"라고 화를 내시는 분도 있겠네요. 제가 제시하고자 하는 방향은 조금 다릅니다. 우리가 살면서 마주치는 모든 거짓말을 다 걸러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는 거짓말을 옹호하기도 합니다. 모든 거짓말이 나쁜 것은 아니며, 알량한 도덕심을 버리고 능숙한 거짓말쟁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거짓말은 성공할 수 있으니 안심하고 마음껏 하라고 부추기기도 합니다. 심지어 “유능하며 착한 거짓말쟁이”가 되는 다양한 팁으로 가득 채운 저술도 있습니다.


저는 그 정도로 거짓말쟁이 편에 서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전 글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거짓말에는 인간관계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긍정적인 요소도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은 물론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심각한 거짓말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아내고 걸러야겠죠. (여기에서 거짓말을 좋은 거짓말과 나쁜 거짓말을 구분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부분은 다음 글에서 다루어 보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거짓말은 무엇이고 경계해야 할 거짓말쟁이는 누구일까요? 먼저 위험수위가 낮지만 경계해야 할 것은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최악은 남을 거짓말쟁이로 모는 거짓말입니다. 이것도 다음 글에서......)


자기 자신으로 하여금 거짓말을 진실로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데 성공한 사람은 아주 능숙한 사기꾼이 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서는 전문가들이 집요한 관찰을 통해 발견해 낸 거짓말할 때 나타나는 특징들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스스로 거짓말을 진실이라고 믿기 때문에 거짓말할 때 나타나는 특징이 나올 리가 없지요. 완벽한 거짓말쟁이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남들에게 거짓말을 하기에 앞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 즉 자아를 재구성합니다. 거짓말의 범위에 따라서 일부가 될 수도 있고, 심한 경우에는 진짜 자신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진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진짜 자신이라고 믿는 겁니다. 좀 무섭지요?


심리학자들과 정신분석학자들은 그런 사람이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다고 보기도 합니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서로 다른 정체성들 때문에 혼란을 겪고 그로 인해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놀랍게도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는 명배우들이 종종 그러한 고통을 호소하기도 한답니다. 그들은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에 완전하게 그 캐릭터가 되기 위해 말, 행동, 생각, 심지어 다른 캐릭터와 연결된 인간관계까지 현실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야 완벽한 연기가 나오니까요.


그런데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가 밝고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면 특별히 문제 될 것이 없겠지만, 사람을 쉽게 죽이고 기이한 행동을 일삼거나 감정을 격하게 표현하는 인물이라면 상황이 심각해집니다. 촬영이 끝난 뒤에도 배역이 가지고 있는 자아가 실제 자신에게 투사되어 약물과 심리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 뮤지컬 배우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배우들은 대부분 공연 후 1개월 이상 장기간 배역 투사에 시달리며 우울증 등의 후유증으로 고통받은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악역을 연기했던 히스 레저 Heath Andrew Ledger는 영화 다크 나이트 촬영을 마친 다음 우울증 약을 잘못 복용해 사망했습니다.




"거, 논리적 비약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메소드 연기 Method acting를 한 다음에 우울증을 앓을 일이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 평생에 얼마나 있겠어?" 맞습니다. 앞의 사례는 거짓말과 자아가 가지고 있는 관계를 설명하려고 가져온 약간 과장된 사례입니다. 하지만 실제 자기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은 자아에 큰 영향을 줍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유사한 사례를 하나 더 들자면 궁지에 몰리거나 할 경우에 내뱉는 거짓말이 있습니다. 다음 예시를 같이 볼까요? 이 사례는 자신이 한 발언 때문에 공격을 받고 있는 사람이 그 상황에서 오는 스트레스로부터 탈출하고자 자아의 경계를 축소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내가 안 그랬어! 진짜 내가 말한 게 아니라고. 그래, 그 말이 내 입에서 나오기는 했지만, 그 말이 내 말이라는 건 인정 못해."   -다니얼 데닛, 의식의 수수께끼를 풀다 중에서-


(최근에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같나요? 결코 특정인이 한 발언을 빗대어 묘사한 것이 아님을 먼저 밝힙니다. "내가 뭐라고 하기는 했는데 그 말이 당신이 들은 말은 아니야. 당신이 들은 그 말이 내가 한 말이라는 걸 인정할 수 없어!" "제가 그렇게 말했다구요? 참나, 그런 기억 없습니다." 응? 뭐라고?) 프로이트가 제시했던 방어기제 防禦機制 Defence Mechanism가 발동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여기서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으로 유명한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아니라 그의 딸 안나 프로이트 Anna Freud입니다.) 사람들은 외부나 내부로부터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강한 불안을 겪게 되면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현실을 부정하고 왜곡하며 자신을 제3자화 하는 말을 하게 됩니다. 심한 경우 자신이 그러한 상황에서 고통을 받지 않는 다른 초월적 존재라고 여기기도 한답니다. 자기 자신이 거짓말인지 인식하지도 못하는 엄청난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일부 학자들은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언행이 합리화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 허구라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면서 사용하는 거짓말과는 다르다고 분석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경계, 즉 자아의 경계를 본능적으로 인식합니다. 보통은 외부와의 접촉, 비교, 자극이 있어야만 자아가 명확하게 성립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학자들은 그 개인적인 경계를 선택하는 초월적 자아라는 녀석이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에게 꾸며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 자신은 그 이야기를 어떻게 지어낼지 의식하지도 의도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진행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러한 거짓말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아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아는 우리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의 산물이지, 그것의 원천이 아니라는 겁니다.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지 알아내는 손쉬우면서도 동시에 가장 어려운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방어를 위해 본능적으로 거짓말을 했던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겁니다. 정신분열증 환자나 자기 자신까지 속여 버린 완벽한 거짓말쟁이 머릿속 자아를 직접 들여다볼 수는 없으니까요. (아, 영화에서는 가능하려나?)


다음 글에서는 앞서 언급했던 남을 거짓말쟁이로 모는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글을 쓰고보니 정체성, 자아, 초자아 등과 같은 개념을 명확히 정의하지 않고 사용해서 읽는 분들이 혼돈을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정체성은 인공으로 만들어진 로봇과 같은 하드웨어, 자아는 그 로봇을 움직이는 시스템, 초자아는 그 로봇에 탑승해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영희와 철이(응? 아이젠보그냐?) 쯤으로 여기시기 바랍니다. 에반게리온 세대 분들은 신지 シンジ와 초호기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에반게리온은 폭주하면 지 멋대로 움직이지요?)




지금까지 강조했던 핵심 정리! (아........ 이건 학습서인가.)

(1) 거짓말은 단순하게 표현한다면 생각과 감정을 감추는 행위입니다.

(2) 문제가 되는 거짓말은 이익을 위해서 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3) 경계해야 할 것은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4) 최악은 상대방을 거짓말쟁이로 모는 것입니다.




참고자료


김형희, 한국인의 거짓말, 서울, 청림출판, 2016.

시부야 쇼조, 송명진 옮김, 거짓말 심리학, 서울, 휘닉스, 2005.

나이토 요시히토, 이명희 옮김, 인간관계를 따뜻하게 만드는 행복한 거짓말, 서울, 지형, 2006.

김정섭 이은혜, 뮤지컬 배우의 배역 투사 양태와 치유 시스템,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제16권 제7호, pp. 504 - 512, 2016.

대니얼 데닛, 유자화 옮김, 의식의 수수께끼를 풀다, 고양, 도서출판 옥당,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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