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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라 Nov 15. 2022

왜요? 왜 거짓말을 해요? (Part 3)

질문하는 꼰대 #4


ㅇ나 실장: 경력 20년 차 에디터. 질문을 하거나 받는 것 모두 좋아하는 그냥 꼰대

ㅇ이 피디: 대학을 잠시 휴학하고 기간제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직원

ㅇ상황: 월요일 오후. 이 대리가 바빠서 대신 이 피디가 실장실에서 핸드드립 커피 마시고 있음.



[이 피디] 실장님, 주말에 별일 없으셨습니까?


[나 실장] 응, 나야 뭐 늘 비슷하지요.


[이 피디] 주말 동안 브런치에 새로운 글 올리셨던데요?


[나 실장] 아, 그거? 뭐 특별한 건 아니고 그냥 이것저것 생각나는 걸 그대로 끄적인 거예요.


[이 피디] 저는 전에 거짓말에 대해서 쓰신 글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거짓말을 했던 자신을 돌아보라.”라고 하셔서 제가 거짓말했던 때를 떠올려 봤거든요. 그런데 거짓말할 때 나타나는 특징들이 보였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던데요?


[나 실장] 응? 뭐라고? (이 친구 어떡하지? 내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네.) 아, 나도 거짓말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 몰라요.


[이 피디]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이 거짓말인지 아닌지 알아내는 방법이 제일 궁금하던데요?


[나 실장] 아, 그래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써도 와닿지 않는구나.) 음,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이렇게 가정을 해 봅시다. 누군가 어떤 말을 했다고 했다고 합시다. 누가 그 사람이 한 말이 거짓말인지 아닌지 제일 잘 알 수 있을까요?


[이 피디] 어...... 범죄 프로파일러 같은 전문가 아닌가요?


[나 실장] 아닙니다. (범죄 전문가들이 모두 범죄의 도시에 나오는 마 형사라면 모를까.) 아무리 날고 기는 전문가라고 해도 낯선 사람이 한 마디 한 것을 듣고 바로 진위를 가리지는 못할 겁니다. 하지만 그걸 쉽게 간파할 수 있는 사람이 있지요.


형은 다 알 수가 있어.


[이 피디] 누군데요?


[나 실장] 바로 그 사람을 가장 잘 아는 사람입니다. 더 쉽게 예를 들어 볼까요? 15세 남자가 아침에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통증을 호소했습니다. 그 말이 거짓말일까요 아닐까요?


[이 피디] 그걸 어떻게 알죠?


[나 실장] 그 사람 어머니는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아들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라온 과정을 다 보아왔기 때문에 무얼 생각하는지 왜 배가 아프다고 하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거든요. '이 녀석 학교 가기 싫구나.'라는 걸 말이죠.


[이 피디] 아! 그렇겠네요.


[나 실장] 그 말을 일반화해서 풀어볼까요?


[이 피디] 어떻게 말입니까?


[나 실장] 누군가 어떤 말을 할 때 그 말의 진위를 가려내려면 단순히 텍스트 text 그대로가 아니라 콘텍스트 context, 즉 맥락을 살펴야 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 피디] 전후 맥락을 알아야 한다는 거죠?


[나 실장] 그렇죠. 모자 관계가 아니라 좀 더 일반적인 사례를 하나 들어 볼게요. 어떤 사람이 신문 칼럼에 다음과 같은 글을 기고했습니다. 내용이 “부동산 가격 하락은 일시적인 것이다. 금리 때문에 영향을 받는다고 하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1인 가구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중소형 아파트에 대한 수요는 당분간 꾸준히 증가할 것이다.”였습니다.


[이 피디] 그 비슷한 기사를 본 것도 같네요.


[나 실장] 그 칼럼의 진위를 가리고 싶으면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필터가 있습니다.


[이 피디] 그게 뭐죠?


[나 실장] 바로 그 글을 쓴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겁니다. 언뜻 칼럼의 내용이 맞는 말 같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그 글을 쓴 사람이 대형 건설사 이사였다고 합니다.


[이 피디] 에이, 그럼 그거 사기죠. 자기들이 지어놓은 아파트 팔아먹으려는 거잖아요.


[나 실장] 뭐 정말 그런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충분히 의심할만하죠?


[이 피디] 그러네요.


[나 실장] 그 말인 즉, 글을 제공한 사람이 그 내용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그 이전에 어떤 글들을 써 왔는가를 살펴보면 왜 그런 글을 썼는지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 피디] 오, 글 쓴 사람에 대한 정보만 추적하면 되는 거군요.


[나 실장] 아닙니다.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이 피디] 아니라구요?


[나 실장] 만일 글을 쓴 사람과 정보를 제공한 사람이 다를 경우에는 추적이 어렵습니다. 그리고 글의 내용이 우리가 잘 모르는 분야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죠.


[이 피디] 그런 경우는 어떻게 하면 거짓말인지 아닌지 알 수 있나요?


[나 실장] 아까 엄마와 아들 사례를 이야기했었죠? 비슷한 방법입니다. 어떤 정보를 접했을 때 진위여부를 알고 싶으면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관련 정보를 모두 수집해서 분석해야 합니다.


[이 피디] 음...... 모든 사람이 모든 분야 전문가가 되라는 말인가요? 그건 좀 무린 데요.


[나 실장] 그렇죠? 제 말은 역으로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관련 내용이 거짓인지 아닌지를 쉽게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기사 몇 개만으로 누군가를 비난하고 악으로 매도하고 심지어 증오하는 현상을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평가를 하고 싶으면 신뢰할만한 전문가로부터 정보를 수집해서 분석해야 한다는 거죠.


[이 피디] 아, 쉽지 않네요. 결국 믿을 수 있는 사람, 전문적인 사람을 의지할 수밖에 없나요?


[나 실장] 그래도 속을 수 있어요. 무엇보다 먼저 사기는 모르는 사람보다 잘 아는 사람, 비전문가보다 전문가에게 더 쉽게 당합니다.


[이 피디] 무슨 말이죠?


[나 실장] 전문가들에 따르면 사기꾼은 본능적으로 커뮤니케이션에 탁월하다고 합니다. 특히 다른 사람과 관계를 구축할 때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스토리를 구축하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누군가 낯선 이가 이 피디에게 내일 갚을 테니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그 말을 믿겠어요?


[이 피디] 절대 안 믿죠.


[나 실장] 사기꾼들도 그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 천천히 접근합니다. 처음에는 적은 액수로 시작하지요. 같은 과 선배가 “아, 나 지갑을 두고 왔네. 학생회관에서 점심 먹어야 하는데, 이 피디, 5천 원만 빌려줄 수 있어?”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래서 빌려 줬더니 다음날 바로 갚으면서 “고마웠어. 보답으로 오늘 학식 내가 쏜다.”라며 친절을 베풉니다. 그런 상황을 반복하며 신뢰를 구축하죠. 그러다가 “오늘 특가로 나온 아이패드 사고 싶은데 적금은 다음 주에 타거든. 니 카드로 결제해 줄 수 있냐? 내가 다음 주에 적금 타면 바로 입금해줄게. 너 카드 포인트도 쌓고 좋잖아.”라고 부탁합니다.


[이 피디] 어, 그럼 카드 빌려줄 거 같은데요? 평소에 밥도 사주고 빌려준 돈도 잘 갚고 했으니까.


[나 실장] 아이패드를 결재해주고 나면 아마 다시는 그 선배 모습을 볼 수 없을 겁니다. 사기는 모르는 다른 과 후배가 아니라 잘 안다고 생각한 같은 과 선배에게 당하는 겁니다.


[이 피디] 와....... 내 백만 원.


[나 실장] 그리고 전문가도 조심해야 합니다. 전문가들은 의도를 가지고 거짓 정보를 유포할 때 교묘한 방법을 사용합니다.


[이 피디] 어떤 방법이죠?


[나 실장] 사실들 사이에 거짓을 끼워 넣는 겁니다. 예를 들어 특정 분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때 어려운 전문적 용어를 사용하면서 이미 널리 검증된 사실 아홉 가지를 전달하고, 그러면서 그 중간에 의도된 거짓 정보를 슬쩍 끼워 넣는 겁니다. 그러면 수용자는 그 전체가 모두 사실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죠.


[이 피디] 아오, 무섭네요.


[나 실장] 정리하자면 텍스트보다 콘텍스트가 중요하다. 신뢰할만한 소스를 통해 관련 정보를 충분히 수집해서 분석하라. 잘 아는 사람, 전문가라는 사람도 의심해라 정도가 되겠네요.


[이 피디] 오.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거짓말을 모두 알아차릴 수 있는 건가요?


[나 실장] 어, 음, 아, 그..... 처음에 말했잖아요. 난 거짓말 전문가가 아니에요. 나한테서 답을 구하면 안 돼요. 큰일 나요.




최근 비극적인 일이 있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글을 쓰기 어려웠고, 이미 써둔 글을 올리는 것도 미안했습니다. 추모하는 짧은 글을 올렸다가 지우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다시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거짓말에 대해서는 말이죠.


수많은 젊은 생명들이 안타깝게도 신문 구석탱이 사고 기사 속 이름 한 줄, 국화꽃 가득한 영정 속 사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슬픔을 함께 나눠서 덜어가지는 것에 별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슬퍼하는 이를 보면 꼬옥 안아주세요. 그 사람이 품고 있는 아픔이 내가 옮아와도 참으세요. 그래야 슬픔이라는 상처가 빨리 나아집니다. 상처는 치료해야지 일상복 속에 감춘다고 좋아지지 않습니다.


분노는 슬픔 다음입니다. 슬퍼하지 않으면 분노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남겨진 가족들의 슬픔보다 “누가 어떤 거짓말을 했나?”에 더 관심을 두지 마세요.


제가 누군가 한 말이 거짓말인지 아닌지를 쉽게 알 수 있는 해법을 내어 놓거나, 거짓말이 흘러넘치는 사회현상을 명쾌한 수학공식처럼 분석해서 내어 놓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 글을 기대하신 분이 있으시다면 죄송합니다.) 혹시라고 누군가 사회과학 분야에서 그런 혁명적인 결과를 얻었다고 주장한다면 그 사람은 엄청난 바보이거나 거짓말쟁이가 아닐까 의심해봐야 합니다.


다음 편부터 다시 본격적인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참고자료


유시민, 정보 홍수의 시대에 어떻게 읽고 쓸 것인가,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중에서.

시오 시어벌드 캐리 쿠퍼, 안진환 옮김, 입 다물고 들어라, 서울, 소담출판사, 2007.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 이영래 옮김, 모두 거짓말을 한다, 서울, 도서출판 길벗, 2018.

대니얼 데닛, 유자화 옮김, 의식의 수수께끼를 풀다, 고양, 도서출판옥당,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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