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에 대한 변명
이 글은 앞선 “왜요? 왜 존재를 의심해요? (1부)”에 대한 변명입니다. 혹시 읽지 않으신 분들은 1부로 갔다가 다시 오시기 바랍니다.
어린 시절 텔레비전에서 마법세계에 대한 애니메이션 한 편을 봤습니다. 제목은 기억이 나질 않네요. (노화로 인한 기억력 감퇴가 아니라 너무 오래되어서 잊었다는 핑계를 대어 봅니다.) 대신 내용은 아주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중간중간 나오는 에피소드도 다 기억이 나구요. 내용을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평소 마법 같은 것을 전혀 믿지 않는 지극히 현실적인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도움이 필요하다며 나타난 사람에 이끌려 마법세계로 갑니다. 심지어 살던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그곳에는 마법사와 요정, 거대한 용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왜 이처럼 신기한 것들이 평소 사람들 눈에 띄지 않았을까 궁금했습니다. 주인공을 초대한 선한 마법사는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점점 믿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사람들이 동화 속 이야기나 마법과 같은 신비한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을 때 비로소 힘을 얻는다. 세상에 마법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어지면 우리도 사라진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마법을 믿지 않던 젊은이는 그들과 생활하며 신비한 힘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점점 커졌습니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그는 결국 엄청난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선한 마법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동화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 덕분에 존재할 수 있는 세상이 있는 반면에 두려움과 공포심, 증오 같은 감정을 먹고사는 어둡고 악한 존재도 있었습니다. 악마와 같은 그 존재는 자신이 가진 힘을 더 키우기 위해 선한 마법 세계를 없애려고 했습니다. 주인공이 필요했던 이유는 그가 악한 존재에 당당하게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감한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결전을 벌여야 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어두운 존재가 가진 힘은 너무 강력했습니다. 주인공이 가진 마법 잠재력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공포와 두려움이 마음속에서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결이 진행될수록 주인공은 자신이 가진 마법으로는 결코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순간, 주인공은 대마법사가 “존재한다고 믿을수록 존재하는 힘이 커진다.”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어두운 존재를 똑바로 바라보고 다음과 같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난 너를 믿지 않아. 너 같이 허무맹랑한 존재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아. 나는 내가 배웠던 수학, 물리학, 생물학, 화학, 천문학, 경제학, 경영학, 기계공학, 건축학 등 모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지식으로 네가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한다.”라고 말이지요.
주인공이 학문 이름을 하나씩 댈 때마다 어두운 존재는 힘을 잃고 조금씩 쪼그라들었습니다. 결국 주인공은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어두운 마법을 부정한 결과 자신과 함께 했던 선한 마법세계에 더 이상 머물 수 없었습니다.
마법세계는 남은 힘으로 보호막을 설치해 인간들이 사는 세상과 단절했고, 주인공은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만화영화는 어린아이들이 이해하기에 조금 어려웠습니다. 천진난만한 동화라는 요리에 들뢰즈 Gilles Deleuze와 바디우 Alain Badiou를 소스로 듬뿍 끼얹은 느낌이랄까?
앞선 1부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압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불쾌하고 기분 상했을 겁니다.
하지만 저 또한 사랑을, 특히 만민법 The Law of Peoples에 기초한 인류애를 가장 소중한 가치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유적 이상주의자로 분류할 수 있는 내용에 오랜 기간 심취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마음 상한 분들이 어떤 기분일지 조금은 이해합니다.
제 이야기를 오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수학적으로 검증할 수도 없는 감정이나 이상 같은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정 반대입니다. 사고와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주체로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생각하는 이상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것이 나와 객체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주셨으면 합니다.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면 너무 재미없을 것 같아서 항상 반어법을 사용하는 아주 나쁘고 못된 고질병이 있습니다. 이해해 주세요.
참고자료
슬라보예 지젝, 존 밀뱅크, 박치현, 배성민 옮김, 예수는 괴물이다, 서울, 마티,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