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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라 Apr 07. 2023

왜요? 왜 화를 내요? (2부)

도대체 화는 무엇일까?

화는 감정입니다.


(뒤로 갈수록 의구심이 더해가겠지만, 일단 이 정의에서 출발하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자기 의지대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은 (단언컨대!) 없습니다. 물론 인정머리 없고 감정도 메말라버린(농담입니다. 화내지 마셔요. ^^) 진지한 생화학자분들께서는 생각이 조금 다르십니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이 결국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과 특정 호르몬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직접 추출하거나 화학적으로 조합한 물질을 주입하면 원하는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고 합니다. 심각한 수순으로 감정이 통제되지 않는 사람에게 이 같은 방법을 활용한 치료가 이뤄지기도 합니다.


우리 햄식이형 크리스 햄스워드와 마일즈 텔러가 주연한 영화‘스파이더 헤드’ 인간을 대상으로 한 감정통제실험을 다뤘습니다.

몇몇 행동심리학자들은 인간이 감정을 표출하는 형식, 즉 웃음, 울음, 함성, 표정 같은 것을 의도적이고 반복적으로 모사하면 역으로 우리 뇌에서 해당 감정과 연관된 물질이 분비된다고도 주장합니다. 꽤 오래전 방송에서 ‘웃음치료’라는 것을 소개해서 우리 사회에 크게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비슷한 사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연극이나 영화에서 연기하는 배우들도 유사한 경험을 한다고 합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생화학자와 행동심리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을 믿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느끼는 감정들은 매우 소중하고 개인적인 것인데, 이런 것들이 단순히 화학물질들을 분비하는 것이거나 그러한 분비에 반응하는 것이라고 단정 지어 버리기 싫습니다. 왜냐면 그렇게 되면 풍부한 감정들로 가득 채워진 내 삶이 송두리째 우스꽝스러워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사건이나 행동이 일어난 전후 맥락, 즉 콘텍스트를 인지하고 그 사람이 행동하는 이유나 환경에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런 감정들은 전파력이 매우 강력해서 면역이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전파되는 속도 또한 소리를 넘어 빛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노란 개나리꽃 같은 아이를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떠나보내고 그 영정 앞에 주저앉아 고개를 떨구고 있는 엄마를 보고 있으면 저절로 눈물이 납니다. 심지어 그 눈물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아슬아슬하던 농구시합에서 종료 1초를 남겨두고 우리 팀 선수가 던진 슛이 들어가 극적으로 경기를 뒤집으면 모든 이들은 동시에 기뻐하며 환호성을 지르게 됩니다. (장훈아! 95년 농구대잔치 결승전이었던 연고전에서 네 슛이 그랬다!!)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 오늘 주제인 화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앞에서 한 이야기를 반복하자면 화도 우리가 느끼는 감정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감정들과 유사하게 내 의지 대로 조절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최소한 어려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은 우리 뇌에서 다양한 신경전달물질이나 호르몬 분비를 유도합니다. 반대로 생화학자들 연구결과를 화에도 적용한다면 특정 화학물질을 체내에 주입하면 화가 나야 합니다. 그리고 화가 나는 시늉을 제대로 하면 정말 화가 나기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그 의문에 대한 답을 하기 전에 다른 이야기들을 먼저 해야 할 듯합니다. 일단 화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화를 바라보는 관점은 다른 감정들과 조금 다릅니다. 고전 심리학 관점에서 보면 우리 감정은 대략 기쁨, 슬픔, 혐오, 놀람, 분노, 공포들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픽사 스튜디오가 만든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에는 다섯 명의 감정 캐릭터가 나옵니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러한 감정들은 하나씩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으로 중첩되어 더욱 다양한 감정으로 표출된다고 합니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우리는 모든 상황에서 단일한 감정만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기존에는 우리가 감정들을 단속적이고 불연속적으로 느낀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경험과 학습을 통해 감정들 사이를 부드럽고 연속적으로 넘나들며 표현할 수 있는 존개가 된다는 겁니다.


어떤 연구팀은 사람들로 하여금 다양한 상황을 담은 영상을 시청하면서 자신이 느낀 감정을 그룹핑하게 만들었는데, 그 결과 우리 감정을 찬탄 admiration, 우러름 adoration, 심미적 감탄 aesthetic appreciation, 즐거움 amusement, 불안 anxiety, 경외 awe, 어색함 awkwardness, 지루함 boredom, 평온 calmness, 혼란 confusion, 갈망 craving, 역겨움 disgust, 공감고통 empathetic pain, 신바람 entrancement, 시기 envy, 흥분 excitement, 공포 fear, 전율 horror, 흥미 interest, 기쁨 joy, 향수 nostalgia, 로맨스 romance, 슬픔 sadness, 만족 satisfaction, 성적 욕망 sexual desire, 연민 sympathy, 승리감 triumph 등으로 구분할 수 있고, 이러한 감정들을 연관성을 중심으로 도식화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고전 심리학에는 화 대신 분노가 있고, 세분화된 최신 카테고리에는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화에 딱히 들어맞는 것이 없습니다. 앞선 글에서 다뤘던 것처럼 화는 짜증이나 분노와 구분하기도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 설마 화는 우리가 자연스럽게 느끼는 감정이 아닌 걸까요? 혹시 화는 감정이 아닌 다른 무엇인 건 아닐까요?


이러한 아이러니한 현상을 두고 많은 학자들이 고민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공통적으로 한 가지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다른 감정들과는 달리 “화는 목적이 있는 의도적 감정”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감정들도 상대방에게 특정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표출되곤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 그 감정들을 진짜 감정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가식적인 표현일 따름이라는 거죠.




모든 견해를 다 언급하는 것은 어려우니 몇 가지 연구사례(또는 주장)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화는 서로 물어뜯으려 덤비는 세상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주변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러한 주장은 인간관계에서 화와 유사한 분노가 어떠한 방식으로 표출되는가에 대한 견해를 통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분노는 인간관계에서 받은 고통에 대한 일종의 항의라고 여겨집니다.


누군가에게서 버림받아 생긴 상처에 맞서 싸우는 방식이고, 떠난 누군가 때문에 괴로움을 겪는 것을 거부하는 일이며, 거절당한 것을 뒤집는 방식으로 해석됩니다. 아이처럼 연약하고 쉽게 상처받는 자신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더 이상 고통받지 않게 만드는 예방책으로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버림받은 상처로 고통받았다고 생각하는 자신을 가만히 살펴보겠습니다. 당신은 누군가를 우연히 만나 좋아하게 되고 그 사람과 연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당신은 친구 이상도 이하도 아닌 평범한 존재였습니다. 단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탐욕스러운 이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존재였을 뿐입니다. 그 사람은 그렇게 지난 몇 개월 혹은 몇 년을 당신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서 강탈해 갔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버림받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더 이상 머릿속에 비참한 쓰레기들을 담아둘 수 없습니다. 그 악취는 당신이 하는 말과 행동뿐 아니라 삶 자체를 오염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분노합니다. 세상을 향해, 그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이성을 향해, 자신이 처한 환경을 향해, 심지어 자신을 이따위로 낳아주신 부모를 향해 말이지요.


하지만 처음부터 화가 치밀어 오르고 그에 따른 분노를 누군가에게 퍼붓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그 시작은 미약했습니다. 여러 단계가 있다고는 하지만 화가 시작된 지점은 짜증이었습니다. 짜증은 말하자면 스파크 spark나 발화점 ignition point과 같습니다. 내 안에 화가 쌓일 대로 쌓인 울화통에 불이 붙어 걷잡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모든 감정이 비슷하지만 화도 일정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모든 에너지는 열이나 운동으로 변환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 즉 임계점을 넘어야 관찰됩니다. 화도 비슷합니다.  모든 상황에서 화가 치밀어 참을 수 없게 되는 상태로까지 전개되지 않습니다. 그 에너지가 열로 바뀌지만 주변과 접촉면적이 충분히 넓고 전도율이 높은 경우에는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온도는 낮아집니다. 그러니 상처로 화가 난 사람을 위로할 때는 아무말 없이 가만히 안아주세요. 공기보다 밀도가 높은 인간과 접촉하는 면적이 넒어지고, 화는 자연스럽게 가라앉습니다.  .


그런데 짜증이 심해지거나 반복적으로 나타나면 그 영향으로 화라는 에너지가 점차 증가하게 됩니다. 물체 내 분자 운동량이 급격하게 증가해서 더 이상 물체 내부에 담아둘 수 없는 경우 물체 자체가 운동량을 가지게 됩니다. 심해지면 외부에서 관찰할 때 물체가 유지하고 있던 형태가 바뀌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화가 난 사람이 돌발적인 행동을 하거나 이전과 다른 딴사람이 된 것 같아 보이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 에너지는 긍정적인 것일까요? 아니면 주변 모두에 상처를 입히는 파괴적인 것일까요? 그건 알 수 없습니다. 우연히 옆에 있는 나뭇가지로 옮겨간 에너지가 한겨울 조난자가 체온을 잃지 않도록 도움을 줄 수도 있고, 오랜 건조기로 바싹 마른 주변 숲을 모두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단순하게 “그 에너지를 조심해서 다루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어요.”라고 조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따금 그 에너지가 온몸을 휘감아 주체할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하기도 하거든요. 내가 폭발할 것 같은데 그걸 알아서 조절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무슨 원자력발전소에 있는 제어봉 같은 것이 우리 몸 안에 내장되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호르몬 분비를 연구한 학자에 따르면 폭발적으로 화를 내는 상태를 분노라고 할 수 있는데, 분노는 우리 두뇌에서 두 가지 서로 다른 기능을 하는 물질을 분비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아드레날린 Adrenaline(또는 카테콜라민 Catecholamine)입니다. 이 호르몬이 분비되면 우리 몸은 저장되어 있는 원료를 폭발적으로 에너지로 바꿔버립니다. 그러면 우리는 너무나도 충동적인 상태가 되어 어떤 행동이든 과감하게 해치웁니다. 다행스럽게도 그 효과가 지속되는 시간은 몇 분에 불과합니다.


두 번째는 당질 코르티코이드 Glucocorticoid입니다. 보통 스트레스 상황에서 분비되는데 의료계에서는 통증과 면역반응을 통제하는 기적의 치료제로 불린다고 합니다. 이 물질은 우리가 행동할 준비가 되면 그 효과가 짧게는 수 시간에서 길게는 며칠까지 지속됩니다. 몸이 외부에서 오는 자극에 너무 격렬하게 반응하지 않도록 통제하는 작용을 합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생존율을 높여준다고 합니다.


결국 화가 외부로 표출하는 것은 우리가 어쩔 수 없습니다. 호르몬이 나오는 통로를 전부 틀어막을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즉시 충동적인 행동으로 연결되는 것은 막아야겠지요? 앞선 연구결과에 따르면 몇 분만 잘 참으면 됩니다. 그걸 이겨내고 나면 우리 스스로에 대한 통제권을 화라는 녀석에게서 넘겨받고 그 에너지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래도 계속 뭔가 찜찜합니다. 구체적으로 짜증이나 화, 그리고 분노가 표출되는 상황과 작동 메커니즘을 이해해야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거나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조금 더 구체적인 사례는 다음 글에서 이어가겠습니다.



참고자료

조 팰카, 폴로라 리히트만, 구계원 옮김, 우리는 왜 짜증나는가, 파주, 문학동네, 2014.

수전 앤더슨, 안인희 옮김, 마음 치유 여행, 서울, 퍼블리셔스,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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