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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라 Sep 03. 2023

시민들이 지켜낸 민족자본은행 유적

목포 대중음악의 전당(구 호남은행 목포지점)

역사를 시대별로 구분할 때 근대 近代라고 하면 머릿속에서 다양한 이미지와 상징들이 떠오릅니다. 근대를 구분하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가 산업혁명이니까 증기를 내뿜으며 돌아가는 거대한 기계식 공장, 그런 공장을 돌려서 거대 자본을 축적한 배부른 자본가과 같은 것이 있겠네요. 또 다른 요소가 시민혁명이니까 시민들을 포함한 정치 담론이 이뤄지는 공회나 의사당, 급격하게 늘어나는 인구를 위해 지어진 공립학교와 학생들도 근대라는 단어와 함께 연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중요한 무언가가 있습니다. 잘 생각해 봅시다. 대규모 공장이나 자동화 기계를 만들고 거대 자본을 유통하고 공공시설이나 학교를 짓기 위해서 무엇이 반드시 필요할까요? 바로 은행입니다. 화폐를 발행하고 이를 유통하는 은행이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중세(아시아 사학계 분류를 따르자면 근세 近世)와 비교할 때 근대는 생산과 유통이 이뤄지는 규모와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커졌습니다. 웬만한 부자는 그러한 규모를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설사 혼자 부담할 수 있는 정도로 부자라 할지라도 자칫 사업이 실패해 버리면 거지꼴을 면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위험은 감수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 은행이 필요했습니다. 은행은 일정규모 이상 자본을 축적해 두고 이를 유통시키는 과정에서 이익을 취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막대한 자금이 일시에 필요한 사업가나 공공기관은 이를 쉽게 조달할 수 있어서 좋고, 사회에 흩어져있는 잉여자본을 모아놓은 은행은 적절한 위험성 평가를 거쳐서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19세기말 조선, 저항이 불가능한 시대적 요구에 따라 개항했던 목포는 말 그대로 근대화 물결, 아니 (일본제국 영향이 제일 컸으니까) 쓰나미를 정통으로 맞았습니다. 해안토지가 메워지고, 대규모 농장이 만들어지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유입되고, 공장이 들어서고, 공공시설과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와 함께 들어온 것이 일본에서 건너온 금융자본들이었습니다. 1898년 10월에 제일은행 第一銀行 출장소를 시작으로, 1906년 9월에 십팔은행 十八銀行 지점과 나가사키저축은행 대리점이, 1909년 11월에 한국은행 출장소가 들어섰습니다. 은행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금융업을 주로 하고 있던 목포금융조합,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목포신탁회사 같은 회사들도 자리를 잡고 이주 일본인들과 기업을 위한 금융업을 발 빠르게 전개했습니다. 예상이 가능한 이야기이겠지만, 이들 일본 금융자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돈을 조선인들보다는 일본인들에게 더 많이 빌려주었습니다. 은행에서 직접 돈을 빌릴 수 없었던 조선인들은 어쩔 수 없이 일본인들에게 고액 이자를 지불하고 사채를 빌려 써야 했습니다.


호남은행 湖南銀行은 조선들이 겪고 있었던 그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민족자본으로 금융회사를 설립하자는 목적으로 탄생한 호남지역 첫 은행이었습니다. 당시 호남지역 부호나 유력인사들이 호남은행 설립에 참여했으며, 대표적인 인물들로 현준호, 김상섭, 문재철, 차남진, 김병로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당시 자본금 150만 원으로 1920년 10월 광주에 호남은행 본점을 설치했고, 목포에도 지점을 두었습니다. 현재는 '목포 대중음악의 전당'으로 운영되고 있는 '구 호남은행 목포지점' 건물은 1929년 11월(상량문 기록에는 1926년 7월)에 건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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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 상식 1]

호남은행 설립에 기여했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는 매우 다양하고 흥미롭습니다. 현준호는 1919년 7월 호남은행발기회 총회에서 발기인 겸 총대(대표이사)를 맡아 은행설립을 주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막대한 부와 명예를 활용해 다양한 기부와 사회공헌활동을 전개했지만, 일제강점기 동안 오래 중요한 관직을 맡았고, 막대한 자금을 일본제국에 헌납했던 전적도 함께 보유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는 부친과 함께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부"에 이름이 올랐습니다. 참고로 현대 그룹 회장인 현정은 씨가 현준호의 손녀입니다.

김신석은 뛰어난 회계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조선은행으로부터 스카우트되어 호남은행을 이끌었고, 호남은행 목포지점장을 거쳐 전무 직위에까지 올랐습니다. 그도 현준호와 함께 훗날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맡았고, 1935년 조선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조선인 공로자 353명 중 한 명으로 수록되었으며, 역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부에 이름이 올랐습니다. 참고로 삼성그룹 이건희 전 회장의 부인 홍라희와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 씨가 김신석의 외손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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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은행 목포지점은 설립 이후 민족자본을 활용해 조선인들의 상업활동을 돕는다는 취지를 충실하게 이행했습니다. 대부업뿐만은 아니었습니다. 목포지점은 건물 2층을 목포지역 조선인 상공인들로 구성된 상공인 동지회에게 사무실을 내어주었습니다. 2층 공간은 이후 제1회 목포시민운동회, 목포 고등보통학교 설립위원회들의 활동을 논의하고 후원하는 지역발전을 협의하는 중요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근대를 상징하는 거대 금융자본을 상징하는 건물이 지역 시민들을 위한 공익활동을 위한 공간을 겸하는 기능을 했던 것입니다. 순수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은행이 민족 스스로가 자생하고 번영하기 위한 기능을 통합해 이행하는 역할까지 겸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구 호남은행 목포지점'은 목포라는 지역이 근세에서 근대로 빠르게 이동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상징적인 건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포에 남아 있는 근대문화역사 유적들 중 공공건축물들은 해방을 맞이하고 세월이 흐르면서 대부분 자연스럽게 용도가 다른 것으로 변경되었습니다. 하지만 '구 호남은행 목포지점'은 동일은행(1942년 4월, 다른 기록에는 5월), 조흥은행(1942년 9월), 신한은행(2006년 4월)으로 모습을 바꾸면서 은행으로 영업을 이어갔습니다. 2009년 등록문화재 29호로 지정되면서 목포문화원이 '구 일본영사관' 건물에서 이 건물 2층을 임대해 사용했고, 2021년 수강로 12번길로 문화원이 다시 이전할 때까지 ATM 기기들을 두고 영업을 이어갔습니다. 이 건물은 한 때 목포지역 재생사업 과정에서 철거 대상으로 논의되기도 했지만, 뜻있는 시민들과 관계기관들이 노력을 기울인 덕분에 오늘날까지 옛 모습 그대로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현재는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조성사업과 함께 목포시에서 매입해 '목포 대중음악의 전당'으로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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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 상식 2]

2021년 건물을 리뉴얼하는 과정에서 신한은행 간판을 철거했는데 떼어낸 자리에 '주식회사 조흥은행목포지점'이라는 명칭이 벽면에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조흥' 글자를 제외하고 나머지 글자들은 최초 설립 당시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간판에 있는 목포木浦 글자 중 浦에서 점획 하나가 빠져있습니다. 사람들은 설립자 현준호가 "일제로부터 우리가 독립하면 찍겠다" 또는 "목포지점이 자리 잡고 번창하면 찍겠다"라고 말했다고 전합니다. 글씨를 새기는 조각공이 단순히 실수한 것일 수는 있지만, 은행이 돈이 없어서 그걸 오랫동안 보수하지 못했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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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대중음악의 전당 건물은 지역 대중음악이 배출한 대표적인 인물과 그들이 활동했던 다양한 기록을 한자리에서 보고 체험할 있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다양하고 정성스러운 전시물들이 있고 이곳이 1920년대 후반에 지어진 대표적인 근대건축물이라는 것들만으로는 그렇게 의미 있는 곳이라고 하기에는 어렵습니다. 구 호남은행 목포지점을 설립할 당시 선조들이 바랐던 것들, 그리고 그 공간에서 이루어졌던 민족번영과 근대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미리 알고 찾는다면 건물이 새롭게 보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자료

목포문화원 편집부, 목포문화, 통권 154호, 목포, 목포문화원,2021.

최성환, 목포, 파주, 21세기북스, 2020.

김재석, 목포, 광주, 문학들, 2012.

목포시사편찬위원회, 다섯 마당 목포시사, 목포, 목포시, 2017.

김정섭 역, 목포지(木浦誌 한국어판), 목포, 향토문화사, 1991.

1897개항문화거리 스토리텔링모임, 1897개항문화거리 스토리텔링북, 목포, 목포시, 2019.


[관람 정보]

[주소] 전라남도 목포시 해안로249번길 34(상락동1가) 

[관람료] 무료

[관람시간] 화요일~일요일 / 오전 9시 ~ 오후 6시

(매주 월요일, 1월 1일 휴관,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개관하고 다음 평일에 휴관)

[주차 정보] 전용 주차장 있음.

[유의사항]

*상설전시 이외에도 다양한 특별전, 기획공연 등이 정기적으로 개최됩니다. 방문하기 전 일정을 확인하면 더욱 특별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목포역과 목포항을 잇는 도로 정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고 전용주치장도 갖추고 있어 접근성이 매우 좋습니다. 하지만 도로가 다소 협소해  차량으로 이동하기에는 조금 불편할 수 있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도보로 이동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목포역에서 걸어서 단 7분이거든요.


[2023년 전시 내용]

1층 전시실.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소개, 호남은행 역사실, 근대문화 VR 체험, 레트로 골목길과 카페

2층 전시실. 한국의 대중음악사, 목포의 대중음악, 명예 대중음악가 '이난영과 음악가족' 기획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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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가면 너무 달달한 꿀팁!>

*목포근대역사문화공간 전체에서 레트로한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합니다. 의상을 입어보거나 음악을 듣고 VR체험까지 할 수 있습니다.

*목포 대중음악, 아니 우리나라 근대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활동했던 역사를 자세하게 볼 수 있습니다. 희귀한 영상자료도 있으니 음악사에 관심이 있는 여행객이라는 반드시 가 보세요.

*목포역에 도착한 여행객이라면 근대로 떠나는 시간여행을 시작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입니다.

*근처에 있는 음식점들과 상점들은 목포에서 가장 오래된 노포들입니다. 볼거리는 물론이고 미식여행을 위해 찾은 분들에게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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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것들>

*3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목포문화원이 있습니다. 깊이 있는 역사자료와 전문가가 설명해 주는 목포문화 이야기가 궁금한 분들은 찾아가 보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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