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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라 Sep 03. 2023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목포근대역사관 2관(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우리나라 근대역사 近代歷史는 그 명암이 다른 어느 시기보다 짙습니다. 언제부터를 근대로 분류해야 하는지는 서양사와 동양사가 조금 다릅니다. 더구나 우리나라 역사는 일본 학자들이 만든 고대-중세-근세-근대-현대 5분법을 명확하게 적용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통상 강화도조약(1876년) 또는 갑오개혁(1894)을 근대역사 출발점으로 분류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 근대역사는 명암이 짙을까요? 그 이유는 다른 나라들보다 근대화에 먼저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식민지 시기를 겪었던 뼈아픈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서양사를 기준으로 근대화는 산업혁명으로 대규모 자본가가 출현하고 봉건적 의식에서 벗어나는 시민혁명이 일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조금 달랐습니다. 먼저 산업혁명에 성공했던 일본과 같은 제국 열강들이 축적된 대규모 자본을 바탕으로 강압적인 요구를 해왔고, 우리는 그런 요구를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산업이 발전했다기보다는 반대로 우리가 가지고 있던 자원과 자본이 외부로 끊임없이 유출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겪었던 어두운 역사적 경험을 상징하는 단어가 바로 '척식 拓殖'입니다.


청일전쟁이 끝나고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획득한 일본제국은 우리나라 땅을 미개한 땅으로 보고 이를 개척 開拓하고 문명화된 사람들을 이주시키는 식민 植民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1908년 만들어진 국책회사 國策會社가 바로 동양척식주식회사 東洋拓殖株式會社입니다. 동양척식회사 본부는 일본 도쿄에 두고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할 때까지 경성부 京城府, 만주국 満洲国, 몽골, 사할린 樺太, 남양제도 南洋諸島, 미크로네시아 등에 지부를 두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경성을 시작으로 나진, 평양, 원산, 사리원, 대전, 이리, 대구, 부산, 목포 등에 지점을 설치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건물이 남아 있는 곳은 대전, 부산, 목포 세 곳이며, 대전은 문화예술공간으로, 부산은 부산근대역사관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목포에 있는 건물은 1921년 11월에 완공되었고, 현재 남아 있는 세 곳 중에서 규모면으로는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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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 상식 1]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일본인 이민, 토지 수용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지만 점차 지주적 농장경영, 장기대부와 같은 금융업과 지주회사 역할로 사업영역을 확대했습니다. 그러한 기능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전시관 내부에 남아 있는 대형금고입니다. 잘 보존된 외관과 달리 내부는 역사관으로 리모델링하면서 과거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는데, 두텁고 무거운 대형금고문은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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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본제국이 행했던 억압적인 식민지배와 잔혹한 경제적 수탈도 시민의식이 자발적으로 성장하고 억압에 저항해 분노와 물리적 항쟁으로 표출되는 것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특히 중세 봉건시대부터 경제적 시민적 자유를 누리지 못하던 노동자 농민 계층은 동학농민혁명과 선교사들이 전파한 기독교 신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민족자주의식과 자유인권의식에 눈을 떴습니다. 그 결과 목포지역에는 부두노동운동, 소작쟁의운동, 학생 항일운동과 같은 시민저항을 상징하는 다양한 역사적 사건들이 지속적으로 일어났습니다. 목포근대역사관 2관에서는 그와 같이 우리 민족이 끊임없이 일제에 항거했던 기록들을 함께 체험하고 관람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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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 상식 2]

대부분 사람들은 동양척식이라는 말이 일본 패전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일본은 식민지 개척으로 위한 전문 인재를 양성하고 이를 학문적으로 뒷받침하는 척식학(식민정책학)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1900년, 도쿄 한복판에 이를 연구하고 인재들을 교육할 학교를 창립하고 1922년 대학으로 설립했습니다. 사립대학이라고는 하나 교장들은 모두 일본제국군과 정치가 출신들로 채워졌으며, 우리도 잘 아는 나카소네 야스히로 中曽根 康弘 일본 총리가 12대 총장을 역임했습니다. 학교의 규모도 점차 커져서 지금은 도쿄 하치오지 八王子에 국제캠퍼스까지 두고 있습니다. 전쟁 종식과 함께 일본이 식민지를 두고 지배하는 제국의 꿈을 버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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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목포근대역사관 2관 건물은 우리나라 해군과 해양경찰 역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해방 이후인 1946년 조선해안경비대가 창설될 당시 목포경비부 건물로 활용되었습니다. 이후 1989년까지 해군 목포해역방어사령부 헌병대 건물로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헌병대가 영암으로 이전하면서 건물이 비워졌고 약 10년간 방치되었으며, 결국 철거 위기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지역사회는 '역사는 공간을 통해서 기억'되며, 아무리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시간일지라도 '건축물을 통해 그 시간이 남긴 흔적을 기억'해야 한다며 뜻을 모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노력한 결과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사 건물은 1999년 11월 전라남도 기념물 174호로 지정되었고, 보수와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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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 상식 3]

건물을 해군 헌병대가 오래 사용했던 만큼 그와 관련된 유적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전시관 내부에는 해군목포경비부 깃발과 사진이, 외부에는 해군 목포기지 주둔 기념비가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동양척식주식회사에서 사용하던 대형금고를 입구 위아래에 구멍을 뚫고 철창을 설치해서 유치장으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지금도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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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근대역사관 2관은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의 중심입니다. 지리적으로도 과거 일본이 조성했던 번화가 본정本町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만큼 당시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사가 지역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만일 조선해안경비대, 해군, 지역주민들이 이 건물을 유지하고 지켜내지 못했다면 우리는 근대화 과정에서 일어났던 고통스럽고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근대역사관 2관을 방문할 때는 흥겨움을 잠시 누그러뜨리고 역사를 면면히 이어온 선열들을 대하는 경건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참고자료

최성환, 목포, 파주, 21세기북스, 2020.

노대현, 목포산책, 광주, 전남대학교출판문화원, 2019.

김재석, 목포, 광주, 문학들, 2012.

목포시사편찬위원회, 다섯 마당 목포시사, 목포, 목포시, 2017.

김정섭 역, 목포지(木浦誌 한국어판), 목포, 향토문화사, 1991.

黒瀬 郁二, 東洋拓殖会社 : 日本帝国主義とアジア太平洋, 博士論文, 一橋大学, 2004.


[관람 정보]

[주소] 전라남도 목포시 번화로 18 (중앙동 2가 6) 

[관람료]

성인(20세 이상) 개인 2,000원, 단체 1,500원

청소년(14-19세) 개인 1,000원, 단체 700원

초등학생(8-13세) 500원

유아(0-7세) 무료

[관람시간]

화요일~일요일 / 오전 9시 ~ 오후 6시

(매주 월요일, 1월 1일 휴관,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개관하고 다음 평일에 휴관)

[요금할인]

목포시민 50% 할인. 65세 이상 무료관람, 복지카드 소지자 무료관람, 국가유공자증 소지자 무료

[주차 정보]

전용 주차장 있음.

[유의사항]

*목포근대역사관 1관에서 구매했던 입장권을 잊지 말고 챙겨 오세요. 입장권 하나로 두 곳 모두 입장이 가능합니다.

*목포근대역사문화공간이 대부분 일방통행로입니다. 차량으로 이동하는 경우 역주행하지 않도록 유의하시길.


[2023년 전시 내용]

상설전시실 1. 목포근대역사관 2관 건물에서 이루어졌던 역사적 사실을 보여준다.

상설전시실 2. 목포에서 일어났던 일제강점기 저항과 민주화 운동 등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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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가면 너무 달달한 꿀팁!>

*이곳도 오전 10:30과 11:30, 오후 13:30과 15:00에 가면 해설사분이 직접 설명하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건물 외형은 일본 근대식 상업건물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외벽을 올려다보면 벚꽃문양, 일장기 등 일본을 상징하는 문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건물 부속 주차장 옆에는 1897 여행자 쉼터가 있습니다. 다양한 여행정보는 물론 휴대전화 충전기, 대형 보관함, 에어컨이 완비된 쾌적하고 편안한 휴식공간도 함께 있습니다. 아직 숙소에 짐을 두지 못한 여행객이나 이곳저곳 다니느라 지친 관광객들에게 오아시스 같은 장소이지 꼭 들러보세요.

*이곳은 목포근대역사문화공간 투어를 시작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근처에는 새로 조성된 이색적인 카페들과 다양한 식당들이 자리 잡고 있어서 관광하기에 제격입니다. 아! 근대역사관 2관은 해가 지고 조명이 켜지면 더욱 멋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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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것들>

*1897 여행자 쉼터 바로 옆에는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공원 입구에 일본으로 끌려갔던 조선인 강제 노동자들을 추모하는 노동자상과 건립에 기여한 단체와 개인들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있습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라는 문구가 가슴을 무겁게 만들지만, 잊지 말고 함께 관람하기를 권합니다.

*여느 관광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카페나 음식점들이 식상하게 느껴진다면 일본식 가옥들이 있는 거리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근대역사문화공간 끝자락에 있으며, 번화로 4번지에 이채로운 일본식 가옥들이 모여있습니다. 

*목포는 우리나라 기독교 문화에서 '성지'로 불린다. 선교사보다 먼저 성경이 유입되어 자생적으로 신앙이 생겼다는 역사적 관점과는 별개로 외국인 선교사들이 대규모로 유입되어 다양하게 활동했기 때문에 고전적인 성당과 교회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경동성당으로 근대역사문화공간 중심에서는 조금 벗어나 있지만 근대역사관 2관에서 매우 가깝습니다. 걸어서 3분 거리이니 여기까지 왔다면 찾아가 볼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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