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근대역사관 1관 (구 일본영사관)
사람들이 목포를 찾는 이유는 그 사람들 숫자만큼이나 다양합니다. 미향, 예향, 근대 1번지 등 목포를 수식하는 다양한 말들처럼 맛있는 먹거리, 예술적 향취, 근대사적 발자취 같은 것들이 우리를 한반도 남서쪽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작은 항구도시로 이끕니다. 하지만 그 많은 것들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것은 바로 '근대역사문화공간'입니다. 목포근대역사문화공간은 우리나라 최초로 일정한 건물이 아니라 공간 자체가 문화재(국가등록문화재 제718호)로 등록되어 있으며,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근대 생활상이 마치 지금도 살아 숨 쉬는 듯해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립니다. 그런데 목포는 왜 그런 공간을 품게 되었을까요?
조선말이었던 1897년, 우리 선조들은 저항이 불가능했던 시대적 요구로 인해 외국들과 교역이나 통상을 전담하는 항구로 목포를 지정해 그들에게 열어주어야 했습니다. '항구를 여는 것이 뭐 대단한 일이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매우 이례적이고 복잡하며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선택이었습니다. 먼 타국에서 대형선박을 타고 바다를 건너 우리나라에 도착한 외국인들과 교역하려면 그 업무를 처리할 관공서도 설치하고, 외국인들이 머물 곳도 마련해주어야 하고, 자국 또는 자회사 사무실을 둘 수 있는 공간(건물 등)도 찾아줘야 합니다. 더구나 교역 규모가 증가하면 그에 따라 증가하는 이익이나 자본을 쫒아서 내외국인들이 유입되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는 여간 골치 아픈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개항이 골칫덩어리만은 아니었습니다. 정부 입장에서도 새로 개항한 목포를 출입하는 선박과 물건들에 관세를 부과하면 막대한 세수를 챙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외국 회사와 외국인들을 위해 이러저러한 여건을 마련해주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건물과 이국적인 상점들이 들어서고, 낯선 옷차림을 한 외국인들과 그들이 고국에서 즐기던 매혹적인 문화들이 함께 자연스레 유입되니까요.
목포근대역사관 1관은 당시 역사・정치・사회적 격변을 한꺼번에 이해하는데 가장 적합한 장소입니다. 1897년 10월 1일 개항과 함께 일본, 러시아, 영국 같은 열강들이 자국 조계지를 확보하고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지만, 결과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일본이 승리했습니다. 그 결과 세워진 것이 현재 목포근대역사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구舊 목포 일본영사관 건물입니다. 이 건물은 1900년에 완공된 벽돌조 건물로 근대역사문화공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더구나 목포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 건축물이면서 건축 당시 원형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건축과 역사적 측면에서도 매우 귀중한 유적으로 평가받습니다.
당시 목포 일본영사관은 외교업무를 맡기 위해 개설되었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일을 해야 했습니다. 개항과 동시에 급격하게 늘어난 일본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순사를 특파하고, 오사카상선회사大坂商船會社가 일본 오사카大坂와 인천 사이에서 운행하던 노선을 변경시켜 목포에 기항하도록 조정했습니다. 말 그대로 일본 정부가 수행하는 모든 업무를 대행하는 대표부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면서 영사관은 1906년부터 목포 이사청으로, 경술국치 이후부터 해방 때까지는 목포부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나라가 해방을 맞이한 이후에는 그대로 목포시청으로 사용되다가 1974년부터는 시립도서관, 1990년부터는 목포문화원으로 사용되었다. 2014년에 이르러 지금과 같은 목포근대역사관 본관(1관)이 되었습니다.
근대역사관 1관 건물은 그러한 역사적 상징성 이외에도 건축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건물입니다. 높이 13.65m로 장방형 서양식 외관을 가지고 있는 이 건물은 목포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근대건축물이기도 하지만, 지어질 당시 일본 기준으로도 매우 뛰어난 건축물이었다고 합니다. 일본은 건축 당시 재외 일본 영사관 건물 중에서 가장 공을 들였고, 중국 샤먼에 있는 영사관과 함께 최고 건축물이라고 자부했습니다. 심지어 일본에 조차 근대역사관 1관과 같은 벽돌로 지어진 대규모 공공건물이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어 있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랬지만 일본도 1800년대 중반까지 서양식 건축물을 지어본 경험이 없었다. 그리고 자연환경과 재료 문제로 민간주택은 물론 관공서 건물도 대부분 나무로 지었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벽돌을 만들어 건물에 사용하기는 했지만 대규모 건물에 사용하기에는 품질이 열악했습니다. 메이지 시대에 접어들면서 서양 건축기법과 함께 벽돌을 대규모로 생산할 수 있는 시설과 기술이 일본에 유입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대형 건물에 사용할 수 있는 벽돌을 생산하는 본격적인 공장식 벽돌제조기업들이 탄생했고, 1886년 오사카에서 창업한 관서벽돌회사關西煉瓦会社, 1887년 도쿄 인근 사이타마埼玉에서 설립된 일본벽돌제조회사日本煉瓦製造会社 같은 회사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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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 상식]
1984년 건물에 있는 화장실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붉은색 벽돌 뒤에 '오사카大坂'라고 각인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것으로 건축자재들을 오사카에서 가져와 건물을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하네요. 오사카에서 벽돌을 가져왔던 이유는 아마도 (1) 당시 목포에 기항하던 상선을 운영하던 회사가 오사카에 기반을 둔 오사카상선회사였고, (2) 건축물에 사용할 벽돌을 생산하는 대규모 제조공장이 오사카에 있었기 때문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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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다양한 공공시설이나 관공서가 벽돌로 지어졌습니다. 하지만 관동대지진이 발생하고 나서 벽돌로 지어진 건물이 지진에 취약하다는 걸 깨달은 일본 정부는 당시 최신 기술이었던 철근콘크리트 기법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 결과 목포근대역사관 1관과 같이 지금까지 원형에 가깝게 보존된 벽돌조 공공건축물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근대역사관 1관을 목포근대역사문화공간을 여행하는 출발점으로 삼기에 충분하지 않을까요?
참고자료
최성환, 목포, 파주, 21세기북스, 2020.
노대현, 목포산책, 광주, 전남대학교출판문화원, 2019.
김재석, 목포, 광주, 문학들, 2012.
목포시사편찬위원회, 다섯 마당 목포시사, 목포, 목포시, 2017.
김정섭 역, 목포지(木浦誌 한국어판), 목포, 향토문화사, 1991.
平山育男, 闋西煉瓦会社の舞子移転匕煉瓦の製造、社章、ハンター商会の関わりについて, 日本建築学会計画系論文集 第84巻 第755号,221-227,2019.
大川三雄, 材料からみた近代日本建築史-その4-日本における煉瓦建築の盛衰, 積算資料アーカイブ, 2014.
[관람 정보]
[주소] 전라남도 목포시 대의동 2가 1-5
[관람료]
성인(20세 이상) 개인 2,000원, 단체 1,500원
청소년(14-19세) 개인 1,000원, 단체 700원
초등학생(8-13세) 500원
유아(0-7세) 무료
[관람시간]
화요일~일요일 / 오전 9시 ~ 오후 6시
(매주 월요일, 1월 1일 휴관)
[요금할인]
목포시민 50% 할인. 65세 이상 무료관람, 복지카드 소지자 무료관람, 국가유공자증 소지자 무료
[주차 정보]
근대역사관 전용 주차장은 없지만, 인근 공영주차장과 교회 주차장이 무료로 개방되어 있습니다.
[유의사항]
*관람료 할인을 위해서는 대상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나 신분증을 제시해야 합니다.
*관람 종료 1시간 전에 매표와 입장이 마감되니 오후에는 조금 서두르는 것이 좋습니다.
[2023년 전시 내용]
테마 1. 목포진으로 출발하다.
테마 2. 개항장으로 재출발하다.
테마 3. 저항의 제일선이 되다.
태마 4. 외래문화가 전파되다.
테마 5. 대중문화의 시대
테마 6. 만세운동 함께 해요.
테마 7. 근대 도시 건축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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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가면 너무 달달한 꿀팁!>
*오전 10:30과 11:30, 오후 13:30과 15:00에 가면 해설사분이 직접 설명하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단, 관람객이 10인 이상 모인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혼자 갔는데 전문해설사 설명을 듣고 싶다고요? 조심히 다가가서 말을 붙여 보세요. 조근조근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주십니다.
*주말에는 줄을 서야 입장할 수 있을 정도로 관람객이 몰리니 가능하면 일찍 가거나 평일 관람을 노리는 것이 좋습니다.(2023년 1월부터 8월까지 입장권 발매수가 25만 장을 넘었다고 합니다. @..@)
*1관에서 구입한 입장권을 가지고 가면 2관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반대도 가능합니다.)
*건물 외관을 자세히 살펴보면 일본 국기와 왕실을 상징하는 문양이 곳곳에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출입문 유리창 장식 하나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대부분 유지보수로 사라졌지만 아직 6.25 전쟁 당시 총탄을 맞았던 흔적이 남아 있으니 찾아보세요.
*전시물이 따분하다고요? 모든 공간에서 천정을 보세요. 정성을 들인 일본 건축물은 공간에 따라 서로 다른 조명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방마다 다른 장식과 모양을 한 전등들이 그곳이 과거에 어떤 공간이었는지 비밀을 속삭여줍니다.
*방마다 수줍게 자리 잡고 있는 벽난로도 재미있는 관람 포인트입니다. 당시도 그렇지만 (북해도를 제외한) 일본 대부분 지역은 건축물에 난방시설을 따로 하지 않습니다. 고전적인 벽돌 벽난로는 일본에 비교할 때 일본인들에게 한반도가 얼마나 춥게 느껴졌는지 알 수 있는 기능입니다.
*최고 꿀팁! 관람시간은 비교적 일찍 끝납니다. 하지만 진짜 관람은 밤에 할 수 있습니다. 도로에서 멀리 바라본 모습은 이 지역 최고 야경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때 봐야 2019년 방영된 '호텔 델루나'(tvN 방영, 아이유, 여진구 주연)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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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것들>
*도로에서 근대역사관 1관으로 올라가다 보면 초입에 2016년 건립된 목포평화의 소녀상이 외롭게 서있습니다. 근대역사관 1관이 일본 영사관으로 지어졌고, 일제 강점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니 관람하기 전에 평화의 소녀상을 보며 이 땅에서 일어났던 아픈 역사를 기억해 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1관에 있는 전시물을 다 관람하고 건물 외관을 돌아보고 나면 뒤편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방공호 유적을 꼭 관람하세요.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 미군의 공습을 너무 두려워해 대부분 공공시설에 방공호를 만들었습니다. 목포근대역사문화공간 곳곳에도 방공호가 있지만 근대역사관 1관 뒤편에 있는 방공호가 가장 큽니다. 건설 당시 강제 동원되었던 한국인 노동자들이 겪었던 고난과 아픔을 느낄 수 있습니다.
*1관을 바라보고 왼편에 서 있는 석조 건물도 국가등록문화재(등록문화재 제588호)인 구 목포부청서고입니다. 1932년에 세워진 이 건물은 건설공사에 당시 목포형무소 죄수들이 동원되었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