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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라 Sep 09. 2023

멀리서 보면 산동네, 가까이서 보면 살 동네

다순구미 (온금동)

"빨랫줄에 걸린 꽃무늬 몸빼바지 깃발처럼 나부낀다

 바다에 나간 지아비 기다리며 늙어가는 지어미가 사는 집인 걸"  -김수진, "다순구미 풍경" 중에서-


깡마르고 등이 굽은 할머니가 양파를 한 짐 머리에 지고서 가파르고 굽이진 다순구미 좁은 골목을 돌아 오르고 계십니다. 보다 못해 성큼 걸어가 양파망을 빼앗아 봅니다. "아이고, 어르신 이리 주세요." "괜찮은데....... 고마워요." 양파라고는 해도 한 망 가득이라 무게가 제법 나갑니다. 농사를 잘 지으셨네요. "어디까지 가셔요?" "얼마 안 멀어요." "그럼 다 가서 알려주세요." "에휴, 나이 드니까 늘 다니던 길도 힘드네." "저짝 평상까지. 거기 위에 올려놔요." 이따가 아들이 차를 가지고 와서 싣고 간답니다.


가방에서 손선풍기를 꺼내 그늘막 평상에 앉아 땀을 식히고 계신 할머니 쪽으로 틀었습니다. "양파가 실하네요. 농사 잘 지으셨어요." 유달산 산비탈에 작은 집들이 빈틈없이 들어찬 온금동 다순구미 마을에 어디 농사지을 데가 있나 싶어 할머니에게 물어봤습니다. "양파도 심고, 고구마도 심고, 파도 심고, 쪼오끔 있으면 배추씨 뿌릴 때에요." 다순구미 사람들은 집을 짓기 어려운 암벽 사이사이 흙이 조금이라도 보이는 곳이면 모두 밭을 일궈 채소를 길렀습니다. 논농사는 못해도 다른 채소는 심을 수 있으니까요.


"올라오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지내기는 나쁘지 않아. 바람도 시원하게 불고 멀리까지 보이는 경치도 좋아." 할머니 이야기가 맞습니다. 평상이 있는 좁은 골목 뒤는 산그늘이 드리워있고, 서늘한 산바람이 솔솔 불어와 양파를 짊어졌던 젖은 어깨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식혀줍니다. 멀리 내려다 보이는 목포 앞바다 전경도 훌륭하네요. 바다 건너 신항만도 보이고, 배가 드나드는 걸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다순구미 아랫마을 집들은 기와로 갈아엎어 번듯해 보이지만, 여기 윗마을은 아직도 함석지붕에 군데군데 부서져 방치된 빈집이 많습니다. "그래도 여기서 어찌 사셨어요. 힘드실 텐데. 우물은 있나 몰라요." “저 마을 뒤편으로 가면 우물이 있었지.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고. 그런데 지금은 다 시멘트로 메웠어. 사람 빠질까 봐. 수돗물 나오니까 이젠 그 물 안 먹어. 그리고 물맛도 짜. 바닷물이 들어오는 건 아닌데, 집에서 흘러 보낸 물들 때문에 더러워져서 그런가 봐. 그래서 지금은 메워버리고 안 써.” 


다순구미 가파른 골목은 차는커녕 자전거도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좁습니다. 바위 언덕에 얹어진 조그마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길이라고 해 봐야 집에서 흘러나오는 생활하수가 굽이굽이 만들어낸 작은 골을 덮은 것이 길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도로를 포장하기 전에는 온 동네가 물기로 축축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대가 모두 암반이고 경사가 급해서 물이 고여 냄새가 나거나 좁은 골목이 모두 진창이 될 일은 없어 보였습니다. 좁디좁은 구비길은 어디로 이어지는지, 심지어 막다른 골목인지 산비탈 텃밭으로 난 길인지 알 수 조차 없습니다. 길이 나 있으리라는 희망에 종아리 힘을 더해보지만 금세 골목 안 작고 녹슨 철 대문에 가로막힙니다. 위로 올라가 보자, 위로. 커다란 바위 위로 난 좁은 길을 조심조심 돌아 올라가니 작은 텃밭이 나옵니다.


마을을 찾는 객들에게는 매우 불친절한 길, 그저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산 사람만이 길을 알 뿐입니다. 그나마 길도 자신이 낸 길이 아니라 자연이 만들고 인간이 덧입힌 초라한 길입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제법 살았는데 이젠 남은 이가 별로 없다고 합니다. 아랫마을 사람들은 조선내화가 세워지고 공장에서 일하면서 돈도 많이 벌고 했답니다. 하지만 섬에서 건너와 작은 째보선을 타고 고기를 잡던 사람들, 돌아오지 못해 자식들과 덩그러니 남겨졌던 아낙들은 더 척박한 윗동네에 머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나마 지금은 그 조금새끼들이 다 장성해 다른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아직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니기 불편해도 내 텃밭이 있고 초라하지만 내 집이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을 뒤편으로 차가 들어올 수 있는 작은 길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유달산 순환도로에서 갈림길이 하나 나와서 마을로 이어집니다. 할머니가 가리킨 방향으로 승용차 두세 대가 주차할 수 있는 작은 공터가 보입니다. 할머니가 말한 시멘트로 메워버린 우물터로 추측됩니다. 예전에는 이곳에 동네 아낙들이 모여 밭에서 따온 채소를 씻고 빨래를 하며 배를 타고 나간 남편을 기다렸겠지요. 공터 옆으로 작은 포장도로가 있습니다. 입구에 ‘막다른 길이니 차로 내려가지 마세요"라는 표지가 보입니다. 나무숲 사이로 난 길을 걸어 내려가 보면 경사가 조금 심하지만 조용하고 포장이 잘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중간에 차가 다니에게는 폭이 좁은 곳이 나옵니다. 세상이 좋아져서 차가 다니는 길도 생기고, 할머니는 지금이 평생에서 제일 편합니다.


다순구미는 유달산 남쪽과 서쪽 자락에 다닥다닥 붙어 바다를 굽어보는 마을로 목포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입니다. 쾌적한 느낌이 들 만큼 온도가 알맞다는 의미를 가진 '따숩다'라는 말 어간이 변형된 '다순'과 바닷가나 강가 후미진 곳을 뜻하는 '구미'가 합쳐져 '다순구미'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자로는 온금동溫錦洞이라고 표기합니다. 북서풍이 직접 닿지 않아 겨울에도 따뜻하고 양지바른 곳이라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곳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이주민들로, 바다를 생업 터전으로 삼았던 진도군 조도면 출신 어부들이 하나둘 이곳으로 모여들어 둥지를 틀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마을에 있는 수원지라고 해봐야 작은 샘물 몇 곳이 전부였기 때문에 아낙네들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 멀리 동쪽에 있는 섬, 똥섬까지 물을 길어 다녀야 했습니다. 다행히도 1922년 정인호라는 사람이 돈을 들여 이곳에 큰 우물을 만들어 주었는데 지금도 '큰샘'이라고 불립니다. 지금도 우물 뒤편에 그때 공적을 기리는 시혜불망비가 남아 있습니다.

1900년대 이전 목포 지도. 대규모 간척으로 넓어진 지금과 많이 다르다. 출처: EBS 다큐멘터리 한국기행, 목포는 항구다



개항 이후에 외지에서 들어온 조선인들도 도시 북쪽이나 다순구미 근방인 유달산 서쪽 자락 달동네에 살림을 꾸려야 했습니다. 달리 갈 곳이 없었습니다. 이곳에 섬에 살던 뱃사람들도 더 들어오고, 1938년 세워진 조선내화 공장이 들어서면서 마을 주민들과 함께 공장 근로자들이 함께 거주하기도 했습니다. 마을 입구에는 아직도 공장 건물의 흔적들이 남아있습니다. 1978년까지도 이곳에는 목포에서 유일하게 산신당이 있었고, 그곳에서는 산신제를 매년 지내왔다고 합니다. 개항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옛날 목포 풍경이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입니다.

1980년대 다순구미 전경. 아직 째보선창이 보입니다. 지금은 모두 간척사업으로 매워졌습니다.


다순구미는 전통적으로 바다가 삶의 터전인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남편들은 뱃일을 하고 아내들은 바다 나간 남편을 기다리며 생선을 팔거나 그물을 수리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가장 적은 조금사리가 되면 바닷물이 빠져 배를 띄울 수 없기 때문에 뱃일을 하던 남편들은 일을 쉬고 집에 머물렀습니다. 이때 아이를 갖는 집이 많아 동네엔 생일이 같은 아이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을 '조금새끼'라 불렀습니다. 그래서 이들 '조금새끼'는 자연스럽게 생일이나 생월이 같았습니다. 이들은 자라서 아버지 뒤를 이어 바다를 생업 터전으로 삼아야 했고, 함께 배를 타고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면 아무도 돌아오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같은 날 장례를 치르게 되는 거지요. 같은 날 태어나 같은 우물을 마시고 자라서 같은 배를 타다가 같은 날 바다에 잠들었던 다순구미 사람들. 세월이 흘러 이곳도 재개발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이야기도 있고, 조선내화 공장부지는 등록문화재가 되어서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해 나간다고 합니다.

조선내화 공장이 있던 폐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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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것들>

*아리랑고개를 넘어가면 과거 조선내화 공장 터가 나옵니다. 조선내화는 일제강점기 말인 1938년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 내화벽돌 생산 공장이었습니다. 건축물은 물론 용광로에 들어가는 고품질 벽돌을 생산하는 국내에서 유일한 공장이었습니다. 2017년 등록문화재 제707호로 지정받았습니다.

*다순구미 바로 옆에는 보리마당이 있습니다. 1980년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으로 골목 구석구석 벽화와 시화로 장식되어 있어 통영 동피랑, 부산 감천마을과 유사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곳입니다. '영화 1987'과 드라마 '도도솔솔라라솔' 촬영지로 유명합니다. 바닷가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카페도 있습니다.



참고자료

김재석, 목포, 광주, 문학들, 2012.

노대현, 목포산책, 광주, 전남대학교출판문화원, 2019.

목포문화도시센터 발행, 목포의 토속문화, 목포, 2023.

목포문화도시센터 발행, 마을, 기록하다, 목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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