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마당 (서산동)
목포에는 보리마당이라는 지명을 가진 곳이 두 군데 있습니다. 한 곳은 유달산 일등바위에서 이등바위로 가기 위해 내려가는 중간에 다다르는 넓은 등성이를 말합니다. 현재는 헬리콥터 착륙장과 소요정이 있는 곳입니다. 예전 이곳은 인근 판자촌에 살던 사람들이 유달산 능선을 개간해 만든 밭에서 수확한 보리를 타작하거나 널어서 말리던 곳이라고 합니다.
다른 곳은 다순구미, 즉 은금동 마루터기에서 서산동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넓은 터를 말합니다. 서산동에서 가장 윗자락으로 인근에 보리밭이 있었고 햇볕이 잘 들었기 때문에 이곳도 예전에는 도리께로 보리를 치며 타작하고 널어서 말리던 곳이라고 합니다. 현재 목포에서 보리마당이라고 하면 두 번째 설명한 서산동 시화마을이 있는 지역을 말합니다.
과거 서산동은 은금동과 더불어 대표적인 목포 달동네였습니다. 대부분 남자들은 인근 섬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와 고기잡이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고 합니다. 산 능선을 따라 조그맣고 초라한 초가집들을 짓고 살았습니다. 주변에 경작지라고 해봐야 바위 언덕 중간중간 수줍은 듯 얼굴을 내민 텃밭이 전부였기 때문에 주민들은 그곳에 채소나 보리를 심어 끼니에 보탰습니다. 지역 특성상 수원이라고 해봤자 작은 샘물 수준이라 물이 워낙 귀해 논농사는 꿈도 꾸지 못하는 지역이었습니다. 보리마당이 있던 서산동도 생활환경은 다순구미와 별반 다를 바 없었지만 해안가에 가까운 곳이라 그나마 집안사정이 조금씩 나았습니다. 그래서 여유가 있는 집들은 돈을 모아 2층으로 집을 지어 올리기도 했습니다.
원래 이곳에 살던 사람들도 다순구미와 마찬가지로 째보선창에 배를 대고 고기를 잡으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1981년 광주와 목포에서 열린 제10회 전국소년체전을 위해 지자체가 유달산 일주도로를 확장 정비하면서 일직선으로 지역을 매립해 째보선창은 사라졌습니다. 삶의 터전도 그때 함께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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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 상식 1]
째보선창은 다순구미와 보리마당 인근 앞바다를 매립하면서 제방을 곧바로 쌓지 않고 'ㄷ'자 모양으로 꺾어 넣어서 어선이 정박할 수 있는 곳으로 조성했던 곳을 말합니다. 제방 모양이 안쪽으로 움푹 들어갔다고 해서 언청이의 사투리인 째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째보선창 옛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직 남아 있지만 자료는 매우 부족한 실정입니다. 사진이 촬영된 시기와 방향에 따라 배경에 있는 집들과 다른 건축물들이 다른 배치를 하고 있어 흡사 다른 장소로 보이기도 합니다. 목포시사에 수록되어 있는 사진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선창가 근처에는 일반가옥들보다 크고 제법 규모가 있는 건물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어르신들 기억에 따르면 대반동 가는 길에 선경준치횟집(목포시 해안로57번길 1) 못 미쳐 있었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지금 예전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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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지금은 마을 입구까지 차가 드나들 수 있는 넓은 도로도 개설되어 있고, 공영주차장도 들어서 있습니다. 2015년부터 3년에 걸쳐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이 인문도시사업 일환으로 좁고 길게 나 있는 서산동 골목들을 정비하는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이 사업에 목포지역 시인, 화가, 주민들이 함께 참여해 벽화를 그려 넣고 시화詩畵를 다량 제작해서 골목에 장식했습니다. 첫째 골목에는 목포 시인들이 쓴 시를, 둘째와 셋째 골목에는 마을주민들이 직접 참여한 작품들로 함께 장식했습니다. 덕분에 이곳은 후미지고 초라한 달동네가 아니라 예쁜 시화마을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조금 안타까운 것은 시화를 만들어 장식한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러버려 대다수가 글씨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바래버렸다는 점입니다. 마을과 지역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앞장서 재정비 사업을 추진한다면 예쁜 보리마당 모습을 더 오래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다양한 지역재생과 도시재생뉴딜사업에도 불구하고 물론 이곳에 사는 사람들 삶이 급격하게 변했다거나 모두 새로운 삶을 살지는 않습니다. 마을에는 예전부터 이곳에 정착해서 살던 이들이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바뀐 점이라면 마을을 재정비하면서 외지인들이 들어와 작은 갤러리, 예쁜 감성카페 같은 것을 만들어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했다는 것 정도입니다. 목포시에서도 지역을 다시 살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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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 상식 2]
아직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면 상당수 집들이 비어있고, 어떤 집들은 너무 낡아 부서지고 폐허로 변해버린 곳들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을과 지자체는 폐허가 된 집을 살리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건물을 올리는 것을 검토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흉물스럽게 방치해 두는 것도 마을에 도움이 되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낸 것이 마을이 자리 잡고 있는 구조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모든 집들이 급한 경사면에 지어져 있었기 때문에 폐가를 철거하고 남은 자리에서 보면 항구와 해안이 한눈에 보이는 좋은 풍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를 "바다가 보이는 마당", 줄여서 "바보마당"이라고 이름 붙여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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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보리마당을 찾으면 생각보다 많은 관광객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두 예전에 이곳에서 촬영되어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영화와 드라마 덕분입니다. 마을주민들 입장에서는 관광객들이 오는 것이 반갑습니다. 급격한 인구감소 폭탄을 직격으로 맞은 도시 외곽 달동네는 말 그대로 죽어가는 형국이었는데, 지자체 지원과 영화나 드라마 촬영 덕분에 마을이 활기도 되찾고 살림살이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엄연히 아직 사람들이 살고 있는 주택가입니다. 그래서 골목 곳곳에 조용히 관광해 달라는 표지가 붙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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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 상식 3]
마을을 재정비해 오래전 도시 모습을 생생하게 갖추게 된 덕분에 다양한 방송매체와 영화, 드라마에서 이곳을 촬영지로 선택했습니다. '영화 1987'(2007년 개봉, 우정필름 제작, 김윤석, 하정우, 유해진, 김태리 주연) 촬영지로 유명한 '연희네슈퍼'는 공영주차장에서 마을로 올라가는 초입에 있습니다.
반면 드라마 '도도솔솔라라솔'(2020년 방영, 몬스터유니온 제작, 고아라, 이재욱, 김주헌 주연) 촬영지는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 보리마당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두 곳을 모두 보려면 마을을 관통해서 올라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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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마당이 앞으로 어떤 모습이 될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지금과 같은 모습을 계속 유지하면서 '시간이 정지된 마을'이라는 정체성을 품을 것인지, 아니면 바로 옆 다순구미처럼 재개발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마을 전체가 흔들릴 것이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지요. 어느 것이 되었든 마을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흘러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삶은 계속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도시 재정비, 뉴딜재생, 관광활성화 등 아무리 그럴싸하게 포장한다고 해도 결국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삶을 이어갈 터전이 계절에 따라 옷을 바꿔 입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속 가능하고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계획이 도출되어 마을주민도 만족시키고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오랜 역사와 전설이 살아 숨 쉬고 있는 보리마당을 더 많은 사람들이 오래오래 즐길 수 있지 않을까요?
참고자료
목포문화도시센터 발행, 목포의 토속문화, 목포, 2023.
목포시사편찬위원회, 다섯 마당 목포시사, 목포, 목포시, 2017.
[관람 정보]
[주소] 전라남도 목포시 해안로127번길(서산동)
[관람료] 무료
[관람시간] 제한 없음. (단, 주민들 휴식을 방해하지 않도록 낮시간대 방문 추천)
[주차 정보] 마을 입구에 공영주차장 있음.
[유의사항]
*골목이 좁고 구불구불해 마을 전체를 둘러보는 코스를 구성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공영주차장이나 보리마당 정상 주차장에 주차하고 차분하게 마을을 둘러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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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가면 너무 달달한 꿀팁!>
*실제 마을은 보리마당 시화골목 보다 조금 더 큽니다.
*관광지로 개발되지 않은 좁고 막다른 골목에도 색다른 볼거리들이 숨어있습니다.
*보리마당 정상에서 제일 왼쪽에 있는 길을 따라 마을 외곽으로 나가보면 보리마당이 자리 잡고 있는 언덕을 옆에서 조망할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언덕 전체가 거대한 암반이고, 암반지대 중앙 하단에 언제 생겼는지 알 수 없는 커다란 동굴 입구가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안전상 문제로 멀리서 바라볼 수만 있습니다.
*보리마당 정상을 관통하고 있는 소방도로 윗편으로 높은 언덕이 있습니다.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그곳에 오르면 더 좋은 경치를 볼 수 있습니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중간중간에 앉아서 쉬거나 해안을 조망할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보리마당 정상에서 더 올라가면 일출과 다순구미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숨은 명소가 있습니다. 하지만 찾아가는 방법과 길이 너무 험해서 일반 관광객들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반드시 안전 저해요소를 모두 확인할 수 있는 가이드를 동반할 것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