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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라 Sep 07. 2023

다시 만드는 문화다방, 다시 올 르네상스

오거리

우리나라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장소는 어디일까요? 명동, 신촌, 홍대, 이태원, 압구정, 신사 등 시대에 따라 장소는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같은 시대라고 해도 문화를 즐기는 세대에 따라 다르기도 합니다. 대중문화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콘텐츠와 하드웨어에 해당하는 공연장 또는 전시장입니다. 하지만 결국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주류계층과 그들이 주로 소비하는 콘텐츠가 상징적인 장소를 결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적 다양성이 과거에 비해서 급격하게 높아진 현대에는 어느 한 곳을 콕 집어서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근대화가 시작될 무렵, 서양식 대중문화가 급격하게 유입되던 시절에는 지금에 비해 다양성이 낮았고 소비계층도 한정적이었습니다. 문화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대중들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소득이 높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에는 자연스럽게 대중문화 주류를 이끄는 사람은 소수 창작자들과 이를 향유할 여유가 있는 계층에 국한되었고, 유행은 매우 일정한 방향으로 단순한 흐름을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목포 오거리는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장소로 목포시민들로부터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습니다. 오거리는 예술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었고, 오거리문화가 바로 목포 대중문화였습니다. 하지만 오거리가 처음부터 목포인들에게 대중문화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되지는 않았습니다. 개항 이후 도시가 설계되고 거리가 조성될 때만 해도 오거리는 도시 전역으로 연결되는 주요 연결통로였습니다. 이곳에서 연결된 각 도로는 일본인 마을, 조선인 마을, 선창, 목포역, 유달산 방향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연결통로인 동시에 도시 안에 있는 중요한 경계선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마치 부에 따라 차별받아 가난한 자는 넘어갈 수 없는 국경선이라고 할까요? 개항 이후  1920년대까지도 목포는 근대적인 도시로 변신하고 있었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 일본과 이뤄지는 무역이 주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극심한 양극화를 겪었습니다.


개항 직후 도시 개발에 필요한 노동을 제공하기 위해서 많은 인구가 급격하게 유입되었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노동자들을 위한 주거지역을 별도로 할애할 만큼 넓은 부지는 없었고, 조선인 상인과 부두 노동자들은 자연스럽게 도시 외곽에 있는 목포부 부내면에 정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그곳에 있는 무덤들을 옮기고 그 위에 집을 지었습니다. 각종 근대적인 시설이 계획적으로 설치된 일본인 거주지역에 비해 조선인 마을은 도로, 주택, 전기, 상하수도, 의료 등와 같은 공공시설이 매우 열악했습니다. 반면에 각국 공동 거류지에 형성된 일본인 마을은 '남촌'이라 불렸던 곳으로 반듯하게 구획되고 포장된 도로에 가로등도 설치된 근대도시 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주변에는 목포부청, 경찰서, 소방서, 상업회의소 등 각종 공공기관과 조선은행, 동양척식주식회사, 금융조합 등 각종 금융기관, 학교와 병원 등 복지시설들이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들에게 필요한 생필품을 공급하는 상가가 형성되었습니다.


대규모 상권이 형성되면서 '목포상업회의소'(1899년)가 만들어지고, 일본인이 만든 신문(목포신보, 1899)도 창간되었습니다. 거리가 안정화되고 산업과 유통이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자연스럽게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졌습니다. 일본인들은 일본의 전통 연희 공연장으로 '목포좌木浦座'(1904년)와 '상반좌常盤座'(1908년)를 세우고, 이후 '희락관'을 만들어 영화도 상영했습니다. 결국 오거리는 목포 상업지구 중에서 중심이 되었고 문화예술인들이 활동하는 주 공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거리가 본격적으로 예술인들로부터 사랑받는 거리가 된 것은 해방 이후부터였습니다. 이곳에 들어선 다방과 주점이 이들이 활동하던 주 무대가 되었습니다. 김지하, 김현, 최하림 등 당대 유명 문인들이 이곳에서 만나 문학을 이야기했고, 화가와 다른 예술가들도 이곳을 찾으면서 오거리 다방들은 차를 마시는 공간이 아니라 전시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다방을 운영하던 마담들 중에서 똑똑한 사람은 미술 큐레이터를 겸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들이 예향 목포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것입니다. 앞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이곳에 있던 다양한 다방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문화는 목포문학과 예술의 중심공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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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 상식]

EBS에서 2004년 9월부터 12월까지 방영했던 역사극 "명동백작"에서도 1950년대에서 1960년대 서울 명동과 함께 목포 오거리가 한국문학의 중심 공간으로 묘사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시청률이 1%를 기록했는데, 이러한 수치는 다른 프로그램 평균 시청률이 0.5%였던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으로 높은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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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다방을 복원해 놓은 전시관


시대가 변하면 문화 중심지도 자연스럽게 변하는 법이죠. 목포문화를 이끌었던 오거리 다방 문화도 1980년대를 끝으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남교동 공설시장 2층에 만들어진 '예술인 사랑방'(1984년 9월), 중소기업은행 전시실, 목포시민회관, 예종화랑(1989년 3월), 목포MBC 전시실(1990년 3월), 목포KBS 전시실 등 다양한 대체공간이 마련되면서 다방은 문화공간으로서 기능을 다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오거리는 목포를 방문한 여행객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공간입니다. 이곳을 지나면서 목포근대역사문화공간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거리가 아름답다거나 문화공간으로 잘 단장되어 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말 그대로 다섯 개 도로가 교차하는 곳으로 다른 지방 소도시에 있는 교차로와 다를 바 없습니다. 오히려 낮은 건물들과 오래된 간판들이 많이 걸려있어 소박해 보일 정도입니다. 뒷골목으로 돌아서 들어가 보면 마치 1980년대에서 시간이 멈추어 버린 것 같은 풍경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특이한 점이라면 많은 가게들이 '오거리'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는 것 정도입니다.

가게 간판들을 보면 업종은 달라도 가게 이름은 대부분 오거리다.


목포는 과거 대한민국 문화예술의 중심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도시가 쇠락하면서 문화적 힘도 함께 소실되었습니다. 지역적으로 목포가 소외되면서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 비해 경제력도 낮아지고, 그로 인해 지역 예술가들이 자생할 수 있는 힘도 잃어버렸습니다. 전문가들은 목포지역이 다른 지역과 소통하지 못하고 지역적 특성에 매몰되어 발전하지 못했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폐쇄성이 결국 발전을 저해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 변화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다시 문화다방이 생겨나고 있답니다. 물론 예전에 지역 문화를 이끌었던 다방과는 전혀 다른 존재입니다. '문화다방'은 목포문화도시센터가 2022년부터 기획한 문화시민양성사업의 일환으로 시민 생활권 주변 공간을 기반으로 문화 참여 프로그램을 추진하여 문화시민 양성에 기여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문화다방 조성을 통해서 시민들이 일상문화를 향유할 기회를 제공하고 동시에 지역 내 상권을 활성화한다는 취지라고 합니다.


보통은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자본이 지역으로 유입되어야 문화가 발전한다고 믿습니다. 경제가 활성화되어야 문화를 소비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도 있습니다. 척박한 토양에서도 문화교육을 지속한다면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독특한 예술가가 탄생하기도 합니다. 1920년대와 1930년대 목포지역에서 활동했던 문인들이 모두 풍족한 여건에서 생활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그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함께 토론하고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포지역에 예전과 같은 문화융성기가 도래하려면 함께 문화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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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것들>

*오거리 문화와 역사를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아쉽게도 오거리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항구 쪽으로 걸어가면 '목포 대중음악의 전당'이 나옵니다. 그곳에 가면 목포 문화의 전성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오거리 다방문화가 목포 문화를 이끌었다고 하는데, 더 이상 그런 다방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다시 조성하고 있는 문화다방은 예전과 같은 모습이나 기능을 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유일한 방법은 '목포문화도시센터'를 방문하는 것입니다. 같은 건물 2층을 방문하면 목포문화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소박하게 복원해 놓은 다방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목포시사편찬위원회, 다섯 마당 목포시사, 목포, 목포시, 2017.

최창근, 1930년대 목포의 근대성과 대중매체-호남평론 수록 소설과 기사를 중심으로, 국학연구총론, 2013, vol. no.11, pp. 1-28.

최성환, 목포, 파주, 21세기북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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