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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라 Sep 15. 2023

지역주의와 지역미술을 가득 품은 거목 소화 蘇話

김암기 미술관

"모든 미술은 그 미술이 태어난 지역의 풍토성과 기질을 반영한다. 그래서 한국적 미술이니 일본적 미술이니 하는 국가적이고 민족적인 특성을 지니게 된다. 미술은 공간의 예술이고 그 공간은 역사적 시공간으로 규정된다. 미술을 생산하는 작가자신이 역사의 시공간에 위치하기 때문에 이를 피할 수가 없다. 극도의 추상미술, 국제주의를 표방하는 미술일지라도 이런 범주를 벗아날 수 없는 것이다."

                                                                                         -원동석, "지역미술과 지역주의" 중에서-


목포 출신이 아니라면 화가 김암기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저도 미술에 조예가 깊지 못해서 그런지 김암기라는 이름을 목포에 와서 처음 들었습니다. 목포를 여행하던 첫날, 노적봉에 올라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는 역사와 전설을 주섬주섬 담다가 바로 옆에 김암기 미술관 Kim Amki Museum of Art이 있는 것을 봤을 때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이름을 진짜 처음 들었거든요. 대신 그의 사촌형이 화가 김환기라는 이야기를 듣고 "아~~"하는 감탄사와 함께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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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 상식]

김암기 미술관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은 노적봉예술공원 안입니다. 원래 이곳은 2009년 7월 목포시 종합전시홍보관으로 개관했습니다. 김암기 미술관이 있는 건물 2층은 예전에는 목포시 홍보영상 상영관과 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관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삼학도에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이 건립되고 관련된 전시물들이 그곳으로 통합 이전되었습니다. 이후 비어버린 내부 공간 활용방안을 모색한 결과, 건물 자체를 '노적봉예술공원 미술관'으로 명칭을 바꾸고 그에 맞는 상설전시관으로 꾸미기로 했습니다. 2019년 7월, 오랜 노력 끝에 2층을 김암기 화백 상설 전시관으로 꾸밀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김암기 미술관 한쪽에는 아직도 이전에 설치했던 목포시 홍보영상 상영관이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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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는 1913년 생으로 우리나라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서양화가로 유명한 사람이고, 그가 그린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기록을 가지고 있으니 모를 리가 없지요. (참고로 그가 1971년에 그린 'Universe 5-IV-71#200'은 홍콩 크리스티 경매서 8800만 홍콩달러(당시 한화로 약 132억 3600만 원)에 낙찰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미술작품 중에서 최초로 100억 원 넘는 금액에 거래된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속으로 '사촌형이 남긴 예술적 유산을 이어받은 지역화가인가? 아니면 수화 樹話라는 너무 큰 산이 가로막고 있어서 목포지역에 발을 붙일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천재 중 한 사람인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작품과 설명을 들으면서 그런 생각이 대부분 잘못된 것임을 금방 깨달았습니다.


김암기는 1932년 전라남도 신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사촌형이었던 김환기와는 나이차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사촌형을 동경하고 그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암기가 성장하던 무렵 사촌형은 이미 일본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개인전을 열었으며(1936년), 해방 후 귀국해서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1946~1949)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동경했던 사촌형이 밟은 길을 따라가지는 않았습니다. 젊은 시절 한신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할 때(1956) 사촌형을 사사하기도 했습니다. 신학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다시 사범대학을 나와 목포에서 미술교사가 되었습니다. 1982년까지 목포중고등학교, 영흥고등학교, 문태중학교, 마리아고등학교 등에서 교사생활을 하며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동시에 목포지역에 처음으로 미술학원을 설립하고 후배들을 양성하는 것에 힘을 쏟았다고 합니다.


그 시절까지 그가 그린 작품들을 보면 전형적인 지역주의 지역화가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자신이 성장한 목포가 보여주는 향토적 자연미에 집중하고 항구를 중심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화폭에 옮기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지역 토박이라는 꼬리표를 스스로에게 붙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래도 자신이 살고 있던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고유한 향토성 localism에 대한 강한 애착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화풍도 정밀한 사실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져 가는 목포지역 모습을 아름다운 색감과 함께 담아내려고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항구에서 고기를 손질해서 파는 아낙네들이나 배를 수리하는 일꾼들 특징을 잘 포착했던 것으로 보아 정말 오랜 시간 정성 들여 그들이 살고 있는 모습을 관찰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 삶을 살던 미술교사 김암기가 지역을 대표하는 화가 김암기로 성장하게 된 계기는 1983년 파리로 가서 르 살롱 le Salon에 작품을 출품했던 시기라고 합니다. 르 살롱은 파리에서 열리는 미술전시회로 프랑스미술가전람회라는 뜻의 '살롱 데자르티스트 프랑세 Salon des Artistes Français'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르 살롱이라는 명칭은 전시가 루브르궁의 살롱들에서 열렸기 때문이랍니다. 그는 파리에 6개월 동안 체류하면서 사촌형 김환기, 목포 지역 자연풍광들과는 또 다른 예술적 영향을 짙게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귀국 후 그가 그린 작품들은 이전과 비교했을 때 피사체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더욱 자연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그리고 사실주의에 천착하던 화풍에서 추상적 이미지를 더욱 강조하는 화풍으로 점차 변해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품을 그릴 때 사용한 색감도 지역 정체성을 대변하는 짙은 바다색을 밑바닥에 깔았고, 그림을 그리는 소재와 대상들도 지역 주민들이 살고 있는 모습에서 점차 유달산, 다도해, 달과 안개 같은 자연 풍광들로 옮겨갔습니다. 평론가들로부터 더욱 주목을 받은 것은 그가 자연풍광을 그대로 그리지 않고 자신이 느낀 형태를 다시 재투영하는 기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연풍경에 완만한 곡선이나 타원형을 그려 넣은 것과 이전에 사용했던 가늘고 섬세한 선들 대신 두텁고 중후한 재질감들로 다른 화가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표현들로 찬사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평론가들은 이 시기 작품들이 이전에 그가 그려왔던 서구화풍 위에 동양적인 정서와 목포지역이 가지고 있는 서정적 미감이 더해졌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통상 특정 지역에 뿌리내리고 자연풍광이나 주민들이 사는 모습, 지역 명물을 그리는 것에만 집중하는 작가들을 전형적인 지역주의 화가라고 부릅니다. 그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곳에 오랫동안 살아온 예술가들만이 지역적 정체성을 공유하고 그것들을 예술작품으로 승화할 수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결국 발전이 더디게 되고,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로부터 영향을 받아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는 예술가들은 점차 활기를 잃게 됩니다. 자신이 뿌리내린 토양으로부터 자양분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면 나무는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도, 커다란 나무로 성장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화가 김암기는 목포에 기반을 두고 있으면서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화가들을 양성하며 미래를 꿈꾸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도 성장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촌형이 가지고 있는 호 수화 樹話를 따라서 자기 호를 소화 蘇話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작은 차조기 같다며 스스로를 낮췄지만, 목포에 깊고 깊이 뿌리내리고 유달산과 목포 앞바다에서 거대한 자양분을 오래오래 흡수한 덕분에 그는 예향 목포를 대표하는 거목巨木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안타깝게 그는 2013년 향년 81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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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가면 너무 달달한 꿀팁!>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을 조용히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전문 해설사와 함께 하면 더욱 좋습니다. 각 작품들이 지금은 사라진 목포지역 역사와 문화들을 어떻게 그려냈는지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들을 수 있습니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나가기 전에 안내데스크를 꼭 방문하세요. 김암기 화백이 그린 작품이 인쇄되어 있는 예쁜 그림엽서를 무료로 받아갈 수 있습니다.

*김암기 화백이 남긴 작품들은 국립현대미술관, 호암미술관, 목포해양대학교 등에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많은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곳은 역시 김암기 미술관입니다. 아직 생존해 있는 아내와 가족들은 그가 남긴 서양화 72점, 크로키 57점을 목포시에 기증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미술관 전시장을 방문하면 볼 수 있는 작품이 제한적입니다. 공간이 협소하기 때문에 대부분 작품들은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대신 매년 7월이 되면 김암기미술관 개관 기념 특별기획 전시회가 같은 건물인 노적봉예술공원 미술관 1층에서 열립니다. 통상 전시기간은 7월에서 9월이며, 이때에 맞춰 방문하면 더욱 다양한 테마로 큐레이터가 공들여 기획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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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정보]

[주소] 전라남도 목포시 유달로 116

[전화] 061-270-8300

[관람요금] 무료 

[관람시간] 매일 09:00~ 18:00

 *매주 월요일, 1월 1일 휴관

[주차 정보] 전용주차장 없음. 인근에 있는 노적봉공원 주차장(유료, 1시간 무료)을 이용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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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원동석, 지역미술과 지역주의, 더원미술세계 91, 1992, pp.38-41.

노대현, 목포산책, 광주, 전남대학교출판문화원, 2019.



<함께 보면 좋은 것들>

*이곳을 방문하려면 노적봉공원을 거치게 됩니다. 물론 차를 이용해서 다른 길로 돌아올 수도 있지만, 결국 노적봉공원 주차장에 차를 대야 합니다. 미술관 관람시간 보다 조금 이르게 도착해서 노적봉 공원을 둘러보면 좋습니다.

*김암기 미술관 1층에는 노적봉예술공원 미술관 특별전시장이 있습니다. 이곳은 2개월 주기로 다양한 작품들이 바뀌며 전시됩니다. 김암기 화가가 그린 작품들을 관람했다면 1층으로 내려가서 다른 화가들이 그린 작품들을 함께 관람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1층 특별전시장까지 모두 둘러보고 나왔다면 바로 옆 골목길을 내려가면 됩니다. 목포근대역사관 1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근대사의 중심지, 목포"라는 테마로 꾸며진 전시와 개항기 일본영사관으로 지어졌던 건축물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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