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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에 블레이드 러너(헤리티지 2편)

소소한 일상 #5

by 라라라

지난 1편에 이어서 한글날 이야기를 이어갈까 합니다. 바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문자와 문장 이야기를 하고 넘어갔으면 합니다.


문자는 말을 기록하기 위해 발명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한글이 그러했습니다. 일단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었는지 명확한 기록이 남아있는 문자는 지구상에 한글이 유일합니다. 우리 한글은 단순한 음성의 기록이 아니라 철학적, 우주론적 원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매우 과학적 창조물로 평가받고 있기도 합니다. (만국 공통어라는 목표로 만들어진 에스페란도 Esperanto와 존경하는 톨킨 J. R. R. Tolkien님이 만드셨던 퀘나 Quenya나 신다린 Sindarin 같은 것들은 문자보다 상위에 위치한 독립된 언어체계이자 인공어이니 여기에서는 배제하겠습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요정 스란두일 Thranduil. 요정 언어 배우고 싶어요. 그러면 스란두일 같이 보일까요? ㅠㅠ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모든 문자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최초의 전쟁화'편에서 예로 들었던 벽화들이 나중에는 상형문자로 발전합니다. 실제 사물이나 사건, 그리고 가상의 무언가를 이미지로 구체화한 것들이 결국 공식적으로 문자라는 지위를 얻게 된 것이지요. 굳이 고대 상형문자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현재 인류가 사용하는 문자는 크게 표음문자 Phonogram과 표의문자 Ideogram로 나눌 수 있답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문자들 통계를 보면 표음문자보다 표의문자를 사용하는 비율이 훨씬 높습니다. 문자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표음문자가 표의문자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문자가 일본 문자인 카타카나 カタカナ와 히라가나 ひらがな가 있습니다. 한자가 복잡하고 배우기 어려워서 단순하게 소리 내어 읽는 것조차 어려워 한자의 일부분을 떼어내어 단순화해서 글자 옆에 각필구결 角筆口訣한 것이 문자로 자리 잡은 사례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신라시대 이두 기원설이 유력하다고 생각합니다. ^^)

사용 문자 분포지도. 출처: www.sutori.com


하지만 단순한 글자, 즉 알파벳은 그 자체로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다른 글자들과 어울려 단어가 되고 그 단어들이 정형화된 문법 체계를 통해 구성될 때 비로소 언어를 기록하는 구실을 겨우 하게 됩니다. 그러나 단어와 문법만으로 곧 문장이나 텍스트가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글을 쓰는 이, 즉 작가가 자신이 느낀 감정, 깨달은 지식, 독창적인 상상력, 그가 속한 사회와 국가가 경험한 역사, 그 속에서 살아온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만들었던 문화적 창작물들을 바탕으로 '쓰기'라는 '목숨을 건 비약'을 할 때 비로소 제대로 된 문장이 되고 텍스트가 됩니다. 에크리튀르 E'criture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특성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비슷하게 보이지만 전혀 다릅니다. 톨킨 님이 말한 것처럼 언어가 가진 생명은 사용하는 화자와 그들이 겪거나 남긴 역사와 신화가 빚은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변하고 분열하고 합쳐져서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재탄생합니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말이지요. 조금 더 학술적으로 표현하자면 언어는 결국 '집단적 자아 Collective Ego'를 형성하게 됩니다.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내가 다른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 행위들이 모이고 모여서 하나의 정형화된 모습을 구성하게 되고, 그 정형화된 형태는 다시 일정한 계기가 되면 회귀하여 내가 말하는 것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것을 사회적 맥락 안에서 형성되는 집단적 자아정체성 Collevtive Identity으로 규정하기도 합니다.)


아........ 또 너무 진지해져서 다소 엉뚱한 곳으로 빠졌네요. 본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문자의 이러한 특성은 영화와 유사한 성격을 지닙니다. 한 번 발화發話, énoncé 하면 (보통은) 자연적으로 소멸되는 말과는 달리 일정한 형태를 지속하고, 오랜 세월이 지나도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문자 체계가 모체가 되는 언어를 구속하고 변화하는 것을 막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아랍어는 7~9세기에 만들어진 꾸란 Quran에 기록된 문장들이 표준어입니다. 아랍어를 사용하는 모든 나라는 공문서, 방송, 교과서에 그 꾸란에 적혀있는 아랍어를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표준 아랍어를 실제로 일상생활 언어로 사용하고 있는 나라는 단 한 곳도 없다네요. '교양 있는 서울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이 표준어인 우리말과 비교하자면 서울말이 표준어인데 서울이 없는 겁니다.


그러한 성격이 영화와 유사하다고 했지요? 1편에서 설명했던 것과 같이 영화는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감독이 구체적인 시각 이미지로 구현해 낸 결과입니다. 그것이 후대에 이어지는 다른 작품들에 영향을 주게 되고, 결국에는 실제 현실화될 때 그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과 그것을 기대하는 사람들 생각에 기준이 되어 버립니다. 예를 들었던 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고, 당시 급부상하고 있던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 지역의 문화가 미래사회에 주류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담아냈습니다. 그래서 장면 곳곳에 한글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생각은 미국인들로 하여금 동아시아 문화가 전통적이면서도 미래적이라고 인식하게 되었고, 급격하게 고도성장을 이뤄낸 한국, 일본, 중국의 모습에서 미래를 찾았습니다. (드니 빌뇌브 Denis Villeneuve 감독은 자신이 연출한 속편에서도 원작의 그러한 이미지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한글을 영화 구석구석에 심어두었다고 하네요.) 2022년인 현재, 영화와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는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들을 보고 있으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들지 않으신가요?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의 한 장면. 건물 입구 위에 '행운'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옵니다.


한글날이니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접하는 글들을 찬찬히 돌아봤으면 합니다. 인터넷 세상이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커뮤니티 글들을 볼까요? 온갖 비속어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조어들을 제외하고도 수많은 세월 구축해 온 한글이라는 집단적 자아를 공격하는 아픈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ㅋㅋ 몇일 pt 햇더니 허리가 얇아졋어요." "문법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거에 따라 변하는 거 아닌가요? '며칠'이 아니고 '몇일'을 더 많이 쓰고, 쉬프트키를 누르기 힘든데 '했다' 말고 '햇다'라고 하면 안되나요? 그리고 허리는 원래 '얇은' 거 아니에요? '가늘다'라고 해야 한다는 건 첨 알았어요."라고 당당히 표현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뭐 그럴 수 있습니다 오래 사귄 친구라는 뜻이던 '고인 故人'은 '죽은 사람'이 되고, '잘못이 없음을 밝혀 변명한다'는 의미를 가진 '발명 發明'은 '전에 없던 것을 새로 생각해 내거나 만들어 내는 것'이 되었던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저는 제가 속한 집단이 유지해 온 자아를 그딴 식으로 바꾸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소리 내어 읽을 때 마치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아름다운 우리말과 글. 그 보석 같은 모습을 원래 형체를 알아보기도 어렵게 칼질하고 기워서 누더기로 만드는 일은 반짝반짝 빛나는 한글이라는 자아에 몹쓸 짓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작가분들을 존경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소설가 김영하 님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그냥 무심히 재밌게 읽도록 하기 위해서 한 문장을 뺐다가, 한 단어를 넣었다가, 단어를 바꾸고 하는 작업을 계속하거든."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러므로 사랑합니다, 모든 작가님들!



참고자료

알브레히드 후베, 날개를 편 한글, (주)박이정, 서울, 2019.

노마 히데키, 김진아 김기연 박수진 옮김, 한글의 탄생, 돌베개, 서울, 2011.

이병철, 모국어를 위한 불편한 미사시, 천년의상상, 서울,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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