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이 미키, 정창미 옮김, 색이름 사전, 고양시, 지노, 2022.
"색채를 재현하기 위한 삼원색 CMY.
색채를 재현하기 위한 삼원색 RGB."
이제는 멀고 먼 옛날이 되어 버린 중학생 시절. 작은 사립학교여서 과목을 담당하는 선생님이 단 한 명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젊은 미술 선생님도 그랬습니다. 그분 성姓을 지금도 기억할 수 있습니다. 1학년 첫 수업 덕분입니다. 미술수업은 빛의 삼원색과 그림의 삼원색을 구분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삼원색은 두 가지야. 빨파노 그리고 빨파녹. 미술교사인 내 이름이 노OO이지? 그러니까 색의 삼원색은 빨파노야. 어때? 외우기 정말 쉽지?"
통상 우리가 눈으로 인지하는 색, 그러니까 사물을 바라볼 때 느끼는 색은 그 물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색이라기보다는 빛이 그 물체 표면에 맞고 반사되어 나오는 색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반사되는 나머지 스펙트럼은 그 물체가 흡수한다고 보아도 무관합니다. 그래서 물감에 물감을 더하면 흡수하는 빛이 배가되어 더욱 짙어지는 거라고 합니다. 감법혼색이라고 하네요.
빛은 다릅니다. 빨강에 초록을 더하면 연두가 됩니다. 거기에 파랑까지 더하면 가장 밝은 흰색 빛이 됩니다. 본래 빛은 모든 색을 품고 있을 때 가장 밝고 아름답게 빛납니다. 프리즘이나 안경 같은 것으로 걸러내면 점차 옅어지고 다양한 색을 나타냅니다. 가진 것을 다른 곳에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이 띄는 색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요?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에 다른 관점을 더하면 어두워질까요? 아니면 지혜가 쌓여 더욱 밝게 빛나 주변을 비추가 될까요? 소유물은 어떨까도 생각해 봅니다. 하나라도 더 소유하려고 발버둥 치며 살아왔습니다. 이번 시즌에 새로 나온 셔츠, 최신형 스마트폰, 더 번쩍번쩍하는 시계. 그러한 것들이 나를 더 눈부시게 만든다는 생각 해서겠지요? 하지만 그런 것들이 하나둘씩 늘어날 때마다 왜 내 자신은 가려지고 빛을 잃어가는 느낌이 들까요? 우리 인생은 CMY일까요 아니면 RGB인걸까요?
"관형색이름. 보통 명사에 색을 붙인 것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색이름이 존재한다. 복숭아색, 하늘색 등, 복숭아나 하늘이 지닌 그 자체의 색을 일컫는다."
색이름도 참 여러 가지입니다. 하지만 인류학자 브렌트 베를린Brent Berlin과 언어학자 폴 케이Paul Kay가 여러 언어에서 색을 부르는 이름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1가지 기본색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흰색, 검은색,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주황색, 보라색, 회색, 분홍색, 갈색. 이 색채어들은 어느 언어에서든지 찾을 수 있어서 기본색채어라고 할 수 있다고 하네요.
많이 알려진 것과 같이 사람들이 사는 기후, 문화에 따라 색을 구분하는 방법과 스펙트럼이 서로 다르지요. 재미있는 것은 사람 이름이 그대로 붙은 색들도 있다는 겁니다. 앙투아네트 핑크Antoinette Pink, 윌리엄 오렌지William Orange, 로빈 후드 그린Robin Hood Green, 푸크시아 퍼플Fuchsia Purple, 테레지안 옐로Theresian Yello, 퐁파두르 블루Pompadour Blue 같은 것입니다.
유명한 화가들이 애용했던 색들로 그 화가를 대표하는 색이 되어 버린 것도 있습니다. 조토 블루Giotto Blue, 라파엘로 블루Raffaello Blue, 렘브란트 매더Rembrandt Madder, 티치아노 레드Tiziano Red, 반다이크 브라운Vandyke Brown, 베르메르 블루Vermeer Blue, 고흐 옐로Gogh Yellow, 모네 블루Monet Blue, 후지타 화이트Fujita White(이 색이름은 저자가 일본인이라 억지로 넣은 느낌이 너무 강해요. 이해해줘야 하겠죠?), 르누아르 핑크Renoir Pink, 피카소 블루Picasso Blue, 로랑생 그레이Laurencin Gray.
나를 색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색에 가까울까요? 아니, 내 삶이 그림이나 영화라면 사람들은 그 속에서 어떤 색이 나를 상징하는 색이라고 불러줄까요? 무슨 색일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너무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어중간한 밝기였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색이었으면 더 좋겠네요. 우울한 것은 나 하나만으로 족하니까요. 내가 다 슬프고 내가 더 힘들 테니 내 삶을 바라보는 당신은 밝게 웃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나는 CMY가 아니라 RGB가 되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