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을 했던가

미안합니다만

by 라라라

먼저 정의가 필요합니다. 사랑. 행위 또는 감정으로 분류할 수 있으니까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제대로 설명이 되겠네요. 먼저 사랑의 주체에 대한 이야기부터 할까요?


한국어 수업 중에서 받침을 가르칠 때였습니다. 발음 특성을 설명한 다음에 받침이 들어간 단어를 읽으며 연습합니다. 연습 단어를 화이트보드에 써주고 함께 읽는데, 먼저 사랑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바로 다음 단어가 사람입니다. 그냥 단어를 쓰고 따라 읽도록 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이런저런 말을 갖다 붙여가며 설명합니다. 한국 드라마나 노래를 접한 경험이 있는 학생들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적고 읽으면 얼굴에 화색이 돕니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단어거든요. 바로 다음에 사람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물어봅니다. "愛は誰がするものなんですか? 사랑은 누가 하는 거예요?" ”人です。 사람이요.” "そう。人です。 맞아요. 사람이에요."


맞습니다. 사랑은 사람이 하는 거라서 사랑이라고 부른답니다. 신神이나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것은 사랑이라고 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그 존재들은 사람이 아니니까요.


대상은 어떤가요? "그것도 꼭 사람일 필요가 있을까요?"라는 질문이 먼저 들리네요. 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행위가 완벽하려면 아무래도 주체와 대상이 동일하거나 최소한 유사해야 그럴듯해 보입니다. 한쪽으로 균형이 쏠려있으면 아무래도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거든요. 옆에서 보고 있는 사람도 말이지요. 그러니까 대상도 사람인 것이 좋겠네요. 반려동물을 아끼는 마음이 너무나도 큰 분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저 정의가 그렇다는 거니까요.


감정으로서 사랑도 이야기해 볼까요?

여기서는 균형을 이야기하기가 어렵네요. 일단 측정하는 것도 어렵고요. 서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감정이 상대가 품고 있는 것보다 훨씬 크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기도 하거든요. 시간이라는 측정단위를 축으로 분포도를 그려보면 일정한 규칙이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해석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대충 비슷하다고 칩시다. 일단 사랑이라는 덩어리를 품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에는 말이지요.


하지만 시간축을 따라서 앞뒤로 이동해 보면 이상하게 축이 또 하나 보입니다. 분명히 시간-사랑 그래프인데 고개를 주욱 빼서 그 너머를 보면 깊이 depth라는 축이 하나 더 보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두 사람이 보여주는 사랑이 모두 동일한 사인파 sine wave, y = sin(x) 모양을 예쁘게 그리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깊이가 달라요. 이게 사람마다 다르고, 시간선에 따라 다르고 그러더라고요.


뭔 소리냐고요? 왜 머리 아프게 수식을 들이미냐고요? 아, 그럼 음악으로 설명해 볼까요? 두 사람이 같은 노래를 듀엣으로 부르고 있다고 가정해 볼게요. 같은 박자로 같은 음정으로 부른다고 완벽한 노래가 되지는 않거든요. 한 사람은 마이크를 입 가까이 가져가야 겨우 들릴락 말락 할 정도로 작은 소리로 부르고, 다른 한 사람은 앰프나 스피커가 필요 없을 정도로 우렁차다면 전혀 어울리지 않거든요.


정리를 좀 해드리면 사랑이라는 감정을 두 가지 축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요. 왜냐면 또 다른 축이 있거든요. 2차 방정식도 힘든데 변수가 더 있는 셈이요.


그런데 말이죠. 더 놀라운 것은 사랑을 하는 사람이 지향하고 있는 방향이라는 축이 하나 더 있다는 거예요. 4차 방정식이라는 거예요. 그 그래프 모양은 그리기도 힘들어요. 그래서 우리가 사랑을 할 때 가끔 혼란스러움을 느껴요. 우리 사랑은 어디로 가는 걸까 하고 말이에요. 분명히 같은 사랑을 비슷한 열정으로 하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원하는 결론이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만두고 싶어 져요. 그걸 알고도 그대로 붙들고 있으면 감정선은 서로 멀어지고 멀어져서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이 되어 버려요.


아무래도 사랑을 오늘 전부 정의하기는 글러먹은 듯해요. 아마 제가 제대로 사랑을 해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과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요.


그저 당신에게 미안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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