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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gwoo Kim Jan 26. 2024

시간을 나는 드론(2)

공짜 밥을 먹는 기분

관람료가 없다는 것


무려 관람료가 무료(!)인 국립박물관들을 필두로 해서, 지역에 위치한 각종 유적지들을 시간날 때마다 방문하고 있다. 사실, 관람자의 입장에서 관람료가 무료인 것은 나쁘지 않지만, 외국인을 포함한 방문자 모두에게 무료여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관람료가 없어도, 주차비가 드는 경우는 몇 번 보았다. 물론, 방문객이 적은 겨울에 주로 많은 곳을 방문한 탓에, 일시적으로 주차비를 받지 않는 것 같아 보이는 곳도 있었다. (예: 몇몇 사찰들) 또는, 관람료가 없는 곳에 방문하려면 입장료를 내야 해서 결과적으로는 실질 관람료가 유료인 곳도 존재했다. (예: 국립진주박물관)  


박물관 등지에서 문화재를 보존하고, 관리하고, 분류하고, 또한 역사로 편입하는 과정을 수행하는 일은 전국 각지의 역사학자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소위 '학예사'라 불리는 공무원, 준공무원들이 한다. 공무원이라는 건 전적으로 국가 재정에 기댄다는 뜻이다. 국가 재정이 탄탄하다 못해 빠방한 극소수의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가까운 미래 먹거리에 대한 연구 및 사업지원만으로도 재정지출 대부분을 사용하게 된다. 즉, 세금만으로는 참 어렵다는 뜻이다. 


조선의 칼과 일본의 칼


국립진주박물관에서 본 것이다. 임란 당시 조선의 칼은 긴 나무 봉 끝에 환도가 달린 형태, 언월도라 알려진 형태에 가까웠다. 그에 반해 일본의 칼은 조선의 칼과 비슷한 형태도 있었지만, 비교적 짧은 손잡이에 훨씬 긴 금속 칼날이 붙어 있는 형태였다. 

임란 당시 조선군의 무기
임란 당시 일본군의 무기

보병과 보병이 맞붙는 전투에서 사용되던 무기들이고, 화력 중심이었던 몇몇 전투를 제외하면 실제로 제일 많이 맞붙었던 무기들일 것이다. 조선군의 칼날은 짧지만 더 길어서 타격시 더 많은 무게가 실렸을 것이고, 일본군의 칼날은 길어서 찌르기 보다는 한번에 많은 병력을 베어내는 데 유리하였을 것이다. 굳이 보자면, 그리고 같은 조건이라면, 조선군은 공격을 막아내기에, 일본군은 방어병력을 뚫고 공격하기에 조금 더 유리했을 것 같다. 또한 조선군은 일대일 단병접전 보다는 군단 단위로, 전술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대회전에 유리했을 것 같고, 일본군은 단병접전 같은 소규모 부대운용에 유리했을 것 같다. 


각각의 박물관, 특히 국립박물관은 어느 정도 통일된 역사 기조를 바탕으로 하여, 각 지역에 특화된 역사를 보여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 개별 병력이 뛰어난 단병접전 실력을 보이더라도, 결국은 그 각각의 병력이 속한 부대의 방향 내에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못한다면, 뛰어난 자원을 보유했더라도, 결국 목적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앞뒤 맥락 없이 갑작스럽게 양국의 무기체계를 언급한 것은, 내가 가본 박물관들 중 상당부분에서, 전시물의 성격과 해당 전시의 기조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필 내가 방문해 온 박물관들이 옛 백제 지역에 특화된 곳들이 많기 때문에 더 눈에 띄였을 수도 있다. (청주, 부여, 공주, 익산, 전주)


일본도를 든 조선군, 조선검을 든 일본군


각 지역 국립박물관은 기본적으로 각 지역에서 출토된 문화재를 중심으로, 또한 서로 다른 역사의 주제를 중심으로 역사를 기술한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유사한 역사를 공유하곤 한다. 그러나, 하나의 내용에 대해 각 박물관이 서로 다른 기술을 하기도 한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앞뒤가 안맞는 출토물인데 이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없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국립청주박물관은 해당 지역이 삼국 모두의 지배를 받았었고, 삼국의 전쟁터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따라서 다른 지역보다 삼국의 군사문화재가 골고루 산재함을 보였고, 동시에 왕조가 서지는 못했지만 일정 규모 이상의 지방세력이 항상 존재했고 그들이 여러 세력과 교류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갑자기 한 구석에 여러 금과 옥으로 치장된 장신구들을 전시하고 있다. (특별전시물 외에, 해당 지역 출토물에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들은 분명 전시관의 다른 유물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자원을 캐어 기술자를 통해 세공하는 것은 (적어도 그 당시에는) 일정 규모 이상의 전제국가체제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그것들이 왜 이 지역에서 출토되는 것인지, 지방 호족들이 어떻게 저런 것들을 소유하고 부장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국립공주박물관은 아무래도 웅진백제의 기간이 매우 짧기 때문에, 곁에 있는 무령왕릉에 기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상설전시실 옆에 보이는 수장고라 해서, 대규모의 출토유물을 별다른 설명 없이(출토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는 제공) 관람객에게 전시하고 있다. 뭔가 물량으로 승부하는 기분이었다. 무엇을 특별히 전달하고자 한다기 보다는, 이 충남 지역에서 출토되는 유물이 정말 많고, 따라서 이곳에 알려진 것보다 많은 문화가 잠들어 있다는 정도를 유추할 수 있는 정도.

공주박물관 수장고 일부. 이런 식으로 건물 한 동 가득이다. 

국립부여박물관에는 금동대향로가 있고, 국립익산박물관에는 미륵사지가 있다. 부여는 사비백제의 중심지이고, 따라서 백제의 왕성을 표출하는 자신감이 가득이다. 그런데, 익산 역시 백제의 왕성으로 기능했다는, 기대감과 자신감이 또한 가득했다. 한성백제 이후 백제는 웅진백제 후 사비백제가 아니었던가? 익산백제의 가능성은 오직 익산박물관에서만 찾아볼 수 있었고, 익산백제가 사비백제와 웅진백제 사이 어디쯤인지, 어떻게 변화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양측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웠다. (아직 학계에서 결론이 나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서로 언급하되 학문적인 논의가 있다는 설명 정도는 해놓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다)


후백제는 백제일까 아닐까. 놀랍게도 전주박물관은, 후백제의 왕성이 완산주(전주)였고, 백제 왕도 중 하나인 금마(익산)가 현 전주의 배후지역에 가깝다는 이유로, 백제 왕성의 흐름에 대해 전시하고 있었다. (물론 조선 이씨 왕조를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백제 관련 전시공간은 꽤 작은편이긴 했다.) 사비백제도, 웅진백제도, 금마백제도 아닌, 후백제의 전시공간에서 백제의 천도가 정리되어 있었고, 게다가 한반도 중부내륙 여러 마한 호족들에게 금과 옥 등의 장신구 전달을 통해 한성백제가 마한 여러 세력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설명까지 있었다. 청주박물관에 있어야 할 설명이 전주에 있는 것이다. (사족: 한성백제가 관계유지를 위해 마한 국가들에게 보낸 위세품의 종류와 그 위세품이 발견된 마한의 지역들을 정리한 전시물을 무려 금산역사문화박물관에서 찾을 수 있었다. 국립박물관도 아니고, 단지 해당 위세품이 금산에서 발굴되었고, 따라서 옛 금산지역이 의미있는 마한 소국 중 하나가 위치했을 것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옛 마한 지역에서 왜 금관이 발견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설명. (위치: 국립전주박물관)
한성백제가 마한 소국에 보낸 위세품이 발견된 지역에 대한 설명. (위치: 금산역사문화박물관)


지역 박물관 하나하나의 개선이 필요한 것도 있겠지만, 이런 것은 백제 문화를 전시하는 역사박물관 모두가 함께 진행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지금 하는 일에 대형 프로젝트가 여러 개 더 얹어지는 것이다. 적은 인력으로, 충분한 예산지원도 없이, 지금껏 버텨오던 지역박물관 담당자들이, 더 많고 큰 일을 추가할 여력이 과연 있을까 싶다. 이런 건 명령으로 될 일도 아니고, 필요를 느끼는 단계에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진짜 큰 그림부터 그려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추가적인 인력과 돈, 아니 결국은 모두 돈이다. 


관람료가 입장료여야만 할까


관람료는, 문화재 전시를 위한 비용과, 문화재에 대한 미래가치를 일정부분 반영한다. 관람료가 무료라는 것은 그 비용과 가치가 무료라는 것이 아니라, 무료 관람료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편하게 찾아와서 더 많은 인문학적 가치를 창출하기를 기대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관람하기 전에 관람료를 징수하려고 한다. 입장료다. 꼭 그래야만 할까. 들어갈 때 말고, 나갈 때 받을 수는 없을까. 


관람자 입장에서 적정 관람료는 문화재 관람에서 느껴지는 문화재의 고귀함과 여러 영상 및 문서 자료들을 통한 인문학적 지식의 증가에 대한 기대가치를 기반으로 하게 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과연 (역사)박물관에 방문할 때 해당 박물관의 소장목록과 해당 기간의 전시 주제 및 특별전에 대해 미리 알아보고 올까. 입장하기 전에 받는 관람료는 관람자가 미리 습득한 해당 박물관 전시물의 가치와 그로 인해 예상되는 인문학에 대한 기대가치가 된다. 알지 못한다면 그만큼 기대가치는 하락하고, 따라서 입장료가 낮아도 높은 저항이 발생할 수 있다. 관람 이후에 받는 관람료는 방금까지 관람한 전시물에 대해 느낀 가치와 방금까지 증가한 소양에 대한 가치에 근거한다. 어떤 쪽이 관람료 징수의 기본이어야 할까. 


이 형태는, 약간 서구의 팁 구조와 유사해 보인다. 좋은 서비스를 받고 후한 팁을 내는 것이 팁의 이론적 근거이기 때문이다. (실제 그렇지 않다는 실험경제학 쪽 연구도 있는 편이긴 한데, 현 시점에서는 저 이론적 근거를 언급하는 것이 의미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팁은, 내는 사람이 최종 액수를 정한다. 매겨진 가격은 지불 방법이 조금 복잡하거나 어려워도 수요자가 노력하지만, 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접근 과정 자체가 비용이고, 팁을 깎아먹는 이유가 될 수 있다.) 


팁이라는 느낌 말고, 관람 후 자유 기부금 느낌으로 접근하면 어떨까. 그렇다고 액수를 정하고 어쩌고 하면 복잡하니, 어차피 받으려고 했던 그 입장료 액수만큼, 예를 들면 나갈 때 QR코드 찍기만 하면 간편결제로 이어지고, 자동으로 박물관의 각종 전시정보와 특별전 일정, 또는 다른 가치있는 정보를 담은 디지털 팜플렛을 제공하는 방식이라면 어떨까 싶다. 낼 사람은 내고, 아닌 사람은 안 내면 되니까 입장료가 생기는 것보다는 저항이 크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그게 "관람료"의 의미와 더 많이 부합되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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