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에 대한 단상2
무슨 말인가 할 것이다. 화려함보다는 합리성을, 사치보다는 효율성을 따지는 곳이 미국 문화 아니던가. 그러나 허리를 졸라 매는 것은 검소함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목격할 수 있는 모습이다. 삶을 영위하는 것이 불가능할 때, 혹은 그 어떤 것으로도 내일의 안녕을 답보할 수 없을 때 사람은 허리를 졸라매기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한 나라, 한 공동체가 단체로 허리를 졸라매는 것은 전쟁이나 전염병, 혹은 대규모의 기근이 발생했을 때이다.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는 이러한 상황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최근 100여 년의 역사를 보더라도,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전세계의 절반 이상이 직접적인 전쟁의 피해를 겪었다. 지금도 세상의 절반 정도는 기근이나 내전, 혹은 기후변화 등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직접적으로 위협받고 있다.
혹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또는 20세기 초반에 있었던 대공황을 예로 들지 모른다. 위 예시와 이 둘 간의 차이는, 어떤 시장이 파탄난 것인가가 다르다. 앞 예시들은 실물경제의 문제이고, 뒤 두 가지 예시는 금융경제의 문제이다.
실물경제의 문제는 생산력의 훼손으로 이어져서 현재와 미래의 그 어떤 것도 파괴된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금융경제의 문제는 생산력의 훼손과는 관계가 없다. 화폐가치가 떨어지고 물가가 급등하고 자산가치가 떨어지면서 각종 신용 기반의 경제활동이 중단되더라도, 그래서 기회비용의 문제로 인해 경제활동의 유인이 없어지는 것 뿐이다.
세계대전 때에도 미국은 전장이었던 유럽/아시아와 바다 건너 있었다. 진주만과 알래스카는 공습을 받았지만 미국 본토와는 별 상관이 없었다. (그래서 9.11사건이 첫번째 미국 본토가 공격받았다는 데서 엄청난 충격이었던 것이다.) 전쟁으로 인해 세계 경제의 중심지였던 유럽이 황폐화되고, 이 때문에 생산력이 온전히 보존되었던 미국이 그 틈을 타고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루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한 위에 잠시 언급된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대공황 또한 현실에 존재하는 실물자산에 대해 물리적인 피해는 없었다고 볼 수 있다.
1970년대까지 활황을 이룬 미국의 제조업 대신, 점차 개방되어 가던 국제금융시장을 통해 세계 금융시장이 급속도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1,2차 산업과 기본 서비스업은 주요생산요소의 규모와 이동에 제약이 있는 반면에, 금융업을 필두로 하는 지식산업체계는 그 제약이 없거나 매우 적다. 특히 월가를 필두로 한 금융시장 자체가 지식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데다, 다른 생산요소들과 달리 국경의 제약이 적은 자본이 그 대상이다보니 여기서 문제가 시작된다. 미국 경제의 발전과 함께 한 금융시장이지만, 해당 부문의 고용이나 수익이 늘어난 파이의 크기에 비해 미국 본토의 몫이 매우 적었기 때문이다(기존의 산업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내수시장이 큰 나라는 필연적으로 일정 규모 이상의 제조업이 요구된다. 내수시장이 크다는 것은 인구가 일정 규모 이상이라는 것이고, 수출에 의지하지 않고도 경제가 어느 정도 돌아가야 하므로 소비력을 갖춘 인구가 꽤 돼야 한다. (일반적으로 이천만명 이상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또한 국가가 크면 클수록 다양성이 요구되고, 고학력의 기회비용 또한 작지 않으므로 사회 전반적인 교육 수준은 삶을 영위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서 정해질 것이다.
미국의 전반적인 교육 퀄리티는 낮은 편이 아니다. 외부에서 보는 미국의 교육은 그 수준이 매우 높다. 그렇기에 세계의 인재들이 미국 교육시장의 수요자로 뛰어드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 범위를 공립교육에 한정한다면, 교육 수준은 결코 높지 않다. 일부 계층의 높은 소득을 바탕으로 그만큼 (사/사립)교육비에 쏟아붓고, 그런 투자가 높은 계층과 소득을 보장하는 사회가 구축되었기 때문에 국가 전체의 관점에서 봤을 때 미국 교육이 유명한 것이지, 결코 미국의 (공공)교육 시스템이 좋다고는 볼 수 없다.
제조업이나 농업 종사자들에 비해, 지식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소득수준이 높은 건 사실이다. 또한 이들이 미국의 사립 교육에 투자해 왔고, 이들의 자녀가 미국 사회를 이끄는 리더십의 자리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지식 산업에 종사하려면 최소 대학 이상의 학력을 요구받고, 법적으로 보장되는 공립교육 이후의 대학교육은 그 비용이 절대 저렴하지 않다. 제조업 기반의 기업집단들은 크나큰 미국 내수시장에서 개헤엄만으로 충분히 살아남다 갑자기 철폐된 무역장벽 아래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인건비를 찾아 신흥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나 제조업으로 먹고 살던 다수의 미국 노동자들과 기타 1차산업 종사자들은 해당 기업들처럼 태세변환을 쉽게 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들의 땅에서 살아남아야만 한다.
돈 좀 번다 싶은 기업들은 지식산업 종사자들만 미국 내에서 고용하고, 나머지 저학력 노동력은 신흥시장에서 구하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미국 내에서 돌고 돌았을 자본이 이제는 신흥시장으로 풀려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바다 건너 사람들이 돈보따리를 싸들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다양성이 확보된 대도시 권역을 넘어 저 멀리 미국 깡촌에서도, 하나 둘 이웃의 가게가 문을 닫고 그 자리에는 피부색 다른 외국인들이 들어와 가게를 내었고, 그 자리의 주인이었던 이들이 법정 최소임금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처지가 되었다.
허리를 졸라 매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세대가 바뀌고 강산이 변하여도 역사라는 것은 민족의 DNA에 기억되는 것이기 때문에 내일을 기약할 수 없고, 그네들이 갖고 있던 터전이 송두리채 (그들과 문화를 공유하지 않는) 이방인(법적으로 미국 시민권이 없는 이들이 아니라, 문화적인 부문을 이야기하는 것이다.)에게 넘어가기 시작한 작금의 이 상황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나 대공황과 그 궤를 달리하는 , 그들의 현실을 위협하는 실물경제의 파산이라고 볼 수 있다.
매도 첫 번째 매가 제일 아픈 법이다. 그들은 겪어보지 못한 아픔이었을 것이다. 관용과 다양성이라는 미국의 가치관은, 미국이라는 물리적으로 넓디넓은 터전과 세계 경제를 이끌며 여유로운 삶에서 흘러나온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번 대선에서 보여주고야 말았다. 이것은 정치인이 어떠한 가치관을 갖고 정책을 편다 해서 나아지거나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여전히 미국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산층 백인들, 이들이 살아오며 누린 기본적인 삶의 가치들이 다시 그네들의 품으로 온전히 돌아올 수 있어야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