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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gwoo Kim Nov 12. 2016

알고 맞는 게 나을 수 있다

미국 대선에 대한 단상1

무방비상태에서 한대 맞는거랑, 알고 긴장한상태에서 한대 맞는거랑, 비교해 보면 어떤 게 더 아플까

 

눈과 귀가 먼 상태에서 4년만에 뒤통수때리는 한국이나, 아예 처음부터 대놓고 두손들게 만드는 미국이나, 별반 다를 거 없을 것 같다.


선해보이는 사람이 꼭 선하다는 보장은 없다. 또, 보기에 악해보이는 사람이 실제로 악한 행동을 한다는 보장도 없다. 대선 직전, 트럼프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어떻게 기독교인이 트럼프를 지지할 수 있는가 하는 글도 많이 보였다. (이 글은 트럼프를 지지하는 글이 아니다. 다만 “그렇게 절망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는 취지의 글이다)


트럼프는 애초에 경영인으로 일어선 사업가가 아니라 투자자로 일어선 사업가이다. 판세를 볼 때 큰 그림을 흔들지 않을 만한(예를 들면 이미지메이킹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요소들은 자기 편이 아닌 거 같으면 철저하게 배척하는 입장을 취한다. 손에서 놓으면 이미지에 마이너스가 되지 않아서 이득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사람들의 뇌리에 그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것이 목적이라면 오히려 그의 방식이 플러스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의 행보를 볼 때, 트럼프는 오직 '대통령 선거에 이기기 위한' 말과 행동을 선택했다. 무엇을 해야 해서 하고, 무엇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자고 한 것이 아닌 것 같다는 것이다. 기존 정치판의 구도와 전혀 다른 방식, 이 '다름'에 사람들은 그의 편이건 아니건 간에 극단적인 반응을 보여왔다. 


힐러리 클린턴은 미 국무장관 재직 경력이 있다. 그러 도널드 트럼프는 행정 및 정치 경력이 없다. 행정부의 기록은 명확하게 남는다.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것도 없을 만큼 명확하다. 그렇기 때문에 힐러리에 대한 정보는 어느 정도 오픈이 된 반면, 트럼프에 대한 정보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그의 사생활이나 과거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지만, 이는 대선 후보라면 당연히 오픈되는 수준의 정보이다. 


알려진 자와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자. 힘이 강한 자리일수록 국민들은 신비주의를 원하는 경향이 짙다. 한 곳에 권력이 집중되는 국가시스템은 그 특성상 정보의 불균형이 심각하기 때문에 그 사회의 실제 자유도는 (외부에서) 보여지는 자유도와 크게 다른 경우가 많다. 알려지지 않은 정보의 공간, 그 곳은 온갖 상상력으로 채워진다. 루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정치 능력으로 볼 때, 힐러리는 그의 장관 재임시절을 반추하여 예상을 하지만, 트럼프는 반추할 것이 없기 때문에, 힐러리가 특출나게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지 않은 이상 트럼프에게 밀릴 수 밖에 없다. 


모두의 예상대로, 트럼프가 선거기간 보여줬던 이상한 행동들처럼, 실제 대통령이 돼서도 그렇게 (이민자 혹은 외국인에게 특히) 무시무시한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설명했던 것처럼, 그의 과거는 그가 선거기간 발언했던 내용들 뿐이다. 그리고 그가 선거기간 보여줬던 모습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 달리 말하면 그의 이름을 어떻게든(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알리기 위한 방책의 일환이었다고 본다면, 상황이 (생각보다는) 그렇게 좋지 않게 흘러가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이 선거 결과를 통해 그의 지지자들, 미국의 전통산업 종사자들과 상대적으로 국제사회의 영향을 덜 받는 중부/남부 지역의 미국인들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마치 트럼프의 공약이 벌써 모두 시행된 것처럼 열광하면서 공격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 열망은 오직 투표에서 발현될 뿐, 정치권에서 공약을 추진하고 시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노동시장의 경직이 우려될 수 있는데, 미국 경기가 전반적으로 상승하지 않는 상황에서는(지금처럼 부동산 호황으로 보여지는 경기 호황 말고) 소비시장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노동비용의 상승을 정부차원에서 강제하기에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제조업으로 승부하기에는 이미 늦었고, 고학력 노동시장(전문직 및 석박사 이상급을 의미)은 당장 대체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다. 


트럼프의 많은 공약들은 곳곳에서 파탄나기 시작한 여러 주정부의 재정상태를 어떻게든 좋은 쪽으로 돌려놓고자 하는 것들이 많다. 재정상태를 돌리려면 세수를 늘리고 지출이 확정된 정책들을 취소하거나 그 규모를 축소해야 한다. 이 경우 세금을 더 많이 부담하는 쪽으로 복지를 우선하는 것이 순서이므로 이민자 혹은 불체자에 대한 혜택이 후순위로 밀릴 수 밖에 없다. 


미국은 원래 적자 재정 국가이다. 그래도 엄청난 경제력으로 그럭저럭 극복해 왔다고 볼 수 있지만, 이제는 딱히 뭐가 없어서 몇몇 소규모 로컬 정부들은 파산의 위기에 완전 직면해 있었다. 만일 주정부가 파산하면--그럴 때까지 아무 것도 안하고 있지는 않겠지만--필수 사회보장정책 외(치안 소방 등) 대부분의 정부 정책이 올스톱 될 수도 있다. 둘 다 좋은 상황은 아니지만, 오늘내일만 살 게 아니기 때문에 초장기적으로 보면 더 나은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다. 


국제 사회에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하여 집권하던 미국, 그러나 본진이 (경제상황때문에) 털리면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애초에 인종차별로 유명했던 미국이 자유주의 선도국가가 되었던 것은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자본 덕분이었다. 돈이 넘치고 생활이 전방위적으로 풍족해지니 모든 문이 열린 것처럼 보였던 것 뿐이다. 큰 전쟁 직후 각국에 잠자고 있던 자본이 전후 복구 및 물리적인 전쟁 피해가 적은 지역으로 몰리게 되고, 노동력과 소비력 또한 넘치도록 뒤따라오기 때문에 이 때 투자수익률이 가장 높아지게 된다. 그러나 지금은 말 그대로 경제상황이 ‘별로’이기 때문에 숨어있던 인종차별적 성향이 보다 도드라지게 된 것이다.


공화당 특성상 총기규제는 물건너 갔고, 석유업자와 중동눈치 보느라 애매했던 신에너지 사업과 셰일가스 산업은 이제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을 확보하는 선에서 추진될 것 같다. 물론 무턱대고 증산 혹은 감산한다고 중동이나 러시아가 유가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셰일가스 손익분기점을 감안하여 적당한 선에서 유가를 유지시키려 할 것이다. 유가 및 다른 주요금속들의 가격이 출렁대야 조선산업이 클텐데, 유가가 안정되면 조선산업의 호황은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미국 국내 유가는 신에너지 비중이 높은 서부는 지금처럼 2불후반-3불후반대를 여전히 유지하게 될 것이고, 신에너지 비중이 낮은 중부/동부는 가격 하락이 보다 자유로울 것이다. 


관세가 다시 활성화되면--특히 트럼프가 한 말대로 나프타를 폐기하는 식의--해외시장에서 생산된 상품의 대부분의 가격이 오를 것이다. 관세에서 자유로운 상품들의 경우, 다음 세대의 제품가격을 자유롭게 올릴 수 있는 안전지대가 생긴 것이므로, 당연히 가격이 올라갈 것이다. 물론 더 낮은 퀄리티로. 어차피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은 중국 등 아시아권이므로, 당분간 버틸 자본만 있다면 되려 관세장벽을 피해 미국에 생산기지를 건설한 해외브랜드만 좋은 일 시키게 될 것이다. 


사업 좀 해본 트럼프가 이 정도 생각 안할 리 없고, 이 정도 분석하는 참모 없을 리도 없다. 기존 정치판 뒤엎어가면서 어떻게든 대통령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목표 이룬 트럼프. 재선도 돼야 하니 적어도 첫 4년은 미국 국내 제조업 관련해서 상대적으로 만만한 노동시장 좀 손볼 거 같고, 각 주 재정을 타이트하게 가져갈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힐러리가 됐어도 크게 다를 게 없는 부분이다. 누구처럼 대놓고 막장짓만 안하고 평타만 쳐도 재선은 큰 문제 없을 테니, 몸 사리면서 적당히 첫 번째 임기를 누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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