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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맘 Nov 02. 2018

엄마가 떠난 날

푸른 하늘이 짙게 물든 10월의 어느 마지막 날에,

엄마의 숨결은 그저 바람이 되었다.   



학교 수업시간에 소식을 듣고 급하게 병원으로 뛰어왔지만, 엄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병실을 가득 메운 것은 오직 적막과 슬픔이었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엄마 손을 연신 주무르며 엄마의 죽음을 애써 부정하려 했지만, 온기도 차츰 사라져갔다. 


그렇게 엄마는 예고 없이, 유언도 없이, 싸늘하게 식은 몸처럼 차갑게 내 곁을 떠났다.     


그날 이후, 교복을 입은 19살 ‘그 소녀’는 말 한마디 없이 자신을 두고 떠난 엄마를 원망하며, 큰 상실과 슬픔, 칠흑 같은 외로움 안고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 


자신을 ‘버림받은 딸’로 여기면서 말이다.      


써니킴의 자줏빛 하늘아래(17')




엄마가 36살 때,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던 무렵 엄마의 왼쪽 가슴에서 종양이 발견되었다. 그것도 아주 우연히 말이다. 엄마 보다 두 살 아래인 이모집에서 외할머니, 엄마, 이모 이렇게 세 모녀가 거실에 나란히 누워있었다. 세 모녀는 쉴새 없이 수다를 떨다가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하여 서로의 젖가슴을 만지며 깔깔거렸다. 

그때 유독 엄마의 한쪽 가슴이 컸던 것을 이상히 여긴 외할머니가 낌새를 눈치챘다.     


“얘, 가슴에 멍울이 있는 거 같은데. 얼른 병원에 가봐.”      


추운 겨울에도 감기 한번 잘 걸리지 않아 병원과는 거리가 멀었던 엄마는 외할머니의 강요에 못 이겨 그날 바로 가슴검진을 받았다. 두 군데의 병원에서 엄마는 유방암 3기로 판정받았다.     


그날 소식을 듣고 우리집을 방문했던, 큰 삼촌의 다리를 붙잡고 바닥에 엎드려 아이처럼 엉엉 우는 엄마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그 옆엔 검은 엑스레이 사진 속에 뿌옇게 퍼진 암이 선명하게 찍힌 엄마의 가슴사진이 바닥에 쓸쓸히 놓여있었다. 


처음으로 본 엄마의 눈물. 늘 씩씩하고 굳셌던 엄마는 그날 그렇게 무너졌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엄마는 서울로 올라가 수술을 받았다. 한동안 나와 동생은 엄마를 보지 못했다. 언제 집으로 돌아올지 모르는 엄마를 하루하루 기다렸다. 다시 집에 돌아온 엄마는 전보다 많이 수척해졌다. 이전에 엄마에게 느껴지던 생기, 활력, 에너지는 흔적없이 사라지고 집안에는 정적, 고요, 침묵만이 자리를 지켰다. 가끔씩 살짝 열린 방문 사이로 엄마의 끙끙 앓는 소리가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엄마는 36세의 젊은 나이에 한쪽 가슴을 도려내었다. 그 자리엔 10센티 정도의 긴 수술 흉터와 함께 겨우 심장을 가릴 정도의 얇은 피부만 남겨졌다. 그렇게 엄마의 길고 긴, 외롭고 고독한 암투병 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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