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복직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디맘 Mar 01. 2019

알 수 없는 전화 한 통

인사부 블랙리스트라...

어느덧 내 배는 작년에 이어 다시 남산만 해졌다.

고무장갑을 끼고 열심히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둘째 아이가 휴대폰을 쥐고 아장아장 걸어왔다.


"음마 음마"


휴대폰을 보니 어디선가 전화가 왔다.

자세히 보니 02로 시작되는 모르는 번호였다.


광고려니 생각하고 다시 신나게 설거지를 시작했다.

그러자 또다시 같은 번호로 전화가 왔다.


'광고전화는 보통 한 번만 오는데 두 번이나 전화가 왔다.


이상한 생각에 고무장갑을 벗고 전화를 받았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은행 인사부입니다."


'인사부'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 내 머리는 하얗게 되었다.

알 수 없는 전화 한 통은 바로 인사부 전화였다.


"아.. 네 안녕하세요."


내 심장은 두근거리기 시작했고, 아직 셋째 아이 소식을 알리지 않은 상태여서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대리님, 이제 복직하셔야죠?^^ 복직일은 언제로 하실 건가요?"

라고 친절하게 묻는 소리가 들려왔다.

난 이미 육아휴직 4년 차에 접어들고 있었다.


"아.. 네.. 실은.. 제가 또 임신을 하게 되었어요.."

나는 머뭇거리며 이야기를 꺼냈다.


"네??! 아.. 하하.. 일단 축하드립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 "


'뚜뚜뚜'


뭔가 상황이 급박하게 종료되었다.

전화를 건 인사부 직원은 나의 연이은 임신 소식을 듣고는 매우 당황해하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이건 뭐지?'


뭔가 덜 떠름한 상황이었지만 인사부에 이렇게나마 임신소식을 전했으니 마음은 편했다. 차라리 매를 먼저 맞는 게 낫다고~ 막상 내뱉고 나니 속은 편했다.




사실 육아휴직은 2년만 딱 쓰고 복직하려고 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하게 둘째가 생기고, 2년을 더 연장해서 4년 쉬고 복직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또 예기치 못하게 셋째가 생기는 바람에 육아휴직을 어떻게 더 신청해야 할지 고민이 생겼다.


4년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장장 6년의 육아휴직이라니.


회사 입장에서도 비용은 비용대로 나가고 인원이 충족되지 않으니 반기지 않을 터이다. 그런 상황을 아니 육아휴직을 또 신청하는 게 망설여지던 터였다.

물론 회사에서 2년간의 육아휴직제도가 명확하게 있고, 지켜진다고는 하지만 6년의 육아휴직은 회사에서도 부담스러운 상황일 것이다.


특히 일과 육아문제로 인해 경력단절을 택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육아휴직 중에 혹은 육아휴직이 끝나고 직장을 그만두는 상황이 많아지고 있다. 사회적으로 맞벌이 가정에 대한 정책적으로 지원시스템이 부족하다 보니 이런 현상들이 늘어나고 있다. 결국 비용에 대한 부담은 회사에게 돌아가고, 그 피해는 회사와 경력단절 여성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다.


아이를 낳고 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엄마들이 늘어나는 것은 노동력 차원에서도 국가적인 손실이 발생되는 것이다. 아이 키우는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일까지 양립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니 요즘 세대들은 더 아이를 낳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고작 10만 원 남짓의 아동수당 지급으로 아이를 더 낳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길까?

현실은 생각보다 더 혹독하다.

경제적인 지원도 필요하지만, 맞벌이 엄마들은 언제든지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원한다.

정부는 그 시스템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정책적인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퇴근 후 집에 돌아온 신랑에게 물었다.


"여보. 나처럼 육아휴직을 6년이나 쓴 직원이 있을까?"


"음... 아마 있지 않을까? 주변에 물어보니까 몇 명 있다고 듣긴 했어."


"그렇구나. 그 직원들은 지금도 은행을 다니고 있을까?"


"글쎄..."


"나 오늘 인사부에서 전화 와서 셋째 임신했다고 하니까 엄청 당황해하면서 바로 끊더라~."


"ㅋㅋㅋ 넌 요주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갔을 거야."


"뭐??!! 이리 와 봐!! 이런 10탱!!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 건데 이리 와!!"


전체 직원이 만 명인데 6년간 육아휴직을 쓴 직원이 고작 몇 명 밖에 안된다니.

씁쓸하기도 했다.

신랑 말대로 난 어쩌면 인사부에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라갔을 수도 있다.


그나저나 블랙리스트라...

매거진의 이전글 이상한 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