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를 5개월이나 돌아다녔다고?"
흔히 '배낭여행'이라고 하면, 유럽이나 남미 같은 해외 배낭여행을 떠올리지만, 나는 국내로 여행을 떠났다.
대학시절, 하고 싶은 일들을 하느라 28살의 늦은 나이로 학교를 졸업한 나는, 취업 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이 ‘또’ 생겼다. 예전부터 다양한 지역 음식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우리나라의 지역음식&지역 농산물을 주제로 배낭여행을 해보고 싶었다. 각 지방을 다니며 ‘진짜 지역 음식’을 맛보고 싶었던 것이다.
'과연 어떻게 하면 정말 제대로 된 지역 음식을 먹어볼 수 있을까?'라고 고민했던 나는, 그 해답을 '시골의 집밥'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골의 집밥은 할머니들의 손맛과 각 고장의 특산물을 이용한 색다른 음식을 맛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시골의 집밥을 얻어먹느냐?'였다. 그때 마침 떠오른 생각이 '시골의 일손 부족'이었다. 뉴스나 기사에 보면, 시골엔 항상 일손이 부족하다고 하니 농사일이나 집안일을 도와드린다면, 밥 한 끼 정도는 얻어먹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것이다. 또, 직접 농사일을 해보면 식재료 공부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았고, 거기에 잠자리까지 제공받는다면? 이거 큰돈 없이도 전국을 여행할 수 있겠는데?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이런 단순한 생각으로 여행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2018년 5월, 여행은 시작되었고. 호기로웠던 출발과는 다르게, 시작부터 난관이 계속되었다. 사람들은 커다란 배낭을 메고 시골을 돌아다니는 청년을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차가운 말투로 외면하기 일쑤였다. 사실 요즘처럼 흉흉한 세상에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마음 편히 자기 집으로 초대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렇게 한 군데의 농가를 구하기 위해, 하루에 20통이 넘는 전화를 했고, 계속된 거절 끝에 '한번 와보세요'라는 말을 들을 때면, 이 여행을 이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시름 놓였다. 나는 수상한 청년을 믿고 자신의 집 혹은 자신의 마을로 초대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그만큼 농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떠한 일이든 가리지 않고 도와드렸다.
모내기 철에는 정신없이 모판을 나르기도 했고, 뜨거운 햇빛 아래 하루 종일 허리를 구부려 잡초를 뽑기도 했다. 생전 처음 써보는 농기계를 다뤄 직접 밭을 갈궈보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과일 수확부터 판매까지 모든 과정을 도와드리기도 했다.
이런 나의 진심이 통했는지 그분들은 나를 '수상한 청년'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청년'으로 바라봐주셨고, 나를 아들 혹은 조카처럼 편하게 대해주셨다. 또한, 내가 다음에 찾아갈 농가를 소개해주시거나, 각종 SNS를 통해 나를 홍보해주시기도 하셨다.
그렇게 5개월간 전국을 다니며 일손을 돕고, 농부님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애초 목적이었던 ‘지역 음식’보다는 ‘농사의 어려움과 농촌의 문제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힘들게 수확한 농산물이 제대로 된 가격을 받지 못해 화가 나 자신의 농작물을 모두 버렸다는 농부님의 이야기, 태풍 피해로 1년의 농사를 모두 망친 농부님의 이야기 등 여러 고충을 들으며 나의 마음은 점점 무거워져 갔다.
"자네 같은 사람이 꼭 농업인들을 위한 일을 해주게나"
여행을 마친 나는 ‘농산물&농촌’에 관련된 일을 하기고 결심했다. 그렇게 새로운 도전을 위해 또다시 무작정 집을 떠나 지방으로 내려왔다. 현재는 농산물 유통과 관련된 곳에서 일을 하고 있며, 앞으로 내가 느꼈던 여러 문제점들을 해결해보고 싶은 생각이다. 아직은 정확하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조금은 방황하고 있지만, 나를 도와주시고 응원해주신 분들의 도움이 헛되지 않도록 하고 싶다.
여행하는 동안 얼굴도 모르는 수상한 청년을 집으로 초대해주셨던 모든 분들, 나를 응원한다며 밥을 사주셨던 분들, 차비하라며 나에게 큰돈을 주셨던 모든 분들 등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Ps. 무모하고 무식한 청년을 도와주셔서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