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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총각 Dec 05. 2018

결국 집에 먼저 왔다니까

과수 농가의 휴가

날이 본격적으로 더워지는 느낌이었다. 옥상에서 텐트를 치고 잤던 나는 텐트 안으로 쏟아지는 강렬한 햇빛 때문에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찜통 같은 텐트 안을 벗어나니 상쾌한 아침 공기가 나를 맞이 했다. 옥상에서 아래를 바라보니 배 나무와 복숭아 나무가 널리 펼쳐져있었다.


강원도 양양에서 배와 복숭아 농사를 짓고 계신 아버님과 어머님은 아침 일찍부터 일을 시작하신 모양이다. 내가 옥상에서 내려오자 식탁에는 어머님이 미리 준비해주신 아침밥이 차려져 있었다. 든든하게 아침밥을 차려먹고 내가 해야할 일을 '배 봉지 씌우기'였다. 배는 크는 동안 병충해 피해가 많은 편인데, 아직은 작고 귀여운 새끼 배(?)였기 때문에 앞으로 크는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종이 봉지를 씌워주는 작업이 필요했다.


배 농가에서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작업 중 하나인' 봉지 씌우기 작업'은 반복 노동의 끝판왕이었다. 여기저기 작은 배들이 숨어있었기 때문에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모두 봉지를 씌워야 했다. 어떤 배는 너무 높이 달려있어 기다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곡예를 하듯 작업을 하곤 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배 봉지를 씌운다

"나는 배 농사하면서 이게 제일 힘들어"


아버님은 섬세한 작업이 필요한 '봉지 씌우기'가 1년 농사일 중에 가장 힘들다고 하셨다.



"그래도 과일 농사는 이런 작업만 끝나면 밭농사에 비해 시간적 여유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완전히 그런 것도 아니야, 과일 나무는 계속 신경 써주지 않으면 다음해 농사를 망치기 쉬워"


다른 밭작물에 비해 관리하기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과일 농사 역시 쉬운게 하나도 없다.



"밭농사는 한해 농사가 안되면 일 년 농사만 망친 거지만, 과일 나무는 한번 죽어버리면 이후 계속 농사를 지을 수 없잖나... 몇 년에 걸쳐 자란 나무가 죽는 것이기때문에 관리를 잘해줘야 해. 게다가 태풍 같은 천재지변에도 약하고..."


"그럼 겨울에도 할일이 많은 편인가요?"


"겨울 동안 나무를 잘 신경 써줘야 한 해 농사를 잘 지을 수 있기 때문에, 어디 제대로 놀러 가지도 못해. 한 번은 겨울에 가족끼리 놀러 갔는데 하필 그날 날씨가 너무 안 좋은 거야, 가족들은 다들 신경안쓰고 노는데 나는 밭에 있는 나무들이 너무 걱정되더라고. 그래서 결국엔 집에 먼저 왔다니까"



2018.06.18-06.21

강원도 양양에서

2018년 5월, 지역 음식과 지역특산물을 주제로 국내배낭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시골 농촌을 다니며, 농사일을 돕고 집 밥을 얻어먹으며 전국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렇게 151 일간 각 지역의 농부님들과 만나 이야기하고, 농사일을 직접 체험하면서 느낀 모든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도시에서온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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