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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총각 Dec 11. 2018

돈 줘도 안 하는 일을 왜 해?

초록 괴물 소탕 대작전

"아이고, 아이고"


평생 밭일을 하시느라 허리가 굽어진 할머니 그리고 마을 이장직을 맡고 계신 아버님. 모자(母子)가 함께 강원도 태백 산골짜기에서 '친환경 산나물 농사'를 지으시는 이곳은 산 중턱에 있는 고랭지 밭이었다. 말 그대로 '산골짜기'.


친환경 곤드레 밭

"우와 이런 곳에 밭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그렇지?"


"강원도엔 이런데가 많아"


인제에서도 고랭지 밭에서 일을 했지만, 이곳은 한 수 위였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곳에 드넓은 밭이 있었다. 아마 문명의 발전이 없었다면, 이곳은 세상과 소통이 단절된 삶을 살았을 것이다. 


푸른 하늘과 맞닿은 밭을 잠시 구경하고, 바로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날 필요한 작업은 '잡초 제거'. 친환경으로 산나물을 키우시기 때문에,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잡초를 뽑아야 했다. 사실, 산나물에 대해 잘 몰랐기때문에 어떤 게 산나물이고 어떤 게 잡초인지 헷갈렸다. 다 잡초처럼 생긴 것 같기도 하고, 다 산나물처럼 생긴 것 같기도 하고...


할머니와 아버님은 나에게 어떻게 작업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시고는 바로 밭을 매기 시작하셨다.(*밭을 매다: 잡초를 뽑다) 단순한 작업이라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비탈진 밭에 쪼그려 앉아 일하다 보니, 슬슬 몸에 무리가 가는 게 느껴졌다. 특히, 허리와 무릎이 상상 이상으로 아파오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나의 시선

"이장님, 이거 얼마나 걸릴까요?"


"글쎄 이거 밭 다 할 때까지 해야지, 왜 힘들어?"


"아... 아뇨, 아직은 할만해요"


"원래 남자들은 쪼그리고 앉아서 하는 게 힘들어. 그래서 예전에 남자들은 이 작업을 안 했어. 힘쓰는 일만 했지"


남자는 신체적인(?) 이유로 쪼그려 앉아하는 일은 힘들다는 아버님의 말씀이었다. 듣고 보니 그런 거 같기도 했다. 하루 종일 앉아서 풀을 뽑다 보니, 다리가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와 너무 힘들다...'


나도 이렇게 힘든데 같이 일하시는 할머니는 얼마나 힘들실까? 하지만, 할머니는 나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작업을 하고 계셨다.

허리를 굽혀 작업하시는 할머니

나: "할머니, 안 힘드세요?"


할머니: "왜 안 힘들어, 아이고 그냥 다 제초제로 해버렸으면 좋겠구먼"


이장님: "아이고 어머니 안된다니까"


할머니()는 이제 나이도 있고 일이 너무 힘들다보니, 밭 사이사이 고랑에 있는 풀은 제초제를 사용해 작업량을 줄이고 싶어 하셨다. 하지만, 친환경으로 생산하시려는 아버님()은 밭은 물론이고, 밭 주변에도 제초제를 사용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셨다. 일을 하면서도 모자간의 갈등은 계속되었다.


이장님: "제초제를 한 번 땅에 뿌리면 3년 이상 그 땅에 남아있어, 안전한 먹거리를 만드려면 절대 안 돼"


할머니: "잡초 뽑는 일은 돈 줘도 안 하려고 하는데, 이걸 누가 다 뽑아?"


연세가 있으신 할머니의 말씀도 맞고, 이장님의 말씀도 맞았다. 친환경 먹거리를 위해선 화학 비료나 농약 그리고 특히,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제초제를 쓰지 않으면 그만큼 많은 인력이 필요했다. 제초제를 이용해 풀을 죽이면 하루에 끝날 일을, 손으로 직접 작업하면 4~5일 이상 걸리기 때문이다. 일꾼들도 이곳에서 제초작업을 한다고 하면, 오려고 하지 않아 매일 두 분이서만 일을 한다고 하셨다.


실제로 직접 경험해보니, 잡초를 뽑는 일은 수많은 농사일 중에 가장 힘든 작업에 속하는 것 같았다. 놀라운 사실은 잡초 자라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이 작업(잡초뽑기)을 2주 뒤에 똑같이 '또'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장님, 이렇게 힘드신데 친환경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먹거리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거야. 이왕 먹더라도 몸에 좋고 안전한 걸 먹어야지."


"그래도 아직 친환경 농산물은 대우를 못 받는다고 하시던데요?"


"그래도 이게(친환경)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야. 처음에는 주변에서 나보고 다들 미친 X이라고 했었지. 하지만 지금은 주문하는 사람들이 꽤 늘었어. 힘들지만 이분들을 위해서라도 계속해야지"


2018.06.27-07.02

강원도 태백에서


2018년 5월부터 10월까지, 지역 음식과 지역 농산물을 주제로 전국 배낭여행을 했습니다. 시골 농촌에 가서 일손을 도와드리고, 집 밥을 얻어먹으며 151일간 전국을 돌아다닌 여행. 직접 체험했던 농사일, 각 지역 농부님들의 다양한 이야기 등. 여행을 하며 느낀 모든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도시에서온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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