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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총각 Dec 17. 2018

꽃을 든 남자

모든 식탁 위에 꽃 한송이를

'리시안서스?'


꽃 이름이다. 난 꽃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관심이 없었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화훼 농가에 가게 되었다.

리시안서스

경상북도 칠곡군의 한 마을. 칠곡은 전국에서도 화훼 단지로 유명한 곳이다. 친근한 이미지의 이장님은 나에게 화훼농가 한 군데를 소개 시켜주셨다.


"꽃 농사하는데서는 일 안 해봤지?"


"꽃 농사요?"


이장님은 나를 비닐하우스가 쭉 펼쳐져있는 어느 농가에 데려다주셨다. 가만히 서있기도 힘든 더운 날씨에 두꺼운 천으로 덮여있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화훼 농가 사장님이 빼꼼히 얼굴을 내미셨다. 


"안으로 들어오세요~"


한창 꽃 묶기 작업을 하고 계신 비닐하우스 내부는 예상과는 다르게 서늘한 기온이었다.


"여기는 엄청 시원하네요?"


"그럼, 여기는 에어컨 틀어놓고 작업하니까"


온도가 높은 곳에서 작업을 하면 꽃이 시들기 때문에, 모든 햇빛이 차단된 공간에서 에어컨을 틀어놓고 작업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 덥지 않은 곳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다. 


'앞으로도 이렇게 시원한 곳에서만 일할 수 있다면...'

바깥 온도와 다르게 시원한 비닐하우스

내가 이곳에서 도와드릴 일은 높이가 각기 다른 꽃을 정리하여 한 단으로 묶는 간단한 작업이었다. 먼저 필요 없는 잎을 떼내어 보기 좋게 다듬고, 같은 길이로 맞춰 자른다. 그다음 잘 다듬어진 꽃을 8~10개로 맞추어 묶어준다. 보기 좋게 묶인 꽃들은 저온 창고에 비치된 물통에 꽂아 두면 끝.


작업 후 저온 창고에 저장해 놓은 꽃들

정말 단순한 작업이었지만, 이 모든 과정에는 사람의 손이 필요했다. 한 번의 작업이 끝날 즈음이면 사장님이 계속해서 꽃을 따 오셨다. 작업이 어느 정도 손에 익자 일하는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잠깐, 너무 빠르게 할 필요 없어. 꽃이 예뻐 보이게 만들어야지."


"꽃은 다른 농산물이랑은 다르게 눈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모양이 안 예쁘면 사람들이 안 사가." 


그렇게 이틀 동안 반복적인 작업을 하며 사장님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나는 사장님이 친형과 함께 화훼 농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사장님 어쩌다 화훼 농사를 시작하시게 되신 거예요?"


"그냥 이것저것 하다가 여기까지 왔지. 왜? 안 어울리나?"


사실 사장님은 꽃이랑 어울리는 이미지는 아니셨다. 선명한 눈매와 다부진 몸을 갖고 계신 사장님은 운동선수라고 했다면 충분히 믿을 만한 이미지였다.


"아뇨. 아뇨. 그냥 궁금해서요. 농사짓기 전에는 어떤 일 하셨어요?"


"나랑 형님은 원래 산업보일러, 전기 이런 쪽에서 일했었어.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생산 쪽으로 집중이 되고 우리가 하던 일이 돈이 안되더라고. 애는 크고... 그래서 이곳으로 다시 내려와서 농사를 지으려고 했는데, 원래 여기가 예전엔 강이 많아서 물이 흐르던 지역이었어. 그래서 땅 밑에 모래가 많다고. 꽃을 키우기엔 최적의 장소지. 그래서 꽃을 시작하게 됐지"


"처음엔 어려움이 많으셨을 것 같은데, 어떠셨어요?"


"처음에 모종을 사와서 시작을 하는데, 모종 파는 사람들이 판매만 하고 생산 방법은 안 알려주더라고. 그래서 그냥 시작했는데 이게 꽃이 안 피는 거라. 처음엔 온도 관리도 못하고 그래서 수확량이 많지 않았지. 그렇게 계속하다 보니까 이제는 생산 방식을 조금 터득해서 나아졌지."


"그럼 이제 노하우가 많이 생기셨겠네요?"


"그렇지. 그런데 요즘에는 수입산 꽃 때문에 힘들어"


"우리나라도 꽃을 수입해요?"


꽃을 자주 사보지도 않았던 나는 국내에서도 꽃을 수입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분명 꽃은 금방 피고 지는데 어떻게 수입을 하지? 그런데 사장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나라도 꽃을 수입뿐만 아니라 수출도 많이 한다고 하셨다. 


"우리나라도 꽃을 수입하기도 하고 수출하기도 해. 우리도 비수기 때는 수출로 많이 판매되는 편이야."


"꽃에도 성수기와 비수기가 있어요?"


"보통 우리나라는 겨울이 성수기고, 여름이 비수기야. 11~2월에 행사가 많잖아. 연말부터 졸업식까지. 그때 잠깐 동안만 판매량이 많고 그 이외에는 거의 없다고 보면 돼. 그래서 지금 수확하는 건 꽃봉오리가 피기 전에 수확해서 외국으로 보내지 그러면 그곳으로 가는 동안 개화가 돼서 팔리지"


"아 바나나가 파란색일 때 수확해서 들어오는 거랑 같은 원리네요?"


"그렇지. 우리나라도 꽃을 주고받는 문화가 잘 형성된다면, 이렇게 수출할 필요 없이 내수 판매로만 수입을 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조금 아쉽지"


생각해보니 나도 꽃을 언제 사봤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꽃을 선물 받으면 기분은 좋지만, 이후 관리도 해야 하고, 금방 시들어 버리기 때문에, 선물로 꽃을 준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사실 저도 꽃을 잘 안샀던거 같아요..."


"그렇지?"


"유럽이나 이런데는 꽃 문화가 잘 형성되어있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데 그런게 좀 부럽더라고... 앞으로 우리나라에도 꽃을 선물하는 문화가 자리 잡혀서, 모든 가정집 식탁에 위에 꽃이 한 송이씩 꽂혀 있었으면 좋겠어"



2018년 5월부터 10월까지, 지역 음식과 지역 농산물을 주제로 전국 배낭여행을 했습니다. 시골 농촌에 가서 일손을 도와드리고, 집 밥을 얻어먹으며 151일간 전국을 돌아다닌 여행. 직접 체험했던 농사일, 각 지역 농부님들의 다양한 이야기 등. 여행을 하며 느낀 모든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2018.07.17-07.20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도시에서온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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