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지상주의
새벽 5시, 경상북도 청도에 위치한 복숭아 농원의 아침은 조금 일찍 시작되었다. 아침 8시만 돼도 너무 더워 일을 하지 못할 지경이었기 때문에(한여름이었다), 해가 뜨기 전에 서둘러 이날 판매할 복숭아를 수확해야 했다.
"이장님 오늘은 어떤거 따면 될까요?"
"아카츠키는 다 익었으니까 많이 따고, 네오네랑 오도로끼는 다음주 쯤 제대로 익으니 잘 익은거만 따면 돼"
아카츠키, 네오네, 오도로끼? 이건 복숭아의 품종명이었다. 복숭아 농가에서 며칠간 일을 하다보니 어느새 나도 품종을 구분할 수 있게되었다. 먼저 종류별로 복숭아를 수확해 박스에 보기 좋게 담기 시작했다. 탐스럽게 익은 복숭아가 가득 담겨진 상자를 보니 왠지모르게 흐뭇해졌다. 수확한 복숭아를 가지고 판매장으로 돌아왔다. 선별기를 이용해 크기별, 종류별로 구분을 하고 복숭아 판매를 시작했다. 청도는 복숭아로 유명한 지역인 만큼 많은 관광객들이 복숭아를 사러 판매장을 방문했다.(이 농가는 복숭아 판매장을 직접 운영하셨다)
"어머님 이거 진짜 맛있어요. 이거로 사가세요~"
내가 이곳에 있었던 시기에는 아카츠키라는 품종이 가장 맛있을 때였다. 당도도 높고, 아삭아삭 씹히는 식감이 일이었다. 하지만 이 품종은 아주 큰 단점이 있었는데, 바로 생김새였다. 정말 맛있는 품종이지만 색이 푸르뎅뎅하고, 크기도 일반 복숭아보다 훨씬 작은 편이라 마치 덜익은 복숭아처럼 맛없게 생겼다. 손님들에게 아무리 맛있다고 홍보해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에이 그건 너무 맛없게 생겼다"
"일단 한번 드셔 보세요"
아삭!
"와~ 생긴 거와는 다르게 너무 맛있는데?"
"그쵸?"
"진짜 그러네! 음... 그런데 선물하기에는 너무 모양이 좀 그렇다"
역시 확실한 단점을 가진 품종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찾는 크고 예쁜 복숭아는 네오네라는 품종의 말랑한 백도 복숭아였는데, 이 품종은 약 일주일 정도가 지나야 제맛을 내는 품종이었다. 손님들의 수요가 있어서 수확은 했지만 아직 당도와 향이 덜했다. 생산량이 얼마 되지 않아 가격도 비쌌다. 손님들도 시식을 해보고 느꼈다. 모양은 이상하지만 지금은 아카츠키라는 품종이 더 맛있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손님들, 특히, 선물용으로 구매하려는 사람들은 크고 예쁜 품종을 선호했다. 결국, 손님들은 선물용으로 맛은 덜하지만 보기 좋은 큼지막한 복숭아를 사갔다.
"여기 처음 오는 사람들은 예쁜 과일만 사가"
수년째 복숭아를 판매하고 계시는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왜 직접 맛을 보고도 굳이 맛이 덜한 과일을 비싸게 사갔을까? 우리가 과일을 고르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먹어보지 않고는 맛을 알 수 없는 과일을 선택할 때 '크기와 모양새'는 선택의 기준이 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직접 맛을 보고도 생김새 때문에 과일을 선택하는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제사상에 가장 특상품의 과일을 올렸다. 여기서 특상품이란 '가장 크기가 크고 때깔이 좋은 것'이다. 과거에는 제사상에 크고 예쁜 과일을 올리지 않으면, '조상에 대한 예의가 없는 놈'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크고 예쁜 과일이 곧 정성을 표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조상님들은 실질적으로 과일의 맛을 보지 않으시기에(?)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우리는 과일을 먹어야한다. 그렇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맛이다. 물론 선물을 하는 생색을 내기위해선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일의 본질은 맛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옛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하지만, 가끔은 이상하게 생긴 떡이 더 맛있을 수도 있다.
2018년 5월부터 10월까지, 지역 음식과 지역 농산물을 주제로 전국 배낭여행을 했습니다. 시골 농촌에 가서 일손을 도와드리고, 집 밥을 얻어먹으며 151일간 전국을 돌아다닌 여행. 직접 체험했던 농사일, 각 지역 농부님들의 다양한 이야기 등. 여행을 하며 느낀 모든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2018.07.20-07.24
경북 청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