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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총각 Dec 10. 2018

소비의 쾌락

숙소와 돼지갈비

강원도 삼척으로 이동했다. 전날 보았던 기상 예보는 정확했다. 삼척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미친 듯이 비가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장마가 시작된 건가? 일단 피신을 하기 위해 근처 PC방으로 향했다. 인터넷을 통해 근처에 갈만한 농가나 어촌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여러 군데 전화를 돌리며 허락을 구했지만 동의를 얻어 내진 못 했다. 비는 멈추지 않고, 일도 구해지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일 구하기가 힘들어졌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도 없고, 밖에서 텐트를 치고 자기도 힘들었다. 


'오늘은 숙소를 잡아야겠다'


터미널 바로 근처에 위치한 숙소로 들어가 방 하나를 잡았다. 여행 처음으로 돈을 지불하고 잠을 자게 되었다. 비상금이 생각보다 금방 나가서 아쉬웠지만, '며칠 동안 지쳤던 몸을 쉬게 하자'라고 생각하며, 지출에 대한 합리화를 시작했다. 먼저 비에 쫄딱 젖은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하, 편하다'


역시 돈을 쓰니 몸이 편하다. 이게 바로 돈의 맛인가. 몸이 편하니 스르르 잠이 쏟아졌다. 




정말 오랜만에 긴 낮잠을 잔 것 같았다. 잠을 자고 일어나니 배가 고팠다. 그러고 보니 아침밥을 먹은 이후 저녁시간이 되도록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고기가 먹고 싶다'


갑자기 특정 음식이 간절히 먹고 싶어 지면, 바로 그게 몸이 원하는 것이다.(합리화2) 이날 하루 동안 비에 젖은 생쥐꼴로 돌아다녔던 나는, 작은 사치를 부리기로 결심하고 무작정 고깃집으로 향했다. 

숙소에서 낮잠을 자고 나니 잠시 멈췄던 비

"몇 명이세요?"


"한 명이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생각해보니 '혼자' 고기를 먹으러 온건 처음이었다. 돼지갈비를 주력 메뉴로 파는 이 식당에는,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모인 가족 단위의 손님들로 꽉 차 있었다. 4인 테이블에 혼자 앉은 나는 돼지갈비 2인분을 주문했다. 혼자여서 그랬을까? 고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굉장히 길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맞은편에 앉아있는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나는 핸드폰만 이리저리 만지작거렸다.


잠시 후 뜨겁게 달궈진 숯불과 함께 불판이 나오고, 이어 맛있게 양념된 돼지갈비가 나왔다. 

양념 돼지갈비

"치이이익~"


불판에 올라간 고기가 먹음직스럽게 익기 시작했다. 배가 고팠던 나는 고기가 익자마자 흰쌀밥과 함께 식사를 시작했다. 와구와구. 어느덧 내 시야는 불판 위에 올려진 고기로 좁혀져 있었다. 주위 신경은 쓰지 않고 정말 '열심히' 밥을 먹었다. 마치 동물들이 먹이 활동에 온 집중을 하듯이. 폭풍 식사가 끝나고, 후식 사탕을 입에 물며 고깃집을 나온 나는 편의점에 들려 입가심용(?) 과자를 하나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돈을 거의 쓰지 않고 다녔던 이번 여행에서 '숙소와 돼지갈비'는 엄청난 소비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정말 오랜만에 '소비의 쾌락'을 느낄 수 있었다. 어린아이가 생전 처음 돈이라는 것이 단순한 종이 조각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것과 교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처럼. 


한껏 돈을 쓰고 들어와 침대에 누우니 내가 방문했던 농가들이 떠올랐다. 


'농가들은 이 궂은 날씨에 무엇을 했을까...'


이상하게 몸은 편했지만, 마음은 불편했던 하루였다.


2018.06.26

강원도 삼척에서


@도시에서온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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