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외모지상주의
친환경 농사를 짓는 농가는 항상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경주에서 친환경 파프리카와 토마토 농사를 짓는 이곳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어머님, 친환경 농사 지으시면서 에피소드 같은 거 없으세요?"
"왜 없어~ 많지"
이곳은 대규모 비닐하우스에서 농사를 짓는 곳이었는데, 비닐하우스 하나의 크기가 정말 운동장만한 크기였다.
물량이 많다 보니 일정 물량은 근처 학교와 협약해서, 근처 초등학교로 납품이 된다고 하셨다.
"학교에 납품하시는 거면 판로는 걱정 없으시겠네요?"
"그런 것도 아니야. 원래는 학교에 납품하는건 취소하려고 했어"
"학교에 납품 농가로 선정되는게 정말 어려운 거 아니에요?"
"그렇긴 한데.... 너무 힘들어서"
어머님은 조심스럽게 말씀을 시작하셨다.
"요즘 안전한 먹거리를 위해 급식에 친환경 농산물을 사용하는 학교가 늘어나 있어. 그래서 친환경 농가들이 학교에 납품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지. 우리도 운이 좋게 학교 납품을 선정받아서, 총 3개의 학교에 납품을 하게 되었어. 그래서 학교에 토마토랑 파프리카를 보내는데, 3개의 학교 중 한 군데에서 계속 클레임이 나오는 거야. 왜 그런가 물어봤더니, 스크레치가 너무 많거나 부분적으로 흉터 같은 게 있다는 거야.
그래서 설명을 했지. 친환경이다 보니 겉표면이 매끄럽지 않을 수 있는데, 먹는 데는 지장 없는 거라고. 그래도 모양 이쁜 걸로 보내달라길래 다시 보냈는데 이번엔 모양이 일정하지 않아서 손이 많이 간다고 컴플레인이 들어온 거야. 그런 식으로 계속 컴플레인이 들어오니까, 농사 짓기에도 바쁜데 거기에만 신경 쓸 수도 없어서, 학교에 납품하는 걸 포기했어. 그랬더니 며칠 뒤에 학교에서 다시 전화가 오더라고. 꼭 다시 납품을 해달라고. 무슨 일인지 봤더니, 그 학교는 급식에 친환경 농산물을 사용하면 지자체에서 식자재 구입에 지원을 해주더라고. 근데 영양사가 우리 꺼(친환경)를 취소하고 일반 농산물을 받으려고 하니까 지원이 안되는거야. 그래서 미안하다면서 다시 연락이 온 거더라고."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지금은 이야기가 잘 돼서 계속 학교에 납품을 하고 있어. 그때는 정말 힘들었지. 식재료 관리를 하는 영양사들이 조금 더 농산물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단순히 모양만 보고 판단하지는 않았을 텐데... 아쉽지"
사실 나도 조리고를 다녔고, 식품영양학과를 전공했지만, 농산물에 대해서는 배운 적이 없었다. 만약 내가 저 학교의 영양사였다면, 클레임을 계속 걸었던 영양사와 다르게 행동했을까? 아마 나도 농산물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저 영양사와 마찬가지로 모양새만 보고 반품을 결정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저 영양사에게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저런 일이 발생했을까? 적어도 생김새만 보고 농산물을 판단하는 일은 없었을 것 같다. 농약과 화학 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친환경 농산물일수록 모양도 더 삐뚤빼뚤하고 못생겼다는 것을 알고 나면, 오히려 못생긴 농산물이 더 좋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농산물은 일정한 크기와 모양으로 찍어낼 수 있는 공산품이 아니기에.
2018년 5월부터 10월까지, 지역 음식과 지역 농산물을 주제로 전국 배낭여행을 했습니다. 시골 농촌에 가서 일손을 도와드리고, 집 밥을 얻어먹으며 151일간 전국을 돌아다닌 여행. 직접 체험했던 농사일, 각 지역 농부님들의 다양한 이야기 등. 여행을 하며 느낀 모든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2018.07.29-08.01
경북 경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