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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단 Jul 24. 2022

브런치를 다시 시작한 현실적인 이유냐무냐무~

언제부터인가 브런치 글 발행을 하지 않게 되었다.  브런치에서는 30일, 60일, 100일 등등 계속해서 아래처럼 메시지를 보내왔다.



150일이 넘게 글 발행을 하지 않은 시점에서, 나는 다시 브런치를 시작했다. 왜? 이유를 설명하기 전에 조금 긴, 그러나 재미있을! 아래 광고글을 먼저 소개한다. 






아이들과 캐나다 여행을 출발하면서 위의 구독서비스 광고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여행 에세이를 쓸 계획이었고, 여행지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글 쓰는데에도 게을러지지 않을 수 있는 동기부여가 필요했다. 구독자 모집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정답은 독자의 추측에 맡기겠다. 힌트는 내가 브런치 글발행을 다시 시작한 이유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니 이 무슨 어린아이같은 표현인가 싶을 것이다. 본캐는 회사원이지만 가끔 글을 쓰고 돈을 받으니 부캐는 작가라 생각하며 산다. 나의 글이 돈이 되는 순간은 여전히 짜릿하다. 금전적 획득때문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정받았다는 의미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작가가 되고 싶다. 의외의 결말을 보여주는 소설, 누구나의 감성을 건들일 수 있는 에세이, 그런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있다. 몇 번의 어설픈 공모전 투고로 실패를 맞보면서도 여전히 그런 작가가 되고 싶다. 


솔직하게 쓰라구!

정성스럽게 쓰라구!


지금 글을 쓰는 나의 노트북에 메모장으로 붙어있는 글귀이다. 솔직하고, 정성스럽게! 나의 본캐와 부캐 사이에는 얇은 가림막이 존재한다. 이면을 감추는데 유용하지만, 살랑거리는 잔바람 쉽게 걷어올릴 수 있는 얇은 가림막.  본캐와 부캐는 서로 보지 않으려하면 보이지 않지만, 보고자하면 너무나 쉽게 보인다. 


나의 본캐에 속한 사람들은 나의 부캐를 알지 못한다. 반대로 부캐에 속한 사람들은 본캐를 알지 못한다. 물론 그 두 세계 모두에 속한 사람들도 여럿 있다. 일부러 속이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하나의 세계만 보여줄 뿐이다. 나의 블로그에는 두 세계에 대한 글이 올려져있고,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그 두 곳을 오고간다는 걸 알 것이다. 아뿔사, 나의 블로그 존재를 모르는 사람도 많겠구나.


글은 글쓴이의 경험을 드러낸다. 그래서 나의 글은 어정쩡~하다. 글의 느낌이 마음에 들어서 가끔 꺼내 읽는 책이 있다. 이 책처럼 따뜻하고 섬세하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는다. 


다채롭고 풍부한 단어와 문장 표현 앞에서 나의 무미건조한 글이 부끄러워 질때면, 괜히 국어사전을 꺼내어 읽기도 한다. 그런다고 머릿속에 단어가 쌓일리 만무하다. 여러 책을 읽으면서 새로 알게 된 단어와 표현을 달달 외워도 보지만, 막상 글을 쓸때는 생각나지 않는다. 나의 삶이 녹아있지 않은 단어를 내 안에서 꺼내어 사용하기는 어렵다. 


인생 경험을 탈탈 털어내어 글을 써도 부족할 판인데, 본캐와 부캐로 나누어 꽁꽁 싸매고 있으니 밑천이 한없이 부족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설픈 희망만 앞세우게 된다. 통섭이란걸 하면 조금은 풍부해질까. 그전에 솔직해지는 게 먼저일까. 나를 전업 회사원, 전업 작가라고 추측하는 사람들에게, 혹시 오해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물어보고 설명해야할까.


아마도 그러지 않을 것이다. 본캐와 부캐 사이에는 단지 얇은 가림막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존재한다는 걸 여러 경로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기에 가림막을 직접 젖히는 건 그 사람의 몫으로 그냥 두고 싶다. 눈가리고 아웅식의 얇은 가림막 정도는 지극히 내향적인 나를 위해 남겨두어도 괜찮지 않을런지. 


이 글은 브런치를 다시 시작하는 이유에 대해 가볍게 적으려고 시작했다. 냐무냐무~라는 구독서비스 명칭도 제목에 붙여가면서. 그런데 쓰면서 내용이 진지함이 가득한 구멍 속으로 쏙 들어가버린다. 본캐니 부캐니 솔직함이니 하는 이야기를 잔뜩 해버렸다. 어쩌면 이게 나로서는 솔직한 글일 것 같다. 무미건조하고 진지한 사람이 쓰는 글. 유쾌하게 툭툭 내밷으려고 시작했지만 결국 무거워지는 글. 솔직하게 쓴다는 건 이런 내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리라. 


경쾌하고 발랄하고 통통튀는 글을 쓰고 싶던 적도 있다. 나의 삶이 그렇지 않은데 어찌 그런 글이 나오겠는가. 가끔 부캐인 작가로서 가벼운 분위기의 글을 툭툭 쳐내려가야할 때가 있다. 그럴때는 그런 감성이 가득한 책을 여러권 연달아 읽고 작업을 시작한다. 연극을 하듯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세뇌시키는 것이다. 


진지함을 받아들인 이후에는 섬세함과 편안함이 갖고 싶어졌다. 어쩌면 그건 손에 닿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 세가지의 속성이 서로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지함을 가진 나에게서 다른 두 가지도 찾아낼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에 대한 결과는 현재 진행형이다. 이렇게 하루하루 글을 쓰면서 나의 글에 담긴 분위기를 확인한다. 솔직하게 쓰라구! 정성스럽게 쓰라구! 솔직하고 정성스럽게!


그리고 지금은 이 글을 진지함의 구멍 속에서 꺼낼 볼 요량이다. 경쾌하고 발랄하게! 음,음,아,아, 브런치 글발행을 다시 시작한 또다른 이유가 궁금하냐무냐무~ 말 안해줄거댜냐무냐무~ 


앗, 망했다, 실패다. 진지함 아래층에 있던 민망함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버렸다. 더이상 꺼내려는 시도가 불가능해 보인다. 어쩔수 없다. 이 글을 ㄱㄷㅎㅈ냐무냐무와 함께 민망함 속에 그대로 두어야겠다. 포장하지 않은 민낯의 솔직한 감정을 글로 쓰는 작가가 되고 싶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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