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좋아서 컨페더레이션 랜딩에 가보고, 날이 좋지 않아서 컨페더레이션 예술센터에 가보고, 날이 적당해서 컨페더레이션 몰에 가보았다. 컨페더레이션, Confederation? 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연방' '연합'이다.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PEI)에서는 컨페더레이션이 붙은 명칭을 여러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왜 그럴까?
샬럿타운은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주(PEI)에 속한 도시이다. 나비가 날개를 펼친 듯한 모양으로 생겼는데, 캐나다에서 가장 면적이 작은 주이다. 전체 면적이 5,660㎢으로 제주도 면적의 3배 정도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출처 : 구글 지도
PEI는 뉴펀들랜드 래브라도 주, 노바스코샤 주와 함께 캐나다 최동단에 위치하고 있다. 캐나다는 유럽과 가깝다. 한국에서 사용하는 세계지도를 보면 그걸 알아채기가 어렵다. 태평양이 아니라 북대서양이 중심에 있는 지도를 보면 이곳과 유럽이 얼마나 가까운지 한 눈에 보인다.
붉은 색으로 표시된 곳이 PEI, 영국, 프랑스이다
샬럿타운에 컨페더레이션이라는 명칭이 자주 사용되는 이유는, 캐나다 건국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매우 간략하게 캐나다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네이버 지식백과의 내용을 참고하여 작성했음을 알린다.
캐나다는 985년경 바이킹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후 바이킹들은 신대륙에서 식민지를 건설하려 했지만, 현지 기후와 원주민들의 공격으로 실패한다. 바이킹 이후 북아메리카에 상륙한 첫 번째 유럽인은 이태리 출신의 항해사였는데 그는 영국 헨리7세의 승인으로 항해를 했기에 1497년 발견한 북아메리카는 영국령으로 선포되었다. 1534년 프랑스는 뉴펀들랜드와 퀘백에 도착하여 그곳이 프랑스 영토임을 주장했다.
이후 퀘백과 노바스코샤에는 프랑스인들이 정착하였고, 뉴펀들랜드와 노바스코샤 등지에는 영국인이 정착하였다. 1680년에는 프랑스인의 수가 약 11,000명이었고 영국인의 수는 그 열배에 달했다. 프랑스와 영국은 원주민과 대립하는 가운데, 서로간에도 치열하게 주도권 다툼을 했다.
1754년에 영불전쟁이 발발하였고 1763년 파리 조약 체결로 프랑스는 북미에서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게 된다. 이렇게 150년간 이어진 북미지역 내 영불 주도권 다툼은 영국의 승리로 끝난다. 영국의 식민지 시대동안 캐나다 자치를 위한 투쟁이 계속 이어진다.
자, 이제 드디어 컨페더레이션(confederation)이 역사에 등장한다!
캐나다 자치를 위한 투쟁, 미국과의 관계 등 국제 정세 등으로 영국은 캐나다의 자치권을 인정하게 된다. 1866년 런던회의를 거쳐, 1867년 3월 29일 빅토리아 여왕이 영령북미조례(British North America Act)에 서명함으로써, 같은 해 7월 1일 캐나다 자치연방(Dominion of Canada Cenfederation)이 탄생한 것이다.
캐나다에서는 7월 1일을 '캐나다의 날'로 기리며 성대한 축제를 벌인다. 영국의 식민지에서 캐나다 연방으로 독립한 날이니 얼마나 기쁜 날인가! 그리고 캐나다 연방(confederation, 컨페더레이션) 창설의 기초가 되었던 회의가 열린 곳이 바로 이곳 프린스 에드워드 섬의 샬럿타운이었다. 이것이 바로 샬럿타운에서 컨페더레이션이라는 용어를 자주 발견하게 되는 역사적 이유이다!
컨페더레이션 랜딩, 역사적 장소이다
PEI 샬럿타운의 해안가에는 '컨페더레이션 랜딩(Confederation Landing)' 이라는 역사적 장소가 있다. 그곳에서는 샬럿타운 회의와 캐나다 연방 설립 과정에 대한 정보가 적혀 있다. 샬럿회의에 참석했던 대표들에 대한 내용과 그 당시 샬럿타운의 상황까지 알 수 있는 안내문이 설치되어 있다.
안내문에 의하면 캐나다 연방 창설을 위한 회의는 총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다. 그중 첫번째 회의는 '샬럿타운 회의 (The Charlottetown Conference)'로서 1864년 샬럿타운 주의사당(Province House)에서 열렸다. 이후 두 회의는 각각 1864년 퀘백과 1866년 영국 런던에서 개최되었다.
이곳, 프린스 에드워드 섬의 샬럿타운이라는 도시는 캐나다 건국에 대한 최초의 논의가 진행된 역사적인 장소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PEI주는 샬럿타운 회의에는 참석했지만, 최초의 캐나다 연방에는 속하지 않았다가 뒤늦게 연방에 속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역사적 이야기들은 흥미롭지만 여기서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컨페더레이션 랜딩에 설치되어 있는 안내문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관광도시이면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한 이곳, 샬럿타운의 거리를 걷다보면 아래쪽에 빨간 물결같은 줄이 들어가 있고, 그 위에 샬럿타운이라고 적힌 검은 동그라미 표시가 그려진 안내판을 자주 만나게 된다. 샬럿타운의 과거 역사와 문화에 대해 설명해주는 자료이다. 과거의 역사를 간직한 건물들과 함께 샬럿타운의 역사적 가치를 느끼게 해준다.
자, 이제부터는 컨페더레이션(confederation)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장소들에 대해서 설명하겠다. 위에서 설명한 해안가의 '컨페더레이션 랜딩'이 있다. 그리고 컨페더레이션 단어는 사용되지 않았지만, 샬럿타운 회의가 개최된 '주의사당(Province House)' 은 다운타운 중심지에 위치한다. 주의사당 2층 연방 회의실( (confederation chamber)은 회의가 열렸던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2022년 8월 현재 건물 전체가 공사중이어서 들어가 볼 수 없다. 공사중인 건물 앞에는 군인 세명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념 동상이 있었다. 한국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한 용사들을 기리는 건축물이었다. 캐나다와 한국의 역사가 겹쳐진 사건이 그러했다.
샬럿타운 회의가 개최된, 주의사당(province house) 앞쪽의 전시물
주의사당 바로 옆에는 '컨페더레이션 아트센터(confederation centre of arts)' 건물이 위치한다. 아트센터는 1864년에 개최된 '샬럿타운 회의'를 기념하기 위해 1964년에 건축되었는데, 당시 10개주 정부에서 각 주 인구당 30센트씩 부담하여, 한화로 총52억이라는 건축비용을 마련했다. 이곳에서는 빨강머리앤 뮤지컬 등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어린이들을 위한 다양한 예술 프로그램도 진행되고 있는 곳이다.
컨페더레이션 아트센터 맞은 편에는 '컨페더레이션 코트 몰(confederation court mall)' 건물이 있다. 샬럿타운을 방문하면 꼭 먹어보게 되는 cows 아이스크림을 파는 상점이 이곳에 있다. 샬럿타운의 서점 중에 가장 북큐레이션이 만족스러웠던 북마크(book mark) 서점도 이곳에 위치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고급스런 식료품점, 주방용품점, 기념품점, 옷가게, 푸드코트, 커피숍 등이 1층과 2층에 위치하고 있다.
샬럿타운에 위치하지는 않지만 컨페더레이션 단어가 들어간 유명한 명칭을 하나 더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컨페더레이션 브리지(confederation bridge)'이다. PEI의 보든-칼턴(Borden-Carleton)과 뉴브런즈윅 주의 케이프주리맹(Cape Jourimain)을 연결하는 12.9km에 이르는 캐나다에서 가장 긴 다리의 이름이다. 운전자의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PEI와 캐나다 본토 사이에는 노섬벌랜드(Northumberland) 해협이 있다. 섬과 본토를 오고가기 위해서는 선박을 이용해 해협을 건너야 했다. 하지만 1997년 컨페더레이션 브리지가 완공되면서 이제는 차로 오고갈 수 있는 섬이 되었다.
며칠 뒤에는 렌트카를 이용해 이곳 샬럿타운에서 캐번디쉬로 이동할 계획이다. 캐번디쉬에서 컨페더레이션 다리가 시작되는 보든-칼턴이 가까운데, 그곳에는 빨강머리앤 작가인 루시 모드 몽고메리와 관련한 장소도 있다고 한다. 몽고메리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동안, 바다 위로 뻗어있는 다리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곧 이 다리의 이름에서 '컨페더레이션'이라는 단어가 삭제될 것 같다. 최근 내셔널포스트(national post) 4월 29일자에 보도된 기사 내용이다.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주의회 의원들은 만장일치로, 캐나다 연방 정부에 컨페더레이션 브리지의 이름을 'Epekwitk crossing'로 변경할 것을 요청하기로 했다. 'Epekwitk'는 원주민 Mi'kmaq(미크마크) 부족의 언어로 '물 위에 누워 있는 것'이라는 의미인데, 섬을 지칭하는 단어라고 한다.
캐나다는 건국 과정에서 원주민을 박해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과거 역사를 반성하고 원주민의 토착어를 보존하기 위해 다리의 이름을 변경하겠다는 것이다. 원주민인 미크마크 부족에 대한 언급은 컨페더레이션 아트센터에 대한 홈페이지의 소개글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센터 건물이 위치한 토지에 대해서 미크막 부족이 전통적으로 소유했으나 분양되지 않은 땅이라고 설명하면서, 원주민인 미크막 부족에 대해 존중을 표현하고 있었다.
캐나다는 원주민, 유럽 사람들, 그리고 현재는 동양의 사람들까지 다양한 인종이 모여서 만들어진 국가이다. 1864년 샬럿타운 회의에서 시작된 '캐나다 연방(confederation)'이라는 명칭을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다. 그냥 '캐나다'일 뿐이다. 하지만 여전히 '컨페더레이션'이라는 용어가 이곳과 무척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