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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단 Aug 31. 2022

고흐의 밥벌이와 나와 당신의 밥벌이?



Van Gogh PEI. 샬럿타운의 다운타운을 걷다가 고흐 그림이 그려진 깃발을 보게 되었다. 8월 5일부터 9월 5일까지 PEI 컨벤션 센터에서 전시회를 한다는 광고였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고흐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는 전시회를 기대하며 정보를 검색했다. 고흐의 실물 그림을 그대로 전시하는 방식이 아니라, 미디어 아트로 표현하는 전시였기에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컨벤션 센터는 숙소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었기에 편하게 이동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우리가 샬럿타운을 떠나야 하는 바로 직전에 시작되는 전시라서 마치 행운인 것처럼 느껴졌다. 서둘러 3명의 입장권을 예매했다. 


우리는 8월 7일에 샬럿타운 공항에서 렌트카를 타고 캐번디쉬로 이동할 예정이다. 전날인 6일 토요일 오전 10시 40분에 반 고흐 PEI 전시회를 예매했다. 약 한 시간정도 소요된다는 전시회는 예매한 시간에 맞춰 도착해야 했다. 각 시각마다 정해진 인원만 입장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입구를 찾기가 어려워서 건물 주변을 빙빙 돌다가 겨우 입구를 찾아 들어갔다. 제대로 안내가 되어 있지 않은 입구를 찾느라 힘이 들어서 전시회에 대한 흥미가 조금 떨어졌다. 적지않은 입장료를 내고 예매를 했으니 일단 들어가보기로 했다. 


아주 커다란 스크린에 반 고흐의 작품과 함께 그의 생애와 작품 활동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그렇게 몇 개의 스크린을 지나 좁고 어둑한 통로가 나타났다. 아이들과 조금 걸으니 안내 직원이 서 있었다. 그는 안쪽을 가리키며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환한 빛이 나오는 문으로 들어가니, 나와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질 수 밖에 없는 광경이 나타났다. 방이라고 하기엔 너무 큰 공간이 있었고, 천장을 제외한 네 벽면과 바닥에 온통 그림이 입혀져 있었다. 사람들이 가운데 앉아서 네 벽 면 중 하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360도 그림에 둘러싸여 체험하는 전시회라는 설명다웠다. 벽면과 바닥면에는 고흐의 작품이 계속 이어졌다. 직접 그림을 그리듯이 서서히 완성작품이 되어가는 장면, 작품 속 인물이 조금씩 움직이는 장면, 바닥까지 온통 해바라기로 뒤덮히는 장면 등 마치 그림 속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환상적인 장면이 연이었다. 두 눈뿐만 아니라 팔과 다리, 배와 등, 몸의 모든 부분에서 시각이 느껴지는 듯 고흐의 그림이 온몸을 감쌌다.  





벽 면을 가득 채운 고흐의 작품을 보며, 문득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고흐는 어떻게 밥벌이를 했을까. 널리 알려진 것처럼 고흐는 생전에 단 하나의 그림을 판매했고, 동생 테오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아 생활했다. 르네상스 시대 많은 예술가들이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아 성장했다. 이처럼 예술가에게는 자신을 인정해주는 후원자의 존재가 무척 중요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나를 만든 것도 메디치 가문이고, 나를 파멸시킨 것도 메디치 가문이다"라고 한 말이 유명하지 않은가. 


반 고흐 PEI 전시회를 보던 날 오후, 나와 아이들은 고대하던 히포버스에 탑승했다. 예매와 취소를 거듭하다가 샬럿타운을 떠나기 전날에 극적으로 탑승할 수 있게 되었다. 히포버스는 육지와 바다를 동시에 오고가는 이동수단이다. 샬럿타운 시내 주요 장소를 둘러보고 항구에서 바다 속으로 들어가 해안가를 둘러보는 관광 코스이다. 운전하는 직원 이외에 마이크를 잡고 탑승객을 향해 설명하는 직원이 한 명 더 있었다. 샬럿타운의 역사를 곁들여 도로 옆으로, 해안가 옆으로 보이는 건물들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길쭉한 무언가를 입에 물고 주인과 함께 산책하는 대형견이 히포버스 옆을 지나갈 때는, 그 장면을 재미있게 설명해주어 웃음을 주기도 했다. 문득 그녀가 지금 돈벌이 중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를 포함한 탑승객들은 대부분 휴가를 즐기는 관광객이겠지만 지금 그녀는 직장에서 일을 하는 중이겠지.


히포버스에 탑승하고 하차하던 장소 바로 앞에는 관광객 안내소와 푸드 몰이 있는 건물이 서 있다. 마침 이곳 몰에서 주최하는 버스킹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유연한 몸 동작을 보여주며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예술가가 있었다. 마치 뼈가 없는 듯한 유연함에 아이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한참을 구경했다. 엄마 너무 신기해를 연신 말하며, 박수를 치며 그렇게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지금 이곳에도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 있구나.  오전에 반 고흐 PEI 전시회를 관람하며 '밥벌이'에 대한 생각의 씨앗을 틔웠기 때문일까, 하루 종일 어디를 가도 그곳에서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이라는 책은 저자가 다른 사람이 살지 않는 호숫가에 직접 집을 짓고 일 년여동안 생활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이 책을 읽고 대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가진다. 또 다른 사람은 자급자족하며 미니멀라이프에 만족하는 삶을 떠올린다. 나는 월든을 통해 얼마나 일하고 얼마나 쉬고 즐길 것인가, 얼마나 벌고 얼마나 쓸 것인가하는 주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하루 24시간 동안 얼마나 일하고 얼마나 쉴 것인가. 몇 시간을 일해야 나와 가족들의 생계가 가능할 것인가. 사람들은 일하는 시간 당 받는 임금, 소위 '몸값'을 올리기 위해 노력한다. 그 이전에 당신은 지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질문과 해답도 여러가지이다. 아무튼 직업의 세계는 복잡 미묘하다. 생계와 행복을 위해 무시할 수 없는 영역이라서 더욱 강력한 위력을 행사하는 세계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는 매일 원고지 20장의 글을 쓴다고 한다. 기욤 뮈소 작가도 매일 일정 시간(8시간이었던가?)을 글쓰기에 할애한다고 했다. 글의 수준을 논하기 전에 이렇게 매일 꾸준히 많은 시간동안 글을 쓸 수 있을까? 내게 시간이 주어진다면(이것도 핑계지만!) 할 수 있을 거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하지만 어제부터 모른 척 하고 있는 원고가 나를 노려보는 것 같다. 수정 작업을 거쳐 의뢰인에게 보내주어야 하는데 잠시 미루는 중이다. 유명 작가가 아닌 이상 쓰고 싶은 글만으로 밥벌이를 하기는 쉽지 않다. 의뢰인이 원하는 원고를 써야 하는데 때로는 나의 흥미와 다른 방향에 있다. 아직 책 한 권도 출간하지 않은 나에게 작가라 불러주며 일거리를 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작업을 해야하겠지만.


어느날 갑자기 일거리를 뚝 끊어버린 의뢰인이 생각난다. 몇 달 동안 작업을 함께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순간에 돌아설 수 있는 게 프리랜서의 생태계이다. 서로 뜻이 맞으면 같이 일을 하고 그게 아니면 갈라서는 대원칙 속에서 소위 쿨한 관계를 유지한다. 나에게 작가는 부캐이다. 한 쪽 발만 담그고 있어서 제대로 된 밥벌이가 되지 못하는 것인지, 제대로 된 밥벌이가 못되서 한 쪽 발만 담그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쿨한 관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집중을 해야하는데, 집중을 해도 살아남지 못할 것 같아서 집중을 안하는 건지, 집중을 하고 있는 중인데도 뚜렷한 성과가 없는 건지, 이 또한 헷갈린다. 글쓰기만으로는 밥벌이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만 선명하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행운은 소수의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 같다. 싫든 좋든 당장에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해야하는 게 많은 사람들의 운명 아닐까. 그 안에서 소소한 행복과 재미를 발견하고 기뻐하며 정신 승리를 해야하는 게 나의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나와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줄, 아니 책임까지는 아니고 도움이 될 곳에 담그고 있는 나머지 한 발을 빼낼 용기는 없다. 그러니 앞으로도 글쓰기 생태계에서 한 발로 엉거주춤 살아나가야 할 것이다. 다리에 근력이 붙고 운이 좋으면 황금 땅이라도 밟게 되려나. 그러면 은근슬쩍 다른 한 발을 빼내어 황금 땅에서 두 다리로 활개를 치고 걸을 수 있으려나. 


고흐는 예술가로서 자신에게 헌신하는 삶을 살았지만 경제적으로는 어려운 생활을 했다. 고흐와 동생 테오가 나눈 편지에서 고흐는 어떻게 하면 유용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자괴한다. 밥벌이는 돈을 버는 수단으로서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다는 면에서도 중요하다. 고흐와 나와 당신,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밥벌이. 좋아하는 일을 밥벌이로 하고 있다면 축하할 일이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응원하고 싶다. 나와 당신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밥벌이는 늘상 그런 법이니까. 그 안에도 생계와 행복이 담겨 있을 테니까. 밥벌이를,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자체로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는 시대니까. 나와 당신의 밥벌이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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