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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단 Aug 18. 2022

떠나보내는 것들에 대한 애틋함, 오히려 다행이다

캐나다 여행 내내 가지고 다니던 주황색 쇼핑백이 하나 있었다. 손잡이와 테두리 바이어스 색상이 녹색이었는데, 주황색과 녹색의 조화는 기분이 좋아지게 했다. 크기도 넉넉해서 샬럿타운에서 랍스터 2마리와 커다란 소고기 립을 사가지고 숙소로 올 때 요긴하게 사용했다. 캐번디쉬에서는 해변가로 놀러갈 때 커다란 타올을 서너장 챙겨 넣을 수 있어서 유용했다. PEI에서의 마지막 날에는 자질구레한 물건을 몽땅 담아서 토론토 공항으로 이동했다. 이토록 쓸모 있는 물건이라니! 


오늘 아침 토론토 공항 근처 숙소를 나서면서 그 쇼핑백을 숙소에 두고 나왔다. 한국으로 가는 최종 비행기를 타야할 시간이기에, 더이상의 쓸모를 기대할 수 없었다. 그동안 고마웠어, 쇼핑백아! 너를 한국으로 데리고 가지 못해서 미안해! 


오래동안 사용했던 물건들에는 마음이 담겨지는 것 같다. 떠나보낼 때는 왠지 섭섭하고 그리워질 것 같은 기분까지 든다. 이런 마음을 느낀 건 비단 오늘 아침뿐만이 아니다. 벌써 세 번째. 캐번디쉬 숙소를 나서면서 한국에서 가져갔던 해피홈 모기퇴치기 두 개를 놓고 나왔다. 아직 절반 정도 약이 남은터라 다음 숙박객이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쪽 벽 면에 가지런히 세워두고 숙소를 나섰다. 캐나다 여행 한 달동안 동거동락한 물건을 놓고 나오는 기분이 애틋했다. 





오전 10시에 캐번디쉬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저녁때까지 온종일 해변에서 해수욕을 했다. 캐번디쉬 슈퍼에서 구매한 돗자리, 튜브, 서핑보드는 일주일동안 주황색 쇼핑백과 함께 거의 매일 사용했던 물건들이다. 아주 얇은 대나무 살을 이어서 만든 작은 사이즈의 돗자리, 녹색의 튜브, 거북이가 그려진 서핑보드. 우리와 함께 대서양 바다를 경험했던 물건들이다. 


이날 마지막으로 바다에서 놀고 난 뒤, 우리는 이 물건들을 버려야 했다. 튜브는 구멍이 나서 더이상 사용할 수가 없었기에 쓰레기통 안으로 넣었다. 돗자리와 서핑보드는 혹시 다른 사람이 사용할까 싶어서 쓰레기통 옆 깨끗한 공간에 한쪽으로 세워두었다. 


"엄마, 내 거북이 한국에 가지고 가면 안될까?"

정이 든 물건을 떠나보내는 애틋함은 아이들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아이는 서핑보드를 한국에 가져가고 싶다고 했지만, 짐을 하나라도 줄여야하는 상황이었다. 


"엄마, 이렇게 놓으면 사람들이 쓰레기인줄 알 것 같아." 

아마 지금쯤 쓰레기장으로 갔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혹시라도 다른 누군가가 사용하고 있지는 않을까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아, 코로나 시국에 그럴 확률은 너무나 낮을 것 같다. 차라리 쓰레기통 안에 넣어주고 올 걸 그랬나하는 생각도 든다. 고마웠어, 돗자리야! 서핑보드야! 튜브야!


정이 든 물건들을 떠나보내는 애틋함에 빠지다가, 문득 떠나는 건 나인데 하고 정신이 들었다. 그랬다, 캐나다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캐나다를 떠나는 것은 바로 나와 아이들이었다. 내 곁에서 물건들을 내어놓는다는 데만 집중하느라, 물건들의 고향이 캐나다인 것을 잊었다. 물론 어쩌면 최초의 고향은 중국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물건들에게 마음이 있다면, 나와 아이들을 떠나보내는 애틋함을 느꼈을까. 


물건에는 그것을 얻게 된 역사, 사용하며 생긴 정과 사건이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캐나다에서도 한국에서도 나는 좀처럼 쉽게 물건을 버리지 못한다. 아이들과 내가 읽던 책들은 필요한 지인에게 주기도 하고, 중고로 판매하기도 하며, 도서관에 기증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어릴 수록 필요한 물건의 회전주기가 짧다. 아장아장 어릴 적 사용하던 물건과 옷 역시 책처럼 다른 이들이 사용할 수 있게 마무리한다. 물건의 회전주기가 길어지면서 다른 사람에게 주기 민망한 상태가 되기도 하는데 어쩔 수 없이 그냥 버려야 한다. 재활용으로 구분이 되면 그래도 마음이 덜 안쓰럽지만,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야 하는 물건들은 언제나 애처롭다. 어떤 바쁜 날에는 타인에게 물건을 건넬 여유조차 없어서 멀쩡한 물건을 그냥 버리기도 한다. 좀더 살 수 있는 생명의 불씨를 꺼트린 것같은 기분이 든다. 물건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주기적으로 물건을 꺼내 집밖으로 처분하지 않으면 집안의 쾌적함을 장담할 수 없다. 언젠가부터는 집안으로 쉽게 새 물건을 들이지 않는다. 이미 저마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집안에서 새로운 물건의 등장은 기존의 무엇인가를 버려야 한다는 신호였다. 조금 투박하고 옛스러워도 나의 시간과 감정이 담겨있는 물건들이 좋다. 


물건과 사람사이의 친밀도는 사용빈도에 의해 결정되는 것 같다. 배경처럼 전시된 물건보다 자주 손으로 만지며 사용하는 물건에 대한 애틋함이 크다. 샬럿타운과 캐번디시에서 빈번히 사용했던, 하지만 한국으로 가지고 올 수 없었던 물건들을 내려놓고 발걸음을 옮길 때 마음 한 조각을 남겨두고 오는 기분이었다. 추억이 댕강 잘라내지는 듯한 기분, 슬픔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으나 그것과 비슷한 기분이었다. 멀쩡한 물건들이었으니 다음에 사용할 사람이라도 찾아주었다면 아쉬움을 덜어낼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캐나다 여행의 마지막 며칠동안 물건에 대한 애틋함으로 마음이 조금 무거웠다.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여 토론토 공항 안으로 들어왔다. 이제 곧 한국으로 향하는 에어캐나다에 몸을 실게 된다. 탑승구 옆으로 테이블과 의자가 즐비하다. 그 중에서 창가쪽으로 자리를 앉았다. 공항 건물의 벽은 수많은 네모 창문으로 연결되어 있다. 투명하고 하얀 창문 밖으로 비행기가 이륙하는 모습도 보이고, 자동차처럼 이동하는 모습도 보인다. 기차처럼 줄줄이 수화물을 싣고 지나가는 차량도 볼 수 있다. 빛이 반사되는 연두색 조끼를 입고 일하는 사람들이 참 많구나. 그때 참새 한 마리가 창틀에 앉아서 창밖으로 나가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어? 참새? 


"얘들아, 저기 참새가 있어!"

나도 아이들도 놀라며 창틀에 앉아 있는 참새를 보았다. 둘째 아이가 저쪽에 한 마리가 더 있다고 한다. 참새 두 마리가 어떻게 이 공항 안으로 들어왔을까? 거대한 실내 공간인 공항 안으로 어떻게 들어왔는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참새 두 마리가 각자 창밖으로 나가려고 길을 찾고 있었다. 유리라는 물질을 알리 없는 참새에게, 투명하지만 통과할 수 없는 창문은 얼마나 기괴할 것인가. 참새 한 마리가 바닥으로 푸드득 날아 앉았다. 마치 바닥으로 떨어지듯이 앉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다시 날아오른 참새는 창문틀에 앉아서 계속 창문밖으로 나갈 길을 모색한다. 이쪽 저쪽 창틀로 옮겨가며 푸드덕거려보지만 찾을 수 있을리 없다. 지금 두려운 마음이지 않을까. 눈으로 참새를 좇으며 마음 속으로 응원을 보낸다. 


"엄마, 참새가 무섭겠다. 황당하겠어."

"우리도 길 잃으면 찾기 힘든데, 참새는 어떻게 찾아. 물어볼 수도 없고. 폰 빌려서 엄마한테 전화하거나 할 수도 없고, 실제로 폰도 없잖아. 이 넓은 공항에서."

두 아이도 곤경에 처한 참새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나가고 싶어도 나가지 못하는 참새를 바라보며, 미안하게도 자유로운 나의 상황이 새삼 축복처럼 느껴졌다.  오고 싶을 때 오고,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는 다행스러움. 남길 것은 남기고 떠날 수 있는 다행스러움. 정이 들었던 물건을 놓고 떠나는 애틋한 감정이 순식간에 다행스러움과 안도감으로 바뀌고 있다. 무사히 캐나다에 도착하고, 무사히 캐나다를 떠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그리운 길버트, 사물을 걱정하는 것은 그만두자. 꽁꽁 묶이는 것은 질색이야. 대담하게 모험을 구하고 기대에 차서 살아가기로 해. 이를 테면 인생이 산더미만한 괴로움이며 장티푸스며 쌍둥이를 안겨줄지라도 인생이 우리에게 주는 모든 것을 즐거이 맞이해 가야겠지?" 소설 속 앤이 길버트에게 쓴 편지의 한 부분이 떠오른다. 애틋함도 걱정도 과하면 되려 병이 된다. 지금은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하는 시간이다. 여행의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순간이다. 사물에 대한 걱정보다는 한국에서 가족과 지인을 만나고 일상을 다시 시작할 즐거움을 기대하는 편이 좋겠다. 


장티푸스로 죽을 고비를 넘긴 길버트, 그린 게이블즈에 오기 전에 쌍둥이 보모 노릇을 하느라 힘들었던 앤, 그리고 공항 안에 갇혀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참새. 소설 속 앤의 말처럼 우리는 누구나 산더미만한 괴로움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담하게 모험을 구하고 기대에 차서 나아간다면, 한국에서의 일상은 언제나 평온하고 달콤하리라. 참새야, 너희들도 꼭 공항밖으로 무사히 탈출하렴! 탈출구를 찾아서 나의 시야밖으로 사라지는 참새 두 마리를 바라본다. 미로처럼 느껴지는 공항에서 출구를 향해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기를, 다시 한번 힘차고 따뜻한 응원의 기운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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