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 공항에서 인천 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는 두 가지 시간이 공존한다. 출발지인 토론토 현지 시각과 도착지인 한국의 현지 시각이다. 한국은 캐나다 토론토보다 13시간이 빠르며, 두 곳 사이의 운항 시간은 15시간 정도이다. 토론토 공항에서 오후 3시경 출발하여 비행기 안에서 밤을 보내고 한국에 도착하면 저녁 7시가 조금 넘는 시간이다. 곧 다시 밤이 찾아올 시간이다. 낮에 이어 밤이, 밤에 이어 다시 밤이 이어진다.
시차 적응을 어떻게 할 것인가, 비행기 안에서부터 잠 시간을 조절해 보려 한다. 아예 잠을 자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 무리한 일이다. 그러면 잠 시간을 앞당기는 방법은 어떨까. 아이들과 함께 출발지 현지 시각으로 저녁 8시 경에 잠자기를 시도했다. 다행히 아이들도 여행의 피로때문인지 잠을 자고 싶어 했다.
"엄마, 비행기 지도 봐도 돼요?"
둘째 아이가 잠에 들지 못하고 물어 보았다. 나는 아이를 팔베개로 감싸서 토닥토닥해주었다. 그래도 잠에 들지 못했다. 첫째 아이도 피곤한데 잠이 오지 않는단다. 일찍 잠들기 시도는 십분 여 만에 끝이 났다.
아이들의 생체 시간은 정확했다. 출발지 현지 시각으로 밤10시가 가까워지니 어느새 잠을 자고 있다. 조금 전 화장실에 가기 위해 통로를 걷는데 대부분의 모니터가 켜져 있었다. 탑승한 사람들 대부분이 깨어서 핸드폰이나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새벽 3시 52분을 지나가고 있는 지금까지도 두 아이들은 잘 자고 있다. 캐나다에서와 같은 시간 동안 잠을 자는 아이들이 신기하면서도, 지금쯤 깨어나 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대략 한 시간 후쯤이면 비행기 안에 불이 켜질 것이다. 마지막 식사가 제공될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해열진통제도 먹여야 해서 그 시간에는 깨워야 한다. 해열진통제는 착륙할 때 귀통증을 방지하기 위해서 먹이는 것이다. 샬럿타운에서 토론토로 올 때 꽤 효과가 좋았다.
여름방학 기간을 활용해 아이들과 함께 떠난 캐나다 PEI 여행, 두 아이는 무엇을 보고 듣고 느꼈을까. 잠든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이번 여행이 각자에게 어떤 의미가 되었을지 궁금해 진다. 토론토 공항에서 탑승을 기다리는 동안 학교에 제출할 체험학습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 양식에는 경험한 일과 느낀 점을 적도록 되어 있다. 경험한 일을 적다가 탑승 준비를 하기 위해 글쓰기를 중단했다. 한국의 집에 돌아가서 나머지 부분을 작성하게 될 것이다. 무엇을 느꼈다고 쓸 지 곧 볼 수 있겠지.
캐번디쉬에서 L.M.몽고메리(큰 아이는 몽고메리의 이름을 루시 모드 몽고메리가 아니라 이렇게 써야 편하다고 했다), 작가가 일했던 우체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바로 옆에는 남편을 만났던 캐번디쉬 교회가 있다. 우체국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는데 그곳에서 우편을 보내면 그린 게이블즈, 빨강머리앤의 상징인 모자와 양 갈래 땋은 머리 그림이 그려진, Anne of Green Gables 문구가 쓰여진 소인이 찍힌다. 마치 앤에게서 우편을 받는 기분이 들 것 같다.
캐번디쉬 우체국에서 우편을 발송하면, 그린게이블즈 소인이 찍힌다
캐번디쉬 우체국에서 나와 큰 아이는 스스로에게 엽서를 한 장씩 적어 보냈다. 몇 주 후에 한국으로 앤의 엽서가 도착할 것이다. 아이는 붉은 단풍잎 그림과 함께 짧은 문장 몇 줄을 적었다. 문장을 이 글에서 밝힐 수는 없지만, 여행의 소회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아니었다. 앞뒤 맥락이 숨겨진 몇 줄의 문장, 하지만 그 속에 아이의 우주에 스며든 새로운 세계가 깃들어 있으리라. 캐번디쉬, 그린 게이블즈, 샬롯타운, PEI, 캐나다라는 새로운 세계.
지금 이곳, 비행기 안에는 두 가지 시간이 존재한다. 아이의 우주에는 얼마나 많은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가고 있을까. 한 달여 동안의 캐나다 여행이 아이의 우주 한 켠 쌓여, 필요한 순간에 영감을 주는 원동력이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