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엄청 활발한 분이신 줄 알았어요. 정말 몰랐어요!"
저는 원래 무척 내향적인 사람이에요, 라는 말이 부끄러워질 만큼의 반응이었다. 성공인건가? 30년째 외향적인 척하며 살고 있는 나에게 이러한 반응은 분명 칭찬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마음 속은 뭔가 후련하지 않았다. 뭐지? 이 기분은? 지금부터 외향인인척 하며 살아온, 그런 내향인의 속내를 탐구해보려고 한다.
의도적 외향성을 결심한 건 중학교 1학년때부터이다. 딱히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활발해져야겠다고 결심했던 기억은 분명히 떠오르지만, 그 이유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굳이 찾자면 남들 눈을 과하게 의식하는 사춘기 시절이 이유랄까. 지금도 그때도 내향인보다는 외향인이 주목받는 세상이니까. 마침 우리반에서 가장 활발하고 인기가 많았던 반장과 친했기에 그 친구를 모델로 삼을 수 있었다.
초등학생때 나는 반에서 가장 얌전한 아이로 뽑힌 적이 있다. 어떤 날은 화장실 가는 일을 제외하고 줄곧 책상에 앉아 있다가 하교를 하기도 했다. 그런 날에는 성격 좋은 친구들이 내 자리에 와서 놀다 가곤 했다. 같은 반 친구들 몇 명이 무리지어 있으면 근처에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는 소심한 내향인, 그런 사람이었다. 나의 속내는 그러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초등학교 6년 동안 원만한 교우관계를 유지하는 얌전한 학생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의도적으로 외향성을 갖고자 노력했지만 사람의 성격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정물화를 그리는 미술 시간, 선생님은 스케치북을 한데 모아두고 A, B, C 등급으로 분류했다. 나의 그림은 가장 낮은 C등급으로 분류되었다. 이유는 '너무 작게 그려서'였다. 소심한 사람은 대상을 작게 그린다는 걸 중학생인 나는 몰랐었다. 나의 성격이 그대로 그림에 반영된다는 걸 말이다. 다만 크기때문에 낮은 등급을 받은 일이 속상했고 이후로 나는 내가 느끼는 것보다 '크게' 그리려고 노력했다. 훨씬 크게 그렸다고 생각했어도 다른 친구들의 것과 비슷한 크기였지만 말이다.
또 한번의 고난은 무용 시간이었다. 시험 시간에 모두가 보는 앞에서 춤을 추어야 했고 소심한 내향인에게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고 순서를 잊어버리고 뒤죽박죽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생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하필 음악 시험을 보는 날 아파서 결석을 했다. 한 명씩 노래를 부르는 시험이었는데, 다른 친구들은 이미 시험을 끝낸 상황이었기에 그날은 나 혼자 시험을 치러야 했다. 목소리는 개미만하다가 점점 더 줄어들었다. 악기 연주 시험은 괜찮은데, 나의 목소리를 내야하는 노래 시험은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담임은 나의 노래를 이렇게 평가했다. "너처럼 공부 잘하는데 노래 못하는 애는 첨본다." 이후로 나는 몇 년동안 학교 음악 시간에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때 어떤 계기가 있어서 다시 목소리를 내기 전까지는 입만 뻥긋거렸다, 정말로.
지금 생각하면 내가 소심한 내향인이라서 겪은 이 모든 일들이 의도적 외향성을 추구하게 된 계기가 된 듯하다. 중학교 3년 동안 열심히 외향성을 연습한 결과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제법 '평범한' 성격이 되었다. 얌전하지도 활발하지도 않은 중간 정도의 성격. 대학생이 되어서는 의도적 외향성을 선택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필요한 순간에 활발해 보이도록 속내는 애쓰고 있지만 겉으로는 자연스러워 보였다. 대학신문사 편집장으로서 연합 모임에 가서 복식 인사를 하고 투쟁가를 불렀다. 길에서 낯선 사람을 붙들고 인터뷰를 했다. 지극히 소심한 내향인인 나의 본성과는 정반대되는 행동이었고, 속내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할 수 있었다. 물론 찐 외향인인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얌전해 보였겠지만, 나를 소심한 내향인으로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의 생활 신조는 초등학생때부터 꽤 오랫동안 '있는 듯 없는 듯' 이었다. 튀지 않고 모나지 않으며 사람들 무리 속에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소심한 내향인은 그자체로 튄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너무 얌전해서, 너무 말이없어서, 너무 수줍어서 튀는 것이다. 무척 재미있어하는 중인데 재미없니, 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전혀 지루하지 않은데 지루하죠, 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부끄러울 일이 아닌데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상대방이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을 때, 나의 생활 신조는 점점 엷어졌다.
사십대가 된 지금의 나는 이제 더이상 '있는 듯 없는 듯'을 생활 신조로 삼지 않는다. 어떤 모임이든 나에게 기대되는 역할이 있고, 의도적 외향성을 발휘하여 역할극에 몰두한다. 그 시간은 되도록이면 짧은 게 좋다. 그래서 나는 집에서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집에서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멍하게 있을 때, 에너지가 차오르는 단단한 기분이 느껴진다.
30년째 의도적 외향성을 시도해서인지, 사실 요즘은 그것 또한 나의 본성인 듯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회사에서 너스레를 떨며 동생들을 챙기고, 가끔 마주치는 학부모 앞에서 수다쟁이가 되기도 한다. 심호흡을 하고 외향성의 옷으로 갈아입을 필요도 없이 매우 자연스럽게 이러는 내가 가끔은 생소하기도 하다. 익숙한 친구 무리에도 쉽게 다가가지 못했던 내가 지금은 낯선 학부모 무리에 쉽게 말을 건네고 수다를 한다. 30년 동안 많이 애썼구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오랜 노력과 사십대라는 나이가 합쳐지니 이제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일도 별로 어렵지 않다. 다만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라면 여전히 싫다. 어머, 당신이 내향적인 사람이었다구요? 하는 반응도 익숙해지고 있다. 남들이 보기에 나는 내향적이지 않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분명 칭찬할 만한 일인데도 마음 속이 뭔가 후련하지 않은 이유는, 이렇게 본성까지 바꾸며 살아야하는 건가하는 회의가 들어서이다. 의도적 외향성에 대한 노력 안에는 나의 필요도 있었겠지만 타인의 시선이 큰 비중을 차지했을 것이다. 내향성보다는 외향성이 선호되는 사회에서, 남들 눈에 '평범'해 보이고 싶었던 욕구가 나를 계속 충동질했을 것이다. 얌전히 가만히 앉아서 튀고 싶지 않아, 라는 생각이 활발한 척 해서라도 튀고 싶지 않아, 로 바뀌었을 것이다. 나의 본성은 남들 눈에 띄고 싶어하지 않는 소심한 내향인이었으니.
좀 튀고 뜨이면 어때, 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그건 나 혼자만의 착각일뿐 내가 내향적이든 외향적이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 진실일테다. 나의 본성을 뒤엎어 가면서까지 30년 동안 의도적으로 외향인처럼 행동할 필요가 있었을까. 내향성을 외향성으로 바꿀 때 긴장되던 마음이 점점 옅어지고 어느때는 매우 손쉽게 탈바꿈하는 모습을 갖추기까지 나의 본성은 얼마나 고되었을까. 그렇게 해서도 끝내 바뀔 수 없는 본성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이제라도 나의 본성을 보듬어 주어야겠다. 그동안 맞지 않는 옷을 입느라 고생했다고, 30년을 입어서 몸에 맞추어진 낡고 얇은 외향성 옷은 굳이 벗어던지지 말자고, 하지만 편안한 내향성 옷을 좀더 자주 입게 해주겠노라고 다독여야겠다. 그리고 앞으로 이렇게 대답해도 된다고 말해 주어야겠다.
"재미없니?"
"아니, 재미있어. 난 이게 재밌다는 표정이야."
"지루하세요?"
"아니요, 전혀요. 저는 이게 흥미롭다는 표정이에요."
"......"
"당황하셨어요? 하핫 제가 홍조증이 있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