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단 Sep 03. 2022

우리의 안온이 우리의 일상을 가능하도록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하고 가만히 눈을 감았지."


아이들과 캐나다 여행 이후 처음으로 친정집을 찾았다. 둘째 아이는 외가댁에 오면 세 살 위 형을 졸졸 따라다닌다. 조카 녀석도 둘째 아이를 이뻐하며 챙겨준다. 같은 나이의 친동생과는 티격태격하면서도 친척 동생은 살뜰히 챙기는 조카 녀석을 보며, 여동생과 함께 여러 번 웃었다. 가끔 보니 더욱 살가워지는가 보다. 


밤에 잠을 잘 때도 마찬가지다. 둘째 아이는 형 옆에 꼭 붙어서 잠을 잔다. 형은 할아버지 옆에 꼭 붙어서 잠을 잔다. 그렇게 세 남자가 나란히 누워 잠을 잔다. 다른 방에서는 엄마와 나, 딸 아이가 나란히 누워 잠을 청한다. 어쩌다 보니 남자 셋, 여자 셋 모양새다. 


남자 셋 방에서는 두 아이의 퀴즈가 한창이고, 여자 셋 방에서는 두런 두런 이야기 꽃이 피었다. 그러던 중에 엄마가 올갱이를 잡으러 갔다가 죽을 뻔 했다고 말을 꺼냈다. 목소리 톤 변화없이 꺼내진 말이 마치 남의 이야기하듯 들렸다. 


망에 한 가득 올갱이를 잡고 걷다가 미끄러져서 보에 빠지셨단다. 보? 저수지? 심상치 않은 내용에 잠이 들던 정신이 번쩍 뜨였다. 엄마는 물에 빠지니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 졌다고 한다. 자꾸 가라앉는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허리춤에 매여있던 올갱이가 든 망과 장화를 벗어 버렸다고 했다. 그와중에 망의 매듭을 풀어냈다고 말하실 때는 당신의 정신력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엄마는 수영을 할 줄 모르신다. 그런 사람이 깊은 저수지에서 어떻게 빠져나왔을까. 이미 다 지난 이야기를 듣는 중인데도 에효, 하고 한숨이 나왔다. 참담함과 고통이 상상되어서 한숨이 나오고, 이렇게 눈앞에 살아서 이야기를 하는 엄마를 보며 안도감에 또 한숨이 나왔다. 


망과 장화를 버리고 몸을 가볍게 했는데도 물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고 했다. 팔 다리를 계속 저었다고 했다. 그래도 발에 땅이 닿지 않았다고 했다. 수영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물에서 빠져나오려면 발을 디딜 무언가가 있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수지 바닥은 성인 키의 두 배 보다 깊었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다) 서서 팔 다리를 휘젓는 엄마의 몸은 둥둥 뜨지 못하고 이마까지만 물 밖으로 오르락 내리락 했다고 한다. 


"이렇게 죽는구나 하고 가만히 눈을 감았지. 그런데 윤이와 준이가 요렇게 내 얼굴을 내려다 보고 있는거야. 아직 죽으면 안되겠다, 꼭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


정신은 또렷한데 팔 다리는 점점 지쳐가고, 더이상 팔을 젓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을 때 엄마는 모든 걸 체념하고 눈을 감았다고 했다. 그때 한 집에 살고 있는 조카 두 녀석의 얼굴이 떠올랐고 엄마는 이대로 죽을 수 없다고 다시 눈을 떴다고 했다. 힘이 빠져 더이상 움직이지 않던 팔이 신기하게도 다시 움직였다고 했다. 그렇게 계속 팔을 휘저으니 드디어 발에 땅이 닿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엄마는 겨우 저수지를 빠져나왔다. 


십분이 넘게 저수지에서 사투를 벌이고, 백 미터 정도의 거리를 이동한 것 같다고 했다. 수영도 못하는 육십 대 엄마가 해낸 일은 놀랍고 감사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올갱이를 잡고 있던 일행이 뛰어 왔을 때는 이미 엄마 혼자의 힘으로 물에서 빠져나온 후였다고 한다.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았는데 다행히 이상은 없었지만, 폐에 물이 차서 숨쉬기가 힘들고 수세미로 긁는 것처럼 통증이 느껴졌다고 했다. 의사는 폐에 찬 물이 빠져나오길 기다려야지 약이나 다른 방법은 없다고 했단다. 엄마는 한 달이 좀 넘게 지난 최근에야 폐의 통증이, 숨 쉬기가 괜찮아졌다고 했다.


나란히 누운 깜깜한 밤, 엄마의 구사일생 경험담을 듣는 동안 어둠에 눈이 익숙해졌다. 환해진 시야의 편안함과는 달리 나의 마음 속은 답답하고 복잡했다. 에효, 엄마, 저수지 근처를 왜 가셨어, 그런데를 가면 어떡해, 에효, 올갱이 잡으러 가지마요, 계속해서 앞으로는 절대로 가지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내가 그 날이 몇 일인지 안 잊어버려. 너희들 캐나다로 출발하던 날이었어."

그랬다, 나와 아이들이 인천공항에서 신나게 놀고 있을 시간에 엄마는 죽음의 위기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너무나 아찔한 상상이다. 이미 지나간 일, 극적으로 헤쳐나온 엄마의 정신력과 용기에 감사하며 더 이상 상상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불쑥, 원치 않은 상상이 튀어나왔다. 어쩌면 캐나다에 도착하자마다 헐레벌떡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을 수도 있겠구나. 고개를 휙휙 저어 생각을 산산조각내어 흩뿌렸다. 사라져라, 사라져라, 사라져라.


엄마는 이마까지만 물 위로 오르락 내리락 하는 동안, 고개를 뒤로 젖히면 코와 입을 물밖으로 꺼내어 숨을 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수영을 못하는 육십대 사람이 물에 빠져서 순간적으로 떠올린 생각이 정말 놀랍고 감사했다. 역시 강한 우리 엄마다! 


엄마가 되찾은 안온 덕분에 나와 아이들의 캐나다 여행이 지속될 수 있었다. 엄마뿐이겠는가, 우리가 캐나다에서 생활하는 동안 안온했던 가족들과 지인들 덕분이기도 하다. 나와 아이들이 캐나다에서 건강하게 잘 지내고 오기를 바라주었던 가족과 지인들. 그들의 안온이 우리의 안온을 만들어 주었다. 반대로 우리의 안온이 그분들의 삶을 안온하게 만드는 하나의 이유가 되었으리라. 


"사람이 죽을 운명이면 발버둥쳐도 죽고, 살 운명이면 어떻게든 살게 되있어"

엄마의 연세에는 생과 사의 갈림길을 경험한 지인분들이 많다. 사람의 수명은 운명이 결정한다는 게 엄마의 지론이다. 그러면서도 항상 조심은 해야한다고 덧붙이셨다. 이제는 올갱이 주우러 가지 않으실 거란다. 냉장고에 저장해 둔 올갱이를 쳐다보기도 싫다신다. 아, 이제 올갱이국은 못 먹는 건가, 내 머릿속은 도통 눈치가 없다. 


모든 사람의 수명은 유한하다. 그걸 알면서도 자꾸만 바라게 된다. 마지막이 없기를, 엄마와 나와 우리 딸, 이렇게 함께 누워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날들이 영원하기를. 그리고 대화 거리가 항상 즐겁고 신나기만을.  나와 아이들의 안온을 먼저 챙겨야겠다. 우리의 안온이 우리의 안온을 지켜줄 것이고, 우리의 안온이 우리의 일상을 가능하게 만들거라 믿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L.M.몽고메리 문학 여행, 캐나다 스무 곳 어떤 곳?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