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단 Jan 10. 2021

하얀 눈을 밟을 때,
아이와 어른의 차이


며칠 전 하얀 눈이 펑펑 내렸습니다. 밤새 도로에서 제설작업을 하던 분들, 이른 아침부터 가게 앞이나 아파트 안에 염화나트륨을 뿌리고 눈을 치우던 많은 분들의 노고가 있었습니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 날, 어른들의 노고와는 상관없이 아이들은 그저 눈을 만지느라 기뻐합니다. 


코로나로 폐쇄된 놀이터에 쌓인 하얀 눈을 바라보며 아쉬워하다가, 근처 낮은 산으로 향했습니다. 눈이 덮힌 산을 밟고 산책하는 기분이 제법 좋았습니다. 뽀드득 뽀드득 밟을 때마다 ASMR을 듣는 것 같았습니다. 곳곳에 찍힌 고양이 발자국을 따라가며 고양이가 어디로 갔는지 맞추어 보기도 했습니다. 


눈 덮힌 산길을 걸어가면 수많은 어른들의 발자국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길 한가운데를 중심으로 밟은 자리를 또 밟고, 밟고...그렇게 밣힌 자리에는 눈이 사라지고 흙이 보였습니다. 어른들이 걷고 걸은 그 발자국이, 눈길보다 안전한 흙길을 만들어냈습니다. 


저 역시 그 흙길을 밟으며 안전하게 산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아이의 발자국을 보며 어른들과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는 다른 사람이 밟지 않은 눈이 쌓인 부분만 골라서 밟으며 걷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발자국을 보면서 신기해하고 재미있어하면서 말이죠. 




다른 사람들이 밟은 길을 그대로 밟으며 안전함을 느끼던 나와는 다르게, 아이는 새로운 곳을 밟으며 흥미진진한 탐험을 하고 있었던 것이죠. 생각해 보면 저도 어렸을 때는 발자국이 없는 눈을 찾아다니면서 밟았던 것 같습니다. 어느새인가 남들이 만들어 놓은 안전한 길을 걷고 있는 어른이 되었네요. 


요즘 저는 두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 영어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공부라고할만큼 거창하지는 않고, 집에서 같이 영어책을 읽고 영어 영상을 보는 일입니다. 그 과정의 핵심은 바로 '재미'입니다.아이들은 재미있는 일은 스스로 찾아서 하니까요. 아이들의 발자국이 어디로 갈지 모르니, 유심히 살펴보았다가 그 곳에서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컨텐츠를 찾아서 놓아주는 것이 저의 역할입니다.  영어학원을 일 년 정도 보내다가 코로나 등의 이유로 홈스쿨로 전환한지 한 달이 넘어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걸어왔던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밭을 걷는 일과 흡사합니다. 두 아이가 자유롭게 여기저기 걸어다니게 하고, 그 길을 잘 쫒아가면서 계속해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지요. 


새로운 길을 출발할 때 걱정이 많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두 아이들은 주체적으로 길을 걸을 수 있는 자유로움과 재미에 푹 빠져있습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재미'일 겁니다. 어른이 되면서 재미 보다는 안전함을 추구하게 되었는데요, 아이들에게는 충분히 재미를 느끼며 살도록 안내해주려고 합니다. 


눈길을 걸을 때 많은 사람들이 걸었던 흙길을 밟는 건 가장 안전한 선택일겁니다. 하지만 내 신발바닥의 생김새를 확인하거나, 내가 걷는 모양을 확인할 수 있는 즐거움은 가질 수 없을 겁니다. 2021년에는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에 나의 발자국을 찍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작가의 이전글 스타트업! 주사위는 던져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