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단 Feb 14. 2022

어쩌면, 그리움 한 조각

Funny how all dreams come true~나를  지켜줄거야~


올해 한 살을 더 먹어, 완연한 십대 대열에 들어선 딸아이는 오늘도 노래를 부르며 몸을 살랑거린다. 엄마 눈에는 아기때의 앙증맞음이 남아있는 몸 동작이지만, 아이는 최선을 다해 상체와 하체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꼬아가며 춤을 춘다. 여기에 오른손과 왼손으로 엑스자를 한번씩 긋고, 다음에는 나란히 내밀어 손목만 까딱까닥거리는 동작까지.


에스파라는 가수의 몸동작을 흉내내는 아이의 흥을 지켜보고 있자면, 엄마 입가에는 미소로 시작한 함박웃음이 지어진다. 엄마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아이의 마음에 행복해서 미소를 짓고, 애쓰는 마음과는 다르게 나오는 춤동작이 너무 귀여워서 웃음을 터트리게 된다. 


아이는 춤을 추다가 엄마에게 다가와 안긴다. 이제 제법 키가 엄마만한 아이를 끌어안고 이미 흠뻑 물든 행복에 다시 빠져들었다. 퍼니 하우 드림 컴 트루~ 이 노래의 원가수는 SES이다. 엄마인 내가 중고등학생이었던 시절의 노래. 어느날 아이의 입에서 이 노래가 나오는 걸 듣고 놀라며 반가웠다. 아이는 춤을 춘다. 학창시절의 내가 할 수 없던 방식의 표현이라서, 아이의 모습을 더욱 반기게 된다. 내향적인 엄마 성격을 물려받아서인지 아이는 남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집에서는 자유롭게 자신의 감정을 발산한다.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음의 증거인 듯해서 감사한 마음이 스며든다.


요즘같이 아이가 웃고 노래하고 춤추는 일상은 얼마나 값진 것인지 나는 알고 있다. 십대에 진입하던 불과 일 년전만해도 아이는 마치 사춘기에 접어든 것처럼 감정이 불규칙했다. 엄마 껌딱지였던 아이는 이제 엄마에게 큰 소리로 따지듯이 말하기도 했다. 그런 아이의 태도를 감당할 때마다 엄마의 마음에는 생채기가 낫다. 간혹 생채기를 만드는 일 이외에 아이는 여전히 엄마에게 큰 행복을 주는 존재였기에 상처에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다. 으례 사라졌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아이의 예전 모습을 그리워하고 있었나보다. 그 시절 어느날, 너무나 생생한 꿈을 꾸었다. 딸아이는 돌 무렵의 모습으로 나의 꿈속에 들어왔다. 우리는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고, 멀리서 우리 둘을 지켜보는 현재 모습의 딸아이를 느낄 수 있었다. 잠에서 깨면서 나는 눈물이 많이 났다. 깨어나서도 잠시동안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지 못하고 울었다. 나는 돌쟁이였던 딸아이가 무척 그리웠었다. 그 모습 그대로 다시 나에게 와주길 바랬다. 그래서 꿈 속으로 찾아와준 것이리라. 


 아기가 태어나서 가장 사랑스러운 순간을 꼽으라면 많은 부모들이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무렵이라고 할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스스로 내딛을때마다 차오르는 감동, 부모라면 그 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 시기의 아이들이 사랑스러운 매우 현실적인 이유는 의사표현의 미숙함에 있지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스스로 자립을 시작하면서도 언어 사용이 미숙해서 자신의 의지를 고집하지 않는 시기, 엄마에게는 수월함과 동시에 여전히 아기때처럼 아이를 컨트롤할 수 있는 시기였을터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자그마한 발로 아장아장 걷던 아이가 무척 그리웠다. 


아침에 일어나 눈물을 닦는 엄마를 보며 딸아이가 물었다. "엄마 왜 울어?" 나는 꿈속에서 돌쟁이였던 너의 모습을 보았노라고 말했다. 그즈음 나는 혼자 딸아이의 예전사진을 쓰다듬으며 보다가 아이에게 들킨 적이 있었다.  딸아이는 뽀루퉁해져서 서운한 마음을 드러냈다. 


"엄마는 나보다 걔가 더 좋아?"






딸아이와 나는 같은 공간에서 잠을 잔다. 낮시간에는 포옹을 하는 것도 허락을 받아야할 정도로 예민해졌지만, 밤시간에는 먼저 엄마를 꼭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 다시 아기가 되어 품속에 안기는 아이의 체온으로 안온해지는 밤이었다. 


우리가 서로에 대한 생채기에 대해 화해를 한 것도 잠자리에서였다. 어느날 딸아이와 나는 각자 다른 공간에서 잠들기로 결정했다. 각자의 서운함을 안은 채로. 안온함이 감싸던 밤시간은 아슬아슬한 긴장감으로 가라앉았다. 어떤 계기였을까.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 안고 펑펑 울고 있었다. 그렇게 한시간쯤. 


"엄마는 Mia를 사랑해. Mia가 엄마한테서 멀어지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거야. 엄마품에서 벗어나야 Mia의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거지. 우리 Mia가 잘 자라고 있는 거야."


아이의 불안정한 마음이 잘 자라고 있다는 증거라는 걸 안다. 엄마 뱃속에서 갓 나온 아이는 엄마와의 거리가 0에 가깝다. 거의 한 몸인셈이다. 아이가 커가면서 자신의 영역이 생기고, 엄마와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계가 생겨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프라이빗한 공간, 서로 침범하면 안되는 각자의 영역이 생겨나는 것이다. 살면서 아이의 자존감을 지켜줄 그 영역이 단단해져야 한다는 걸 알지만, 엄마에게는 무척 낯설고 서운한 느낌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돌쟁이 아이의 모습을 꿈속에서 만났을까. 







현재는 미래의 그리움 조각들을 가져와 만들어진 퍼즐같다. 지금 눈앞에 있는 아이들의 모습들이 시간이 흐르면 그리워질 날이 올 것이다. 현재의 내가 돌쟁이였던 아이의 모습을 그리워하듯이, 미래의 나는 드림컴트루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그리워할 것이다. 


꿈속에서 만났던 돌쟁이 딸아이를 오랜만에 다시 떠올린다. 우리가 각자 다른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펑펑울던 그날밤 이후로 나는 돌쟁이 딸아이를 그리워하지 않았다. 아이의 변화를 서운함이 아닌 오직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딸아이도 마음 속 갈등을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예측할 수 없는 주기로 우르릉쾅거리던 감정표현이 점점 부드러워졌다. 


아이와 엄마 사이에서 썰물과 밀물처럼 오고가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생긴 변화이다. 달의 인력과 지구의 원심력이 서로 다른 고유한 힘이라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그렇게 십대에 진입한 아이의 첫 고비를 넘기고 인생의 한 조각에 새겨넣었다. 휘몰아지던 감정, 부단한 노력, 눈물, 웃음이 섞여 만들어진 한 조각이었다. 그리고 미래의 어느날 나는 그리움속에서 조각을 꺼내어 어루만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두 아이가 실뜨개를 하다가 엄마에게 와서 신나게 자랑을 한다. 실뜨개로 다양한 모양을 만들고, 꽁꽁 감았지만 풀어지는 트릭도 보여준다. 춤추고 노래하듯 즐거운 시간이다. 지금 이 순간도 고이고이 조각에 새겨넣어야겠다. 사랑스럽고 그리운 조각들에 아이들의 온기를 넣어 내 마음속 곳간을 채워간다. 아이들 덕분에 따사롭고 풍요로워지는 곳간이다. 아이들이 모두 성장하고 각자의 터전에서 삶을 살아가게 되는 미래에, 어쩌면 나는 마음 속 곳간에 기대어 당장의 그리움을 다독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현재의 행복이 오롯이 새겨진 그리움의 조각을 꺼내어 따뜻한 온기로 푸근해진 마음으로 살아가리라. 


오늘은 그 한조각에 스며들 행복한 기억을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볼펜)에게 배웁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