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취업고민, 심리상담, 커리어, 외로움, 공황장애, 두려움, 낙오
힐러리와 트럼프가 대결한 미국 대선을 봐도, 여러 면에서 대통령 감으로 검증된 힐러리보다, 힐러리의 단점을 감각적, 대중적 레토릭으로 속 시원하게 파고들어 결국 트럼프가 승리한 사례라고 할 수 있죠.
클린턴의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 도 마찬가지입니다.
코어 이슈를 건드려서 승리했는데, 이 또한 모두 어려워하고 있는 큰 문제를 단순 명료하게 조소함으로써 능력의 우위를 드러내는 전략이었습니다. 물론 운도 좋아 경제가 호황기였죠.
이처럼, 우리는 사회 이슈와 레토릭적 리듬 이 두 가지가 감각적으로 딱 맞아 떨어지는 주장이나 비판에 열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일까요?
김난도 교수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을 냈을 때 당시에는 사실 매우 반응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고 누군가 그걸 조소하기 시작하더니 그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돌변해버렸습니다.
제 생각에, 사실 아픈 것을 파고 들어가보면 ‘외로워서’입니다.
부모의 둥지를 벗어나 지내는 일은 사실 외로움을 처음 제대로 겪는 것이죠. 또 그 와중에 아파서 서러워 봤던 경험도 20대가 처음이고, 그래서 아픈 겁니다.
신체적 사춘기는 10대이지만 사회적 사춘기는 20대입니다.
힘든 군 생활을 그래도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다 함께 개 고생하기 때문입니다.
집단에서 분리되어 개인이 되면, 하루하루의 고립 감이 엄습하고, 차갑고 거대한 쇠 덩이인 지하철과 거리의 수 많은 차와 빌딩들, 인파들은 그 누구라도 한 명의 개인에게 압도 감을 주기 충분합니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외로운 건 마찬가지예요.
단지 그걸 처음 경험할 때의 당혹감이 익숙해진 외로움보다 더 크다고 느낄 뿐이죠. 그래서 처음 느끼는 당혹감이 더 아프게 하는 거구요.
이런 로직을 이해하면, 이 외로움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되고, 이로써 외로움이 주는 아픔이 내 마음에 따라 덜어질 수 있고, 나아가 극복할 수 있는 것이라 믿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나는 이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대상이 누구든, 더 가까운 친구가 되어주겠다는 생각을 우리 모두 조금씩 더 하고 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