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버리자, 설레지 않는다면.

자존감, 미니멀라이프, 미니멀리즘, 정리, 정리력

by 김동주 Don Kim

구독, 구독! :-)



이제,


설레이지 않는다면 하지 말자.




물건들 정리할 때,

사람을 만날 때,

일의 우선 순위를 정할 때...


위의 상황들에 대해 얼마 전부터 내가 세운 판단 기준은 ‘그것이 내게 꼭 필요한가? 나를 설레이게 하는가?’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한다.


작업실 책장에 꽂혀 있는 구입한지 10여년 가까운 한 권의 책. 그 책을 응시하며 생각해본다. '내가 지난 10년간 읽지 않은 저 책을 앞으로 집어 들까?

책 안에 담긴 지식의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집어들지 않았다면 그 책이 주는 설레임이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내가 저걸 얼마주고 샀는데, 버릴 수 없지!”

“나중에 필요할 타이밍이 올꺼야...”


부족한 교감들을 과감히 내던지지 못하고 마음 한 켠, 내 방 뒷 켠의 후순위로 쌓아두고 ‘언젠가는 필요하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묻어두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다보면, 어느 순간 주위는 나의 ‘아까워하며, 버리지 못한’ 부족한 교감들로 쌓이고, 나는 그것들에 둘러 쌓여 가려진... 내게 더 소중한 것들 찾기가 힘들어진다.


지금은 100년 전이 아니다. 물건들은 이 별을 황폐화시키면서까지 마구 생산되고 있다. 내게 꼭 필요하고 소중한 것들만 체험하며 살아도 이미 너무 바쁘고 정신 없는 세상...



정리 전문가 곤마리가 주장하는 정리법의 핵심은 "설레지 않는다면, 버려라"이다. 이 원칙을 적용하면 필요 없는 물건과 가구에 치이지 않게 되어 작은 집도 크게 쓸 수 있다. 별로 맘에 들지 않는데 싸다는 이유로 구입한 옷을 아직도 입지 않았다면 지금 버리는게 낫다. '적당히 사는 법'의 저자 진노스케는 이런 원리를 일상에 적용하라고 주장한다.


‘설레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다, 설레지 않는 모임은 가급적 가지 않는다, 설레지 않는 사람은 가급적 만나지 않는다’...


물론 싫어도, 설레이지 않아도 꼭 해야할 일들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기에, 내가 말하려는 본질은,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목소리에 더 귀 귀울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남의 시선과 판단에 연연한 결정은 결국 끝에 가서 후회를 남기는 등, 건강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저 그런 느낌의 만남은 안 하는게 이롭다. 내 스스로 내키지 않아 궂이 가기는 싫은 모임에, 다른 참석자들의 평가가 두려워 억지로 몸을 일으킨다면 그런 것은 안 하는게 낫다. 이 점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그런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 것은 자신 뿐 아니라 결국 그들에게도 이로운 것이다.


창고를 몇 년간 가득 채워온 수천 개의 재고를 일순간에 모두 처분하여 억 단위로 기부한 적이 있는데, 돈이 아까워 그것에 짓눌린채로 살았다면 지금쯤 나는 과거의 삶 안에 갇힌 한 숨 속에 살았을 것이며, 지금처럼 미래를 준비할 여백이 있는 하루는 내게 오지 않았을 것이다.


설레임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걸러내면, 외부 요인이 주도하는 일상은 더 컴팩트해지고, 내가 주도하는 나를 위한 일상은 더욱 커지게 된다.


사람 만나는 횟수와 만나는 사람의 수가 적어지고 내 삶의 여백이 커지면, 적어진 울타리 안의 사람들과 더욱 풍성한 내적 교류를 할 수 있음을 나는 깨달았다.


의무감에 참석하는 한 달 한 번의 모임에 분기별로 한번만 참석한다면 반가움은 더 커지고 그 만남 동안의 시간은 더 깊어질 수 있는데, 설레임과 필요함이라는 기준이 일견 나만을 귀한 이기적인 명제의 뉘앙스로 타인에게는 실이 많은 것 처럼 느껴지기 쉽지만, 길게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나는 체험했다. 여백이 많아진 삶에서 가끔 찾아오는 인연은 나와 그들 서로에게 더 소중해지기 때문이다.



내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잊어보려 하는 무의식 속의 쇼핑도, ‘설레임을 주는가? 진정 내게 꼭 필요한가?’라는 필터링을 거치며 스스로에게 반문하기를 반복하면 차츰 그 횟수가 줄어들며, 물건이 날 더 보완하거나 완성해주진 못한다는 지점에 도달하게 되어 온전한 자연인으로서의 ‘나’는 더 단단해진다.



성형이나 명품, 화장품, 자동차 등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요구하는 기능성을 충족하는 정도의 필요함은 있겠지만, 그 수준을 넘는건 아닌지 자주 그리고 깊이 생각해야한다. 나라는 범위를 넘어 다른 어떤 것도 나를 더 완성하지는 못한다는 생각을 반복하다보면 자존감은 오르고 필요함은 적어져 간다.



비우는 삶의 여유 안에서만 온전히 자신이 주도하는 시간은 커지고 하고픈 것을 더 할 수 있다.


하루에 2-3시간 TV를 평생 보는 가정을 하고 시간을 따져보니 내 심장 뛰는 인생 전체의 10%에 해당한다는 사실에 너무 끔찍했다. 다음날 벽에 강건히 붙어 있던 TV 두 대를 버렸다. 그 시간으로 내 인생을 더욱 빛낼 많은 것들... 할 수 있다. 삶을 내가 주도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맞는 삶의 방식이 필요하다.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혼자서도 얼마간 잘 지낼 수 있는 자기애와 독립적인 취미들, 타인과 타인의 평가에 대한 의식 안하기, 고독이 주는 공허함을 이기는 자기 나름의 내적 논리가 수반 되어야 한다. 내가 독립적인 사람이 아니었다면, 내 미래 과제에 몰입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잘 버리는 방법을 알면 그 루틴의 학습으로 덜 사기 시작한다. 결국 내게 돌아오는 것은 더 크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