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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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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동운 Don Ko Jan 31. 2018

마지막 키스

이 아침에...

식구들이 모여 세배를 하고 떡국을 먹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어려서는 형제들이 방학을 하면 앞 다투어 생활계획표를 짜서 벽에 붙이곤 했었다. 기상시간부터 밥 먹고, 공부하고, 놀고, 쉬고, 간식 먹는 시간까지 하루 일정을 빼곡히 적었다. 물론 작심 3일, 잘 지켜지지는 않았다.


성인이 되어서는 연말에 새 수첩, 새 달력을 받아 새해 결심은 물론 5년, 10년 계획까지 적곤 했었다. 언제부턴지 새해에 해야 할 일을 대충 생각으로만 정리할 뿐, 신년 계획이나 결심을 종이에 적는 일이 사라졌다. 아마도 나이가 들었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며칠 전 팟캐스트 방송에서 들은 이야기다. 시를 잘 쓰고 싶은 사람이 어떤 시인에게 물었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좋은 시를 쓸 수 있을까요?”


시인의 답이다. “1. 짧게 쓸 것 2. 다른 사람의 눈치 보지 말고 쓸 것 3. 순간의 감정을 잡아서 쓸 것 4. 생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생각으로 쓸 것”


마치 내게 하는 말 같아 시인의 답을 2018년 새해 결심으로 삼기로 했다.


나이가 드니 말이 많이 진다. 한마디면 될 말도 열 마디로 늘려한다. 그러고도 부족해서 사족을 단다. 때로는 내가 하는 말에 취해 처음 하려고 했던 말은 온데간데없고 이야기는 삼천포로 내 달리고 있다. 이 정도 되면 듣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는 바로 다른 쪽 귀로 흘려버리고 있다. 말이 많다 보면 하지 않아도 좋을 말도 하게 되고, 내 감정에 쏠려 필요 이상의 감정을 내보이기도 한다.


대개는 내가 하는 생각을 다른 사람들도 하고 있다. 가만히 참고 있으면 누군가 나보다 조리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나서게 된다.


남의 눈치 때문에 없는 것도 있는 양, 있는 것도 없는 양 살다 보면 남에게 상처도 주고 내가 손해 보는 일도 생긴다. 있는 모습 그대로 산다면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슬플 때 울고, 즐거울 때 웃으며 작은 일의 소중함을 알며 살아야겠다. 60년을 살아보니 인생 별거 아니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을 때가 많다. 겨울 아침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사랑하는 이와 마주 앉아 마시는 차 한잔, 열어 놓은 창문으로 들려오는 새소리, 퇴근 후 잠시 노곤한 몸을 눕히고 듣는 잔잔한 음악, 이런 사소한 순간이 사는 즐거움이라고 한다면 너무 쩨쩨한 삶인가?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초저녁에 병원에 갔었다. 곤히 주무시는 것 같아 손 한번 쓸어 드리고 돌아 나왔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날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만남인 것을 알았더라면 꼭 안아드리며 “아버지 고맙습니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출근길 아내와의 입맞춤이 이 생의 마지만 인사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무덤덤하게 돌아서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들과 마주 앉아 먹는 저녁이 마지막 식사라고 생각한다면 그 시간을 잔소리로 채우지는 않을 것이다.


달력에 줄을 그었다. 시간의 소중함을 상기하기 위해, 내 새해 결심을 기억하기 위해 매주 이렇게 줄을 그어 지워 갈 것이다. 2018년도 이제 48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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