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빨간 스웨터

by 고동운 Don Ko

화기 중대에 배속을 받아 박격포를 다 익히기도 전에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신생국 대한민국의 군인들에게 한국전쟁은 고난이자 기회의 시절이었다. 신병들을 모아 제주도에서 훈련을 마친 아버지는 화기 중대장이 되어 인천 상륙 작전에 참여하게 된다.


“'해병대 104 고지 전적비’를 살펴보면 당시 작전에 참가한 1 연대장 신현준 대령, 1 대대장 고길훈 소령, 1 중대장 정만진 중위, 2 중대장 김광식 대위, 3 중대장 이봉출 대위, 4 중대장 고상하 중위 등 지휘관 이름을 비에 새겨 길이 빛내고 있다.” (무적해병 신문 2014년 10월 10일)


한국전쟁사에 서울 탈환의 전기로 알려진 104 고지 (연희고지) 전투에 나선 후 평생의 반려자인 어머니를 만나게 된다. 연희고지에 올라 망원경으로 주변을 살피던 그의 눈에 빨간 스웨터의 젊은 여성이 들어온 것이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그녀의 모습은 주변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라 뇌리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날 저녁 수 주째 미군의 비상식량인 C레이션에 물린 부하들이 밥을 해 줄만한 민가를 찾았다며 그를 찾았다. 한 끼 밥을 얻어먹으러 찾아간 집에 낮에 보았던 빨간 스웨터의 여인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 아버지에게는 장래를 약속한 여인이 있었다고 한다. 해병장교로 근무하며 사귀던 여인이 있었던 것이다. 서울을 수복하고 찾아 간 그녀 이모의 집에서 서울이 인민군에 함락되자 그녀는 사진을 포함하여 아버지와 연관된 모든 것을 불태워버렸다고 한다. 그 후 공산당 치하에서 여성동맹 등에 참여하였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국군이 들어온다는 소식에 시골로 잠시 잠적했다는 것이었다. 공산단이 싦어 고향까지 등졌던 국군 장교에게 그 소식은 이별의 선언과 같았다. 그 후 그녀와는 다시 만나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날 저녁이 인연이 되어 잠시 서울에 머무는 동안 그는 빨간 스웨터 여인의 집에 C레이션이며 이런저런 군용 물자를 가져다주었고, 그 집에서는 맛있는 집밥으로 그를 맞았다. 그리고 북진 명령이 떨어지며 잠시 이별을 하게 된다.


여기서 잠시 우리 외갓집을 소개해야 할 것 같다. 어머니는 딸만 둘 있는 집의 장녀다. 외할아버지는 손바닥만 한 집이라도 4대 문 안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 서울 중인 출신이다. 일제시대 때는 한국전력에 다니며 그럭저럭 먹고살만했던 것 같다. 옛날 사진을 보면 유니폼을 입고 야구배트를 들고 서 있는 외할아버지의 모습이 있다. 장남인 할아버지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할아버지의 동생인 작은할아버지는 내리 딸을 셋 낳은 후에 아들을 낳았다. 그래서 외할머니는 그 작은 할머니를 좋아하지 않았다.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았다고 늘 으스대는 것이 눈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해방이 되고 나서 할아버지는 한전에서 퇴출되었던 모양이다. 그 후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는 분명치 않다. 잠시 시장에서 포목점을 했다고 하는데, 할아버지가 한 것인지 작은할아버지가 했던 것인지 분명치 않다. 그런 할아버지에게 국군 장교인 아버지는 딸의 미래를 맡길만한 자리라는 믿음이 있었을 것이다.


어떤 한국 전사에는 한국군이 중앙청에 태극기를 달았다는 기록도 나오는데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중앙청에는 태극기를 달 수 있는 봉이 없었다고 한다. 포격에 모두 망가져 있었다. 어느 미군 병사가 바닥에 깔아 놓은 태극기가 있었다고 한다.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이 중앙청을 둘러보던 날 아버지의 부대가 외곽 경비를 서고 있었는데, 창틀에 매달려 있던 깨어진 유리창이 강한 바람에 바닥으로 떨어져 박살이 나며 큰 소리가 났다고 한다. 모두들 저격수의 총격인가 싶어 숨을 곳을 찾는데 맥아더 장군만 꼿꼿이 서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두고두고 맥아더 장군의 용맹스러움을 말하곤 했었다.


북진을 계속하던 해병대는 함경남도 홍원 근처까지 진군하였다. 고향을 지척에 두게 되자 아버지는 부대장에게 잠시 고향에 다녀오도록 하루만 시간을 허락해 달라고 청하였다. 하지만 부대장은 허락하지 않았다. 아버지에게는 늘 무모한 고집 같은 것이 있었다. 한번 마음먹으면 앞뒤를 가리지 않는다. 평소에 그를 잘 따르던 부하 몇 명을 무장을 시키고 지프차에 기름을 넣은 후 아무도 모르게 부대를 빠져나와 고향으로 달렸다. 무단 탈영을 한 것이다.


고향에 도착해 보니 인민군들은 이미 퇴각을 했고, 마을 청년들이 자경대라는 것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무장한 국군 장교가 마을에 들어서니 자경대 대장이라는 이가 그를 맞아 그동안의 경위를 보고하겠다고 머리를 조아린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5촌 아저씨다. “나 상하요, 아저씨” 하니 깜짝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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