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탈출

by 고동운 Don Ko

서울의 대학병원에 와서 내가 걸린 병이 소아마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아마비는 신경계의 감염으로 발생하며 척수성 소아마비의 형태로 발병한다. 5세 이하의 아이가 걸리는 경향이 많아 병명에 소아가 들어가지만, 아이만 걸리는 병은 아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1940년대에 많은 수의 성인이 이 병에 걸렸다. 한국에서는 50-60년대에 주로 어린아이들이 걸렸다. 그래서 소아마비 장애인은 내 또래의 나이에 집중해 있다.


나는 그 후 다소 회복을 하여 상체는 다시 쓸 수 있게 되었지만 하반신은 회복되지 않았다. 내 왼손에는 지금도 그때의 후유증이 남아 엄지손가락의 움직임이 자유스럽지 못하다.


관훈동 집에 사는 동안 아버지는 진해와 포항에서 계속 근무를 했던 것 같다. 할머니의 등에 업혀 서울역에 나가 아버지를 배웅했던 기억이 있다. 시커먼 증기기관차가 허연 연기를 내뿜으며 버럭 경적을 울리면 놀라서 울곤 했었다.


아버지가 북진 길에 잠시 다녀 간 후, 고향에는 다시 인민군이 돌아왔다. 학교 마당에서 면민들을 모아 놓고 한국전쟁은 김일성이 일으킨 것이며 곧 공산당을 물리치고 통일이 되리라는 연설이 문제가 되어 할아버지는 매우 곤란한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마을에서 반동의 집안으로 손가락질을 받게 된 것이다. 이를 모면해 보고자 전쟁 말에 둘째 아들인 큰삼촌이 인민군에 지원을 했다. 삼촌은 곧 일선으로 보내졌다. 인민군에서도 삼촌은 늘 주목을 받고 있었다. 형님이 UN군 장교라는 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곧 전쟁이 끝난다는 소문이 나돌 무렵 주변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소문에는 전쟁이 끝나고 나면 반동분자 집안에 대한 대대적 숙청이 있게 되리라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실제로 종전이 된 후 우리 친가는 모두 탄광촌으로 강제 이주를 당했다고 한다. 작은 삼촌들은 그곳 탄광에서 중노동을 해야 했으며 아무도 당원의 지위에 오르지 못했다.


삼촌의 인민군 부대는 지척에 한국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어느 날 삼촌은 감시가 허술한 틈을 타서 부대를 탈출했다. 반나절 후 인민군 지역을 거의 벗어날 무렵 검문에 걸리고 말았다.


삼촌을 붙잡은 인민군들은 탈영을 의심하며 이곳저곳에 연락을 하고 있었는데 전화선이 끊긴 탓에 연락이 잘 닿지 않는 듯싶었다. 간이 천막에 총을 든 보초와 둘이 마주 보고 앉아 있는데, 보초가 졸기 시작했다. 잘 먹지도 못하고 잦은 교전에 피곤이 누적된 듯싶었다. 삼촌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총을 빼앗아 개머리판으로 그의 머리를 내려친 후 냅다 남쪽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의 외마디 소리를 듣고 추격조가 총을 쏘며 쫓아오더니 잠시 후 멎었다.


삼촌은 산길을 반나절 더 걸어 국군 지역으로 넘어왔고 초병에게 투항했다. 초병은 삼촌을 데리고 소대장 천막으로 갔는데 마침 소대장은 자리에 없고 한쪽 구석에 밥상이 있었다. 꼬박 하루를 굶은 삼촌이 밥을 좀 달라고 하자 천막에 있던 병사가 다른 밥은 없고 소대장의 밥이 남아 있는데 만약 소대장이 돌아와 먹지 않으면 주마고 했다. 얼마 후 소대장이 돌아왔는데 마침 밥을 먹고 왔다고 해서 그 밥상은 삼촌의 차지가 되었다. 삼촌은 지금도 그때 먹은 밥이 평생 가장 맛있는 밥이었노라고 한다.


포로수용소로 보내진 삼촌은 취조관에게 UN군 장교인 ‘고상하’가 형님인데 찾아 달라고 했다. 얼마 후 돌아온 답은 UN 군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다시 기억을 더듬어 북진 길에 고향집에 찾아왔던 형님의 전후 사정을 설명하니 아마도 한국군인 것 같다며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몇 달을 더 기다린 끝에 동생이 포로수용소에 있다는 전갈이 아버지에게 닿았고 형제는 그렇게 다시 재회를 하게 되었다.


전쟁을 겪으며 파탄이 난 시장경제와 달리 군대에는 물자가 넘쳐났다. 풍부한 물자의 지원을 받는 미군을 통해 한국군에도 기름이며 차량 등 온갖 물자가 넘어왔다. 군에서는 지역 경제에 도움을 주기 위해 ‘대민 후생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물자를 빼돌렸다. 사람들은 영향력 있는 군 간부들에게 줄을 대어 물자도 지원받고 사업을 따기도 했다. 아마도 아버지도 예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돈을 좀 모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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