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에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동운 Don Ko Apr 26. 2018

삼팔선의 봄

일상에서...

"눈 녹인 산골짝에 꽃이 피누나 

철조망은 녹슬고 총칼은 빛나 

세월을 한탄하랴 삼팔선의 봄 

싸워서 공을 세워 대장도 싫소 

이등병 목숨 바쳐 고향 찾으리.”  


‘삼팔선의 봄’이라는 노래의 가사다. 6월이 되면 ‘가요무대’에 꼭 한 번씩 등장하는 노래다. 

   

화창한 일요일 오후, 세차장에서 차를 세차하려고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다가 문득 이 노래가 생각났다. ‘가요무대’에서는 설운도가, 방송에서는 나훈아가 부른 것으로 널리 알려진 노래다. 하지만 나는 어느 이름 없는 노병이 부른 버전으로 기억하고 있다. 

   

20여 년 전, 타운의 중식당 ‘용궁’에서 어머니 환갑잔치를 해 드리던 날의 일이다. 가족들의 순서가 끝나고 가라오케 타임으로 넘어갈 즈음 헌팅캡을 삐딱하게 쓴 중년의 사내가 앞으로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삼팔선의 봄’을 멋지게 불렀다. 그가 풍기는 분위기와 노래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알고 보니 그는 아버지의 부하로 6.25를 겪은 실향민 노병이었다.

 

그날 환하게 웃으며 즐거워하던 어머니와 이 노래를 들으며 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던 아버지는 모두 돌아가셨고, 어쩌면 그 중년의 사내도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 모른다. 

  

곧 6월이 돌아오면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나 휴전을 종전으로 바꾸고 냉전을 화해의 시대로 바꾸게 될지도 모른다. 60여 년 전 이름 없는 골짜기에서 죽어간 젊은이들은 누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렸던 것인가.


스마트 폰으로 노래의 가사를 찾아 불러 보는데 문득 목이 메어 노래를 끝내지 못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