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파발 집에서 외할아버지의 환갑잔치를 치렀다. 이틀 전부터 전을 부치고 음식을 준비해서 잔치상을 차렸다. 나이 든 기생을 불러 자식들이 잔을 올리는 동안 소리를 했다. 정해진 시간에 손님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하루 종일 손님들이 오고 갔다. 여인네들은 몇 사람 손님이 모이면 음식상을 준비해서 내 갔다. 밥을 먹는 이들도 있었고, 술과 안주만 먹고 가는 이들도 있었다.
어려서 보고 배우는 것이 평생을 가는 모양이다. 이런 것을 보고 자란 탓인지, 부모님의 환갑이 되니 잔치를 해 드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환갑 때는 아직 형제들도 어리고 상황이 좋지 않아 일가친척들만 모여 식사를 했지만 어머니 환갑 때는 ‘용궁’이라는 중국집에서 크게 잔치를 해 드렸다.
떡과 과일을 제외하고는 모형으로 만든 한과를 빌려 차린 상이지만 상을 차려 잔을 올리고 자식들이 준비한 노래도 불러 드렸다. 아버지 때 초대하지 못한 아버지 후배와 친구들도 모두 불러 큰 잔치를 해 드렸다.
그 무렵 구파발은 아직 시골 맛이 나는 동네였다. 근처에 농사를 짓는 이웃들도 있었고, 정서가 시골이었다.
집에서는 염소를 키워 낮에는 뒷동산에 매어 놓고 풀을 먹였다. 염소는 풀만 먹는 것이 아니라 정말 종이도 먹었다. 끓여서 식힌 염소젖을 먹을 수 있었다.
가을이 되면 돼지를 한 마리 잡곤 했다. 돼지 잡는 사람이 와서 뒷 곁에서 돼지를 잡아 도축을 해서 이웃과도 나누어 먹었다. 어머니는 이웃 할머니들에게서 배워 가을이면 엿을 만들기도 하고 콩과 쌀을 ‘뻥튀기’로 만들어 강정을 만들기도 했다. 이렇게 만든 강정은 겨울밤 TV를 볼 때 귤과 함께 간식으로 나누어 먹었다.
양계장에서 일하는 일꾼들이 2-3명 늘 우리 집에 함께 살았는데, 어머니는 함께 TV를 보는 그들에게는 콩이 든 강정을 주고 깨가 든 강정은 슬그머니 우리 쪽 그릇에만 놓아주곤 했다.
방학 때나 주말 낮이면 감자나 옥수수를 삶아 점심으로 먹었고, 어떤 때는 깨져서 팔지 못하는 달걀을 한 솥 삶아 먹기도 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어려서 감자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 이야기를 하곤 했다. 찐 감자만 먹는 일이 물리면 감자를 그릇에 놓고 다듬이 방망이로 으깨어 떡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사카린을 찍어 먹기도 했다고 한다.
난 요즘 가끔 아내에게 밥할 때 감자를 크게 잘라 쌀 위에 얹어 쪄 달라고 한다. 이렇게 찐 감자를 밥 대신 먹으면 이 또한 별미다.
에어컨이 무언지도 몰랐고 전기 사정이 좋지 않아 집에 변압기를 놓고 쓰던 시절이라 선풍기도 잘 틀지 않았다. 부채가 유용하게 쓰였다. 해가 지고 나면 거실 앞 베란다에 자리를 깔고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거나 무심히 별을 쳐다보기도 했다. 동생은 베란다 근처까지 올라온 개구리를 필통 뚜껑으로 덮어 잡았다. 손을 넣어 개구리를 잡아 쌔게 베란다 바닥에 내려치면 이놈이 사지를 뻗고 만다. 그런데 잠시 후 보면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잠시 기절했다 깨어나 도망을 간 것이다.
집 뒤에 양계장이 있어 늘 파리가 많았다. 창문에 방충망이 있어도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드나들 때마다 파리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부엌에는 파리 잡는 끈끈이를 매달아 놓았다. 저녁이 되면 아버지는 파리채를 들고 방마다 돌며 천장이며 벽에 앉아있는 파리 사냥을 했다. 그렇게 해야 그나마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다.
동생은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며 칡뿌리도 얻어먹고, 개구리 다리도 구워 먹으며 여름 방학을 보내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