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단발머리 소녀

by 고동운 Don Ko

한 동안 집에서 살다가 다시 외가로 갔다. 구파발 집을 정리할 무렵의 일이 아닌가 싶다.


외가에는 군산에서 돌아온 이모가 있었다. 겨울 방학이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봄에 중학교에 진학하는 여자아이가 이모에게서 영어를 배우고 있었다. 영어라고 해 봐야 알파벳과 “I am a boy. Are you a girl?” 정도의 아주 기초적인 수준이었다.


그 여자아이를 ‘J’라고 해 두자. 그녀는 이모가 다니던 절 집의 조카딸이었다. 이모는 그녀의 고모를 ‘스님,’ 또는 ‘보살’이라고 불렀다. J 의 고모는 점도 보고, 부적도 만들어 주고, 푸닥거리도 하는 무속인이었다. 아버지가 없었던 그녀는 중학교에 진학을 하며 고모의 집에 가서 살고 있었다.


나는 누이들이 아닌 최초의 이성을 접하게 된 것이다. 그 아이를 보면 얼굴도 벌게지고 가슴도 콩당거리곤 했다. 며칠이 지난 후에는 외출이 잦은 이모 대신에 내가 영어 공부를 도와주었다. 말도 트고 조금 친해질 만하니 방학은 끝이 났고, 그녀는 더 이상 오지 않게 되었다.


그녀에 대한 생각이 흐릿해져 갈 무렵, 하얀 블라우스에 검은색 스커트 교복 차림의 그녀가 찾아왔다. 그리고 그녀는 가끔 한 번씩 나를 보러 왔다. 그때 우린 무슨 이야기를 했던가? 아마도 그녀는 학교 이야기를 했을 것이며 나는 내가 읽은 책 이야기를 해 주었을 것이다.


한 번은 그녀가 소풍을 가서 샀다며 신랑/각시 목각 인형을 사다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름 의미가 있는 선물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나는 그녀에게 주려고 시집을 사 두었는데, 그녀를 다시 보기 전에 벽제로 이사한 집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전해주지는 못했다.


그 후 한 번 편지를 써 이모에게 주며 꼭 J에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었다. 이모는 분명 그녀에게 전달해 주었다고 하는데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불쑥 그녀가 다시 나타났다. 여름날이었다고 기억한다. 앞 채에 위치한 '벽제갈비'에서 전화가 왔다. 누가 날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나를 찾아 올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는데 뭔가 잘못 알았거니 하고 있는데, 보라색 교복을 입은 그녀가 친구와 함께 내 방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 그녀의 교복에 눈이 부셔 똑바로 바라보기가 힘들었다고 기억된다.


그날을 계기로 우리는 점차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 J는 아직도 고모와 살고 있었다. 그녀의 고모에게는 내연남이 있었는데, J는 낮에는 그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동명여상에 다니고 있었다. 동명여상의 교복이 보라색이었다.


벽제로 나를 보기 위해 그녀는 버스를 한번 갈아타야 하고, 정거장에서 내려서 1킬로 정도를 걸어 들어와야 했다. 시외버스는 자주 다니지 않기 때문에 때로는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그녀는 한 달에 한번 정도 나를 보러 왔고, 나는 그녀가 그리울 때면 편지를 썼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그때 매우 편협하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하고 있었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그러했다. 나는 친구를 어떻게 사귀는 것인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알지 못했다. 내가 항상 그녀만을 생각하니 그녀도 나만을 생각해야 하고, 모든 시간을 나에게 할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벽제로 이사를 하니 동생들도 학교 다니기가 수월치 않았다. 집에 차가 있어 아침에는 부모님이 장을 보러 시장에 가는 길에 연신내까지 차로 데려다주면 그곳에서 각자 버스를 타고 등교를 했지만 하교 때는 각자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연신내 동생의 학교 근처에 집을 전세 내어 잠시 우리들끼리만 나가서 살았다. 내가 시내로 들어오니 그녀가 오는 일도 수월해졌다. 그녀는 가끔 내게 레코드 판을 선물하기도 했는데, ‘엘리제를 위하여’ 가 들어있는 피아노 연주곡과 그 무렵 한창 유행했던 이종용의 ‘너’ 가 들어 있는 LP 판을 사 주었다. 우리는 ‘키스파’를 먹고 함께 음악을 들으며 달콤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리고 그녀가 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에 그녀는 중앙우체국에서 임시직으로 일을 했다. 교복을 입고 다닐 때와 달리 졸업을 한 그녀는 화사한 옷도 사 입고 어느 날은 파마를 한 머리로 나타났다. 파마를 한 그녀는 얼마나 예뻤던가.


바야흐로 성인이 되어 조금씩 화장을 하고 옷을 사 입으며 자기 앞에 펼쳐진 새로운 세상에 들떠 있는 그녀를 곁에서 보며 나는 질투를 하고 있었다. 이성관계에서 적당히 거리를 두고 때로는 가까워졌다가 다소 멀어지기도 하며 밀고 당기는 요령이 내게는 없었다. 그녀에게 올인하며 온전히 나만을 보아달라고 떼를 쓰는 나에게 그녀는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는 잠시 만나지 말 것을 통보해 왔고, 그 소식은 내게는 청천벽력과 같았다. 우리 사이에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고, 나는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헤어지기로 했고, 나는 그녀와의 모든 연락을 끊어버렸다. 어이없게도 나의 첫사랑은 그렇게 허망하게 끝이 나고 말았다.


나는 그때 너무 어렸고 세상을 몰랐으며 자존감이 땅에 떨어져 있었다. 나의 장애 때문에 그녀가 내 곁을 떠나려 한다고 속단하고 스스로에게 깊은 상처를 내고 만 것이다.


세월이 많이 흐른 후에 나는 나의 실수를 깨달았고 후회도 했지만 돌이키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고 나는 그녀를 찾는 방법도 알지 못했다. 조금 인내하며 그녀를 기다렸더라면, 몇 달 후에 다시 연락을 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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