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계장을 하다 보니 집에는 늘 상주하는 일꾼들이 있었다. 우리가 ‘주씨’ 아저씨라고 부르던 이가 있었고, ‘영호’와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아이가 있었다. 방 하나에서 기숙을 하며 살았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일을 시작하는 그들에게 아버지는 점심을 먹고 나면 1시간 정도 낮잠 시간을 주었다. 그 시간이면 나는 살그머니 그 방에 들어가 그들과 장기를 두었다. 친구가 없던 나에게는 그들이 좋은 친구였다.
사탕 내기를 해서 내가 지면 나는 안방에 있는 사탕 통에서 사탕을 꺼내다 주었고, 영호나 주씨 아저씨가 지면 그들은 내게 구멍가게 사탕을 주었다.
그 무렵 바둑도 배우게 되었다. 집에 와서 내 머리를 잘라 주던 이발사가 소개를 해서 입단 못한 동네 1급에게서 바둑을 배웠다. 아버지와 함께 배웠는데, 처음 며칠간은 아버지에게 계속 졌다. 그때 바둑 선생은 어른과 아이가 함께 배우면 늘 처음에는 어른이 앞서 나간다고 했다. 이런저런 경험이 많은 어른은 바둑에서도 이기는 방법을 금세 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어린아이의 학습능력을 따라가지 못한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어떤 일에 몰두하면 집중해서 잘 해 낸다. 한, 두 달 동안 그에게서 지도를 받았는데, 방에 누워 천장을 보면 온통 바둑판과 바둑 둘로 보였다.
두 달쯤 지난 후 바둑 선생은 더 이상 오지 않게 되었다. 바둑 선생은 본격적인 바둑 수업을 위해서는 제대로 수강료를 요구했던 모양인데, 아버지는 내게 소일거리로 바둑을 가르쳤던 것 같다. 살다 보니 이런저런 시기에 바둑을 좋아하는 이들을 만나 바둑을 두어 기력이 늘어갔다. 이제는 ‘오로바둑’에서 4단의 기력이 되었다.
바둑은 마음을 다스리는 일에 도움이 된다. 걱정거리가 있거나 잡념이 많을 때는 바둑이 잘 두어지지 않는다. 한 판의 바둑에 우리네 인생이 들어 있다. 19줄 한 판에 우주가 들어 있다. 지나치게 욕심을 내거나 너무 자만하면 그 바둑은 지게 된다. 마음을 비우고 판을 넓게 보며 참아야 할 때 양보하고 기다리면 기회는 꼭 나타난다. 우리네 인생도 그러한 것 같다. 서두른다고 안 될 일이 되지 않으며, 성질을 부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버릴 것은 버리고, 인내하며 기다리면 기회는 꼭 온다.
하루는 아버지가 외가로 나를 찾아와 무언가를 배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내 나이 14-15살 때쯤의 일이 아닌가 싶다. 아버지가 제안한 것은 그림과 시계수리였다. 나는 그때 그림에 좀 관심이 있었다. 만화를 베껴그리거나 크레용으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정작 내 입에서 나온 답은 시계수리였다. 난 아버지가 원하는 답이 그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버지의 고향 친구 중에 다리를 심하게 저는 이가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 도장 파는 기술을 배워서 크게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누차 들은 바 있었다.
화가 같은 예술가는 배가 고프다는 이야기도 들어온 터라 부모형제에게 짐이 되지 않고 자립하려면 기술을 익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아버지는 나의 선택에 만족해했다.
외가 근처에서 시계수리점을 하던 사람에게서 시계수리를 배웠다. 시계를 분해해서 청소하는 법, 이런저런 작은 고장을 수리하는 방법을 배웠다. 시계수리는 내게는 잘 맞지 않았다. 우선 내 왼손에 장애가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발견했다. 왼쪽 엄지 손가락이 제대로 굽혀지지 않는다. 아마도 소아마비의 후유증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 왼손에 핀셋을 쥐고 작은 부속을 잡는 일이 수월치 않았다.
그 시계수리점에는 나보다 2-3살 많은 아이가 일을 하고 있었는데, 나에 비해 월등하게 빨리 익혀 간단한 수리를 해냈다. 결국 시계수리를 배우는 일은 흐지부지 끝이 나고 말았다.
차라리 그때 그림 공부를 했더라면 훨씬 좋았겠다는 생각을 두고두고 하게 된다. 지금도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공부는 그림을 배우는 일이다. 지금 하는 일에서 은퇴를 하면 집 근처의 대학에 가서 그림 공부를 할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