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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동운 Don Ko Aug 06. 2018

미국 공무원 이야기 (후편 1)

‘미국 공무원 생활 31년’이라는 글을 올린 지 열흘만에 조회 수가 10만을 넘었다. 정말 깜짝 놀랐다. 공무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얼마나 큰지를 알려 주는 수치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내가 30여 년 동안 보고, 느끼고, 경험했던 것을 조금 더 상세히 몇 회에 걸쳐 써 볼까 한다. 


내가 처음으로 공무원 채용면접을 갔던 곳은 주정부 수질 관리국이었다. 할로윈을 하루 앞둔 날의 일이다. 나를 인터뷰했던 수퍼바이저와 매니저는 백인 여성들이었는데, 둘 다 할로윈 변장을 하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어릿광대 분장을 하고 있었다. (다른 한 명의 분장은 기억나지 않는다) 


며칠 후, 나를 뽑기로 했는데 예산 문제로 신규채용이 동결되었으니 몇 주만 기다려 달라는 소식이 왔다. 다시 며칠이 지나고, 이번에는 주정부 산재보험기금에서 면접을 보라고 연락이 왔다. 막상 면접에 가서 보니 그 일은 서서 파일을 정리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2-3일 후 같은 사무실의 다른 부서에서 나를 불러 공무원의 길에 들어섰다.


내가 처음 들어 간 직급은 말단 사무보조직인 ‘Office Assistant – Typing’이었다. 주 정부 공무원 시험에는 누구나 시험을 볼 수 있는 공개시험과 (open exam)  공무원들만 볼 수 있는 승진시험이 (promotional exam) 있다. 이런 시험 공고는 직원 게시판에 붙여 놓는다. 시험을 매년 정해진 기간에 보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필요에 따라 보기 때문에 이미 채용이 되어 일을 하고 있는 내부 직원들에게 유리하기 마련이다.


나는 승진시험을 통해 ‘key data operator,’ ‘office technician,’ ‘worker compensation insurance technician A & B,’ 등을 거쳐 전문직인 보험 조정관이 (workers compensation insurance adjuster A) 되었다. 


공개시험의 경우에는 실무에 필요한 기초능력을 테스트하는 형식이며 실제로 실무에서 사용하는 법규나 절차 등에 대한 내용은 시험에 나오지 않는다. 내가 일하던 부서에서도 사무보조직에서 전문직 시험을 보았던 많은 동료들이 실무의 법규나 절차 등을 외우며 시험 준비를 했다가 낙방을 하곤 했다.


시험에서는 어떤 상황을 주거나 자료를 주고 이를 분석하고 풀어서 답을 찾게 하는 문제가 나온다. 실무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도 주어진 문제를 잘 읽고 이해하면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섣불리 조금 아는 실무지식은 도리어 방해가 된다.


승진시험의 경우는 좀 다르다. 이때는 실무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법규나 절차 등에 대한 문제가 나온다. 수퍼바이저 시험의 경우에는 상황을 주고 어떻게 처리하는가 등에 대한 문제가 나오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원을 하기 때문에 필기시험은 이들을 1차로 거르는 과정이다. 필기시험에 합격한 이들을 대상으로 면접시험이 있으며, 시험 성적은 이 면접시험으로 결정이 된다. 면접에서는 지원자가 원서에 적어 낸 학력과 경력을 확인하고 실무에 필요한 능력 여부를 관찰하게 된다. 이때 받는 성적에 따라 순위가 정해진다. 면접에는 인사과에서 한 사람, 실무팀의 수퍼바이저 두 사람으로 패널이 꾸며진다. 


각 순위에는 적게는 한, 두 명 많게는 수십 명이 들어 있으며 빈자리가 생기면 상위 3순위 안에 있는 모든 합격자들에게 서면 통보가 가고 이때 답을 하는 사람들이 채용면접에 오게 된다. 상위 3순위 중 하나가 소진되면 다음 순위로 넘어간다. 채용인원에 따라 4, 5 순위까지 가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3순위 안에 들어야 채용 가능성이 있다.


보험 조정관이 된 후에는 1-2달가량 실무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고 그 이후에는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2-3달가량 선임 조정관 또는 수퍼바이저의 감독 아래 일을 배운다. 처음에는 모든 결정을 승인받아야 하고 조금씩 재량권을 넓혀 간다.


처음 입사/승진을 하면 6-12개월의 견습기간이 있고, 이때는 보통 3-4번의 업무평가를 받고 그 후에는 매년 1번씩 업무평가를 받는다. 나는 이 과정을 거쳐 보험 조정관 A에서 B로 올라갔다. 매년 업무평가에서 합격점을 받으면 봉급이 5%가량 올라간다. 이는 공무원 노조가 주 정부와 계약을 갱신하며 받는 월급 인상과는 별도다. 각 직급의 봉급에는 5단계 정도가 있어, 입사/승진 4년이 지나고 나면 업무평가에 따른 봉급 인상은 끝이 난다.


부서가 이사를 가거나, 통/폐합이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본인이 원치 않는 부서나 지역으로 임으로 전출을 하는 일은 없다. 같은 지역, 같은 직급에서 수십 년씩 일하는 공무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개인은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계속할 수 있으니 좋고, 부서에서는 일에 익숙하고 전문성이 있는 직원을 쓸 수 있어 좋다.


승진을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는 사람도 없으며, 그렇게 공부를 한다고 해서 승진이 되는 것도 아니다. 미국에는 공무원 시험을 위한 학원 따위는 없다.


직급과 직함은 조직의 질서와 업무처리를 위해서 있을 뿐이다. 직원들은 모두 대등하고 평등하다. 직함은 명함이나 문서에만 있을 뿐, 일상에서는 모두 이름을 부른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사소한 심부름을 시키는 일도 없다. 입사동기나 후배가 나를 앞질러 간다고 해서 불쾌하게 생각하거나 자리를 뜰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드물다. 내가 좋으면 그만이라는 미국인들다운 정서가 아닌가 싶다. 


한 예로, 직원들의 편의를 위하여 각 층마다 자발적으로 운영되는 커피 클럽이 있었다. 한 달에 $10 의 회비를 내면 매일 제한 없이 커피를 마실 수 있다. 클럽의 운영자들은 이 회비로 커피와 필요한 비품을 사며 커피는 직위 여하를 막론하고 당번제로 끓인다. 회원을 더 모으기 위해 시럽 등의 첨가물을 제공하는 클럽도 있어, 다른 층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to be co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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