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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동운 Don Ko Aug 10. 2018

미국 공무원 이야기 (후편 2)

미국에서 공무원을 하려면 영어를 잘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받곤 한다. 물론 영어를 잘 하면 좋고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그러나 영어가 서툴러도 공무원은 될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하급직은 필기시험 자체가 그다지 어렵지 않으며 많은 영어가 필요치 않다. 


봉급 액수가 적은 하급직에는 영어에 능숙한 미국인 지원자 수가 적으며 직원을 채용하는 관리직의 입장에서는 일 잘 안 하고 말썽이나 부리는 영어 잘하는 자국민보다는 말은 좀 서툴러도 성실히 일 잘하는 이민자들이 났다.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필리핀이나 월남, 태국 등 동남아시아, 그리고 멕시코계 이민자들이 많이 지원한다.    

일에 필요한 영어라는 것이 반복 사용되기 때문에 눈치껏 한, 두 달 잘 버티면 다들 적응해 나간다. 그리고 매일 영어권에서 일을 하다 보면 영어가 늘기 마련이다. 미국의 관공서에 가보면 다양한 엑센트로 영어를 하는 직원들을 볼 수 있다.


나만 해도 처음 입사했을 때, 영어가 완벽하지 않았다. 공부를 계속하고 업무를 익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영어가 늘어 갔다. 나중에는 직원 교육용 매뉴얼을 만드는 일에도 참여하고 대학을 졸업한 직원들이 작성한 편지나 보고서 등을 고쳐 주기도 했다.


근무시간이 끝나면 모든 직원은 칼퇴근을 한다. 수퍼바이저와 매니저는 일반직원들을 제때 퇴근시키도록 교육받는다. 밀린 일을 하기 위해 상습적으로 늦게까지 남아 있다가 경고를 받은 직원도 있었고, 퇴근했다가 다시 몰래 들어와 일을 하던 직원이 퇴출 직전까지 갔던 적도 있다. 상부에서는 직원들의 출입카드와 컴퓨터 사용을 주기적으로 조회한다. 근무시간 이상 일을 하게 되면 오버타임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직원이 자발적으로 한 것이라도 상부에서 이를 묵인했으면 추후에라도 오버타임을 지불해야 한다.


출근이 늦거나 조퇴를 하는 경우에는 본인의 휴가나 병가 시간을 써야 한다. 유급휴가와 병가는 15분 단위로 사용이 가능하다. 점심시간은 스케줄에 따라 30분 또는 1시간이다. 하루 10시간, 주 4일 근무, 또는 하루 9시간씩, 두 주에 9일 80시간 근무 스케줄도 가능하다. 


근무시간에는 가급적이면 사적인 일은 금한다. 근무시간과 회사의 기물을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원친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컴퓨터와 전화 등은 업무를 위해서만 사용해야 하며, 복사기 등을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금한다. 물론 사람 사는 곳이니 어느 정도까지는 눈감아 주기도 한다. 


내가 일했던 부서에서는 매달 모든 직원들의 전화 사용시간과 번호 리스트를 뽑아 지나치게 통화시간이 많은 직원들에게는 시간관리 교육을 시키기도 했고, 사적인 장거리 전화 사용이 많은 이들에게서는 전화요금을 환불받기도 했다. 컴퓨터에서 개인영상물이나 포르노 사진 등이 발견되어 처벌을 받은 직원들도 있었다. 


성희롱을 매우 심각하게 여겨서 매년 전 직원들에게 성희롱 방지 교육을 시킨다. 직원들은 본인의 책상이라도 남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사진이나 물건을 붙이거나 놓아둘 수 없다. 성적인 농담이나 제스처는 물론 제삼자가 듣고 불쾌감을 느끼는 대화도 성희롱에 포함이 된다. 성희롱으로 부서를 그만둔 매니저와 수퍼바이저도 있었다. 


친인척 간에는 상하의 위치에서 함께 일을 할 수 없다. 부모와 자녀, 형제자매, 또는 부부간에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있었는데, 모두들 각자 다른 부서에서 따로 일을 했다. 


내가 입사를 하던 80년대 초 산재보험기금의 지역사무소에는 30-40명의 직원이 있었다. 입사를 하면 모든 신입사원이 지역사무소장과 개인 면담을 했다. 나 역시도 그의 방에 불려 갔다. 그때 그는 내게 이 직장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내가 당신의 나이가 되었을 때 그 의자에 앉는 것이다 라고 답을 했었다. 그는 넌지시 웃으며 꼭 이루어지기를 바라노라고 했다. 


그리고 그 꿈은 상당 부분 이루어졌다. 90년에 수퍼바이저가 (workers compensation insurance supervisor) 되었다. 곧 매니저가 되고 지역사무소장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세상은 그리 녹녹지 않았다. 매니저가 (Manager I) 되기까지 10여 년이 걸렸다. 그리고 5년 후, 마침내 선임 매니저가 (Manager II) 되었다. 입사했을 때 나와 면담을 했던 지역사무소장의 직급이 ‘manager II’였다. 그런데 그 후 부서가 커지고 지역사무소의 인원이 200여 명까지 늘어나며 지역사무소장의 직급이 ‘manager III – IV’ 로 격상되었다. 결국 나는 지역사무소장이라는 직함에는 오르지 못하고 은퇴를 했다. 


내가 일하던 산재보험기금은 보험을 처리하는 곳이라 병원, 의사, 약국, 재활원, 의료기상, 차량 지원 등 다양한 거래처가 있었다. 입사 초기인 80년대 초반에만 해도 이들 거래처의 대접을 받는 일이 허용되고 있었다. 식사대접을 받거나 스포츠 게임의 티켓 등을 선물로 받기도 했다. 그 후 주 정부에서 공무원의 접대를 제한하기 시작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법규 상으로는 같은 곳으로부터 한 달에 $10 이상의 선물을 받을 수 없도록 되어 있지만, 모든 접대와 선물을 금하게 되었다. 사무실로 보내오는 간식류의 음식은 돌려보내거나 거래처로 하여금 비영리 단체로 보내도록 했다. 한때는 연말에 보내오는 수첩이나 볼펜 등도 돌려보내곤 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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